"안녕하세요~!"
하고서 인사를 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나를 모르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아무 생각 없이 햇살을 맞으며 산책을 한다던지, 늘어지게 호텔에서 잠을 청한다던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었지만 막상 호기롭게 나와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냥 걸음이 닫는 대로 무작정 걸음을 옮겼다. 바빠 보이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귀에 버즈를 꽂고서 모른 척 그 사이를 지나간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다 결국 향한 곳은 공원의 벤치였다. 사람들이 지나가나 두리번거리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 멍을 때렸다.
크게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어 본다. 햇살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는데 나른함에 조금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는데 어느새 잎사귀가 초록빛으로 변해 있었다. 초록빛 잎사귀 너머로 햇살이 반짝이며 눈앞에 일렁거렸다. 여름이 다가 오렸는지 짙은 풀내음이 코끝에 닿았다.
너무 지쳐서인지, 혹은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모르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구온난화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거나 갑자기 기온이 상승한다거나, 이유 없이 비가 쏟아진다거나, 4월에 눈이 내린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예측불가한 상황에서도 봄이 오면 꽃잎을 피우고 여름이 오면 짙은 풀내음을 뽐내고 있다. 아마 습하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초록빛의 잎사귀들이 빨갛게 혹은 노랗게 물들어 멋지게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무척이나 추운 바람이 불어오겠지만 겨울을 알리는 곳곳의 식물들이 자리를 버티며 겨울의 자태를 뽐낼 것이다.
멍들고 지쳐버린 내 마음과 다르게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변해갔다.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변함없는 속도로 그렇게 잠잠하게 삶 속에 머물러 있었다.
"사는 게 참 힘들다."
하소연을 하듯이 중얼거렸다. 말없이 잔잔한 바람이 불었다. 아직은 바람이 서늘했다. 머리카락을 간지럽히는 바람을 맞으며 다시 깊은숨을 몰아 내쉬었다.
나만 힘든 하루가 아닌 게 분명할 텐데도 뭐가 이토록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달려오다 보면 더 나은 미래가 그려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견디고 버티다 남은 건 상처투성이로 세상의 때가 묻어나버린 스스로의 모습뿐이었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오늘의 삶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나는 나이를 먹어가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방황하고 있다. 언젠가 이 삶의 끝에서 깨닫게 되는 순간을 나는 기대하려고 애썼다. 방황이 끝나면 조금은 자유 속에서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소망을 품던 예전의 모습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는 잘 모르겠다. 그냥 혼자 있고 싶다. 뭐든 다 상관없이 혼자서 아무 생각 없이 늘어져라 잠이라도 청하고 싶다. 유난히 혼자 있고 싶은 날이지만 우습게도 나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원벤치에 앉아 다가오는 여름을 기다리는 나무와 꽃들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마도 눈에 가득 담은 후에 나는 또 오늘을 살아나갈지도 모르겠다.
변하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무나 꽃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