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국 유학 이야기 1

8살에 떠나게 된 중국 유학

by 일당백

나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시작할 때부터 블로그를 운영중이다. 하지만 내게 블로그는 일상글이나 맛집을 소개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글 곳곳에 감성 있는 사진과 신상 이모티콘을 넣어야지만 가치 있는 글 한편이 완성되는 느낌이라 쉽사리 글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 브런치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게 되었는데, 속으로 '이거다!'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복병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는 글재주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이야기는 많지만, 이 이야기보따리를 재미난 글로 풀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없다. 더군다나 어느덧 7년 차 직장인인 나는 딱딱한 보고서의 말투가 더 익숙해져 이런 감성적인 말투의 이야기를 잘 해낼 자신도 없다. 하지만 결국 나의 이야기를 이곳에 쓰기로 작정한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내 29년 인생에 어린 나이부터 타국을 경험하고, 타국에서 모든 교육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발생한 사건 중에 재미난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재미난 경험들이라면, 나의 부족한 작문 실력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다. 여느 20대처럼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또 현재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직장인이다. 하지만 굳이 특별한 점을 하나 찾자면 인생의 반을 외국에서 살았다는 점이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내가 8살 때쯤 엄마가 갑자기 중국어 과외 선생님은 모셔왔다. 토요일에 학교가 끝나고 난 후 나와 언니는 의무적으로 중국어 과외를 받아야 했고, 선생님께서는 매주 중국 한자 쓰기 숙제를 내주셨는데, 한창 놀기 좋아했던 8살 개구쟁이였던 나는 토요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선생임이 오시기 한 시간 전부터 밀린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숙제를 다 못한 채로 선생님을 마주했는데,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이 한주의 시간을 더 주셨지만 수업이 끝난 후 엄마에게는 엄청난 꾸중을 들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상황이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계시던 엄마가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숙제를 제때 못한 일로 매를 들어 엄청나게 혼내셨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엄마의 꾸중을 듣고 울며 방에 들어와 그날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장 나는 왜 갑자기 중국어를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놀이터에 나가 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꾸역꾸역 숙제를 마쳤다.


중국으로 떠나기 1개월 전, 우리 가족은 기존의 아파트를 팔고 조금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제 네 가족이 중국으로 떠날 거라 한국에 더 이상 큰집이 필요 없게 된 셈이다. 단지 아빠가 일 때문에 가끔 한국으로 돌아오시면 머물러야 할 곳이 필요했기 아파트를 팔고 작은 오피스텔로 이사를 한 것뿐이다. 그 당시 나는 그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간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했고, 한 달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충분히 빛나게 했다. 아파트에서 이사를 떠나는 날, 우리는 이삿짐 업체를 부르지 않았고 아빠의 회사 사람들이 트럭을 몰고 와 우리 집 이사를 도와주셨다. 엄마는 나더러 이삿짐을 옮길 동안 놀이터에 나가서 놀라고 했는데, 그 당시에 나는 무슨 오기가 생겼는지 방에 들어가 내 몸만 한 나무 액자를 성큼 들어 이삿짐 트럭으로 옮기다가 트럭에 머리를 박는 수모를 당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 회사 아저씨들의 놀란 표정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이사 온 동네는 원래 살던 곳과는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 매일 같이 놀이터에서 놀던 동네 친구들도 없었다. 8살짜리에게 같이 놀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고, 나는 이 때문에 한동안 슬퍼했던 기억이 있다. 더군다나 나의 단골 가게인 XX문구점까지 없으니, 그야말로 외딴섬에 홀로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늦잠꾸러기였던 내게 한 달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또 더 이상 매주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중국어 과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꽤 만족스러웠다. 지금 생각난 건데,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엄마가 중국어 과외 선생님께 작별 인사를 할 때,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이 너무 많이 들었다고 펑펑 우셨다. 선생님은 중국 대련에 어학연수를 다녀오신 분인데, 중국의 문화나 중국에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수업 시간이 꽤나 즐거웠다. 물론 매주 내주시는 숙제는 빼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이사 온 작은 오피스텔에서 한 달 동안 중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리고 2003년 한여름, 우리는 중국 청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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