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답사를 위해 청도로
2003년 6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될 무렵, 우리 가족은 사전답사를 위해 청도로 떠났다. 그리고 그 전날 여행을 위한 옷가지를 챙길 때 엄마는 내게 챙겨가고 싶은 장난감이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머릿속으로 내일 처음 타게 될 비행기를 상상하느라 엄마 못지않게 바빴기에, 장난감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상상을 마친 나는 곧바로 스케치북을 열어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비행기를 냅다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화려한 색깔의 크레파스로 비행기를 신나게 칠했다.
8살 무렵, 나의 장래희망은 '화가'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장래희망 조사에서 나는 당당하게 '화가'를 적어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방과 후 취미수업도 당연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고, 또 나름대로 손재주도 있어 유치원에 다닐 때는 매일 요상한 액세서리를 만들어 선생님께 보여드리곤 했다. 그 당시 나는 마법소녀가 나오는 만화영화에 빠져있어 유치원의 만들기 시간에는 항상 만화 속 주인공이 차고 나오는 변신이 가능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었는데, 이렇게 완성된 팔찌를 목걸이를 착용해 주렁주렁 달고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사람들이 나의 목걸이를 쳐다보길 내심 바랐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내가 열심히 만든 액세서리를 엄마에게 보여드리면 엄마는 매번 예쁘다고 칭찬해주셨다.
여행 당일, 우리는 공항버스를 타고 내 몸집만 한 캐리어 두 개와 함께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공항은 내게 있어서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는 표정을 하며 제 갈길 가기 바빴고, 나 또한 나와 다르게 생긴 외국인들로 인해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행히 외국으로 출장을 많이 가본 아빠가 옆에 있었기에 우리는 우왕좌왕하지 않고 곧바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온 우리는 게이트에 도착한 후 그제야 짐을 내려놓고 쉬기 시작했고, 나는 의자에 앉아 내 앞을 지나가는 다양한 옷차림의 사람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그리고 30분 후, 비행기 탑승을 위한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줄을 서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걸 본 나는 재빨리 엄마의 손을 끌고 대열에 합류했다.
나는 한 손은 엄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탑승권을 쥐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그리고 탑승권을 직원분에게 보여준 후 구불구불한 통로를 지나 비행기에 탑승했다. 우리는 재빨리 좌석을 찾아 앉았고 엄마는 좌석 위에 짐을 올린 뒤 내게 안전벨트를 채워주셨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본 나는 왠지 모를 실망감이 들었다. 비행기 내부는 내가 줄곧 상상해 온 모습과 너무나도 달랐다. 좌석은 내가 아침에 타고 온 공항버스와 비슷할 정도의 넓이였고, 또 우리는 창가 쪽 좌석이 아닌 통로 쪽 좌석으로 배정돼 창밖의 모습을 구경조차 할 수도 없었다. 그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비행기가 이륙하고 난생처음 느껴보는 귀 먹먹함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귀가 막히는 기분에 한편으론 겁이 나기도 했고, 앞으로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런 고통을 느껴야 한다니, 나는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꽤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한 가지 나를 만족시켰던 건 바로 기내식 한편에 나오는 초콜릿이었다. 그 당시 청도행 비행기를 타면 네모난 트레이 한편에 항상 예쁘게 포장된 초콜릿이 같이 나왔는데, 나는 이 조개모양의 초콜릿을 받기 위해 아무리 졸려도 기내식이 나올 때까지 자지 않고 버텼다. 거기다 어린아이에게만 장난감을 나눠주었는데, 이 장난감도 퀄리티가 꽤 좋았다. 그날은 비행기 모양의 인형을 받았는데, 나는 그 인형을 꽤나 아껴 한동안 어디든 데리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이 인형을 안고 비행기에서 잠들었고, 분주한 소리에 깨어보니 비행기가 이미 청도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나의 첫 비행은 끝이 났다. 비록 생각했던 것보단 실망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리 나쁘지만도 않았다.
그렇게 비행기를 1시간 20분 타고, 우리 가족은 청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