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국 유학 이야기 2

보고 싶은 나의 친구들

by 일당백

이사 온 집은 복층으로 되어있는 원룸형 오피스텔인데, 네 식구가 살기에는 터무니없이 좁았다. 이사 당일 우리 가족은 아빠차를 타고 미리 오피스텔에 도착해 회사 아저씨들의 트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왜 멀쩡한 집을 놔두고 갑자기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는지, 심지어 왜 내가 살던 도시가 아닌 다른 도시로 이사를 온 건지 전혀 몰랐으며 또 한편으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관심사는 오롯이 놀거리였다. 이사 온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주변에 나 같은 꼬맹이가 놀만한 곳이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차 혼자 살게 될 아빠의 편의를 위해 공단 옆 오피스텔로 이사 온 우리에게 근처에 어린이들이 놀만한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시선은 자연스레 복층 오피스텔의 유일한 단점이자 장점인 '계단'으로 집중됐다. 학교도 안 가고 또 마땅히 갈만한 놀이터나 문방구도 없었던 나는 아침에 아빠가 출근을 하고 엄마가 집안일을 시작하면 하루에 몇 번씩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놀이기구 못지않은 스릴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놀다 체력이 고갈되면 그냥 바닥에 누워 친구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이사오기 전 나는 단짝친구가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말괄량이 삐삐와 닮은 쾌활하고 밝은 친구였고, 또 한 명은 숲 속의 공주와도 같은 조용한 친구였다. 삐삐를 닮은 친구의 이름은 민정이었고, 조용한 친구의 이름은 혜정이었다. 꽤 놀라운 건 그 당시 혜정이는 어른들 걱정을 꽤나 시키는 아이였단 것이다. 혜정이는 그 당시에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가족이나 단짝 친구 이외의 사람과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 주변에 단 한 명이라도 자기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아무리 친한 나나 민정이가 있어도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혜정이와 헤어지고 중국에 간 후 혜정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티비에 방영되고 있는 어린이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봤는데, 혜정이와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출연해서 보니, 전문가 선생님은 이걸 '선택적 함구증'이라고 하셨다. 일종의 불안장애인데 새로운 사람 앞에선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으니 혜정이가 바로 떠올랐고 또 어렴풋이 생각나는 혜정이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겨 현재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는 혜정이가 생각났다. 하지만 그 후, 성인이 되고 기적적으로 혜정이와 연락이 닿아 이십 년 만에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었는데,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혜정이는 진즉에 말문이 트였고, 지금은 웬만한 말빨로는 할 수도 없는 성형외과 상담실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나와 언니를 앞에 앉혀놓고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해 주셨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우리 가족은 아빠의 직장으로 인해 한 달 후 중국으로 떠날 예정이고, 갑작스레 이곳으로 이사를 한 것도 이를 위한 준비 때문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 들었고 또 앞으로 우리는 한국을 떠나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곳에서 정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제야 엄마가 갑자기 중국어 과외를 시킨 이유를 깨달았다. 또 엄마가 말씀하시길, 우리는 '청도'라는 도시에 가서 살 예정인데 다음 주에 일단 청도에 방문해 그곳을 살펴보고, 또 우리가 살 집을 한 번 둘러보고 오자는 것이었다. 어렴풋이 듣기로는 아빠가 이미 우리 가족이 청도에서 살 집을 구해놓으셨다는 거다.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는 외국에 가서 산다는 두려움보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다는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행기를 정말 많이 탔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과 중국을 워낙 많이 오고 간 탓에 비행기를 일찍이 타기 시작했고 또 방학마다 그리운 한국으로 오느라 성인이 되기 전 벌써 여권에 출입국 도장이 빽빽하게 찍혔다. 처음에는 공항이라는 곳에 가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교통수단인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간다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또래들보다 특별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왠지 모를 우월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고향이 얼마나 따뜻하고 가슴 설레는 곳인지, 말이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말이다. 길거리에 한국어 간판이 줄지어 있고, 거리에는 온통 한국말이 들리고, 나를 반겨주는 친구들이 있고, 이웃과의 추억이 있는 곳, 그때는 이런 당연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2023년 6월, 사전답사를 위해 중국 청도로 떠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중국 유학 이야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