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눈꽃 산행

2023년 2월의 태백산

by 세온

어느 산이든 상관있을까?

겨울 눈꽃 산행을 하고 싶은 마음을 헤아렸는지 강원 영동 지역에 눈 소식이 예보되었다.

작년 12월 13일 춘천 드름산 산행기 이후 무려 두 달 동안, 발가락 부상으로 여러 번의 눈 산행의 기회를 놓치고 속상해했었다.

"2월에도 눈 옵니다."

라는 블로그 이웃의 댓글에 맞장구를 치긴 했다. 3, 4월에도 폭설이 온 적도 있으니까.

"얼마나 와?"

"4cm 정도."

그래도 가고 싶었다. 깁스 풀고 약간의 회복 기간을 가졌다고 생각하고서 처음 하는 산행이었으니까.

"태백산 대설주의보라 부분 통제라는데."

전처럼 산행지 가서야 통제된 걸 알고서 되돌아올까 봐 걱정을 했지만, 태백산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통제되어 입산 금지면 가까운 함백산으로 가도 되니까.

태백이 가까워지면서 살짝 눈발이 날린다. 아침 10시쯤 개는 것으로 예보되었다는데, 눈이 많이 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드디어 유일사 매표소에 도착. 시계가 9시 30분을 가리킨다. 아, 벌써 많은 승용차들이 주차장에 가득한데, 관광버스 3대도 함께 들어온다.

그래도 적어도' 통제는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에 눈발 날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눈이 출발부터 산행을 끝낼 때까지 꾸준히 내렸다.

오랜만의 산행이라 은근히 걱정도 되고, 영하 3 도라지만 눈 산행이니 올라갈수록 추울 것도 같고, 혹시라도 발가락에 다시 부상을 입을까 마음이 졸아들었지만, 겉으로는 "겨울 산행 한두 번 해봐?" 하는 표정으로 패딩 내피와 방수 재킷을 껴 입고, 털모자, 장갑, 스패츠 (아이젠은 나중에) 등을 차근차근 착용하고 출발했다.

유일사 매표소를 들머리로 산행한 것이 2016년이니까 7년 전의 일이다. 그 사이 변한 게 많았다. 표를 사러 간 남편이 입장료가 무료라고 되돌아온다

"우리가 너무 오랜만에 왔나 봐."

그래도 들머리 입구의 매점이나 몇 채 안 되는 농가, 태백사의 모습은 여전했다.

아, 올라갈수록 시야가 하얀색으로 뒤덮여진다.

뉴스에 겨우 4cm 온다고 해서 그저 그러려니 했더니 예보보다 눈이 훨씬 많이 내린 것 같다.

오늘 온 눈이 만든 보드라운 눈꽃이, 어제 온 눈 위에 쌓여 좀 더 두터운 흰옷을 입히고, 며칠 전에 온 눈에 합쳐져 하얀 눈 세계를 창작해 낸 풍경에 정말 잘 왔다는 소리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우리뿐이 아니라 다른 산객들도 그런 말을 하는 걸 여러 번 들었다.

남편은 사진은 열심히 찍지만 글 한 줄 안 쓴다. 글은 다 나한테 맡기고 사진 고르는 것마저 나한테 일임한다. 그래도 본인이 꼭 넣고 싶은 사진이 있을 텐데, 사진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의 감각에 그냥 맡기는 심정은? 보통 사람의 눈에 좋게 보이면 좋은 사진이라는 생각일까. 나는 남편의 사진은 다 좋아 보여서 늘 고르기가 힘이 든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남편과 글쓰기 좋아하는 아내가 만드는 2023년 2월 15일의 < 태백산 눈꽃산행> 두 달 만에 드디어 제대로 산행기 올려본다.

태백사

넓은 길과 샛길의 갈림길에서 잠깐 망설이는데, 산객 한 분이 되돌아 나온다. 러셀이 안 된 것 같아서 우리도 넓은 길로 올라가기로 했다.

빈 의자에 앉을 수가 없다. 이미 눈 손님이 가득 앉았다.

조릿대는 이미 녹색을 감추고 흰색으로 변신 중.

누군가의 해학이 만든 하회탈? 덕분에 산행이 더 즐거워진다.

오늘 눈을 실컷 보리라. 하얀 눈 세계에 파묻혀 내가 눈인지, 눈이 나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하리라.

화이트 크리스마스트리를 이곳에서 찾았다.

휘어진 가지가 만들어낸 멋진 모습.

단체관광객의 노란색 비옷과 주황색 우산이 정겨웠다.

눈 속의 산불감시초소가 깊은 산골의 예쁜 전원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집에는 사람이 아닌 눈 요정이 살 것만 같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잠깐 아주 잠깐 파란 하늘~

유일사 쉼터에서 팔던 불어 터진 어묵도 이제 추억의 음식이다. 어묵 파는 가게는 문을 닫은 모양이다.

유일사로 내려가는 길에는 지형이 험준해서 물건을 실어 나르는 곤돌라도 설치되어 있지만, 이런 눈이 많이 온 날씨에는 운행이 어려울 것 같다.

대부분 산행객들은 우리처럼 이곳 갈림길에서 천제단 쪽으로 향한다.

이쯤에서 태백산 당골 지구 등산 안내도 첨부해야겠지.

우리는 우리 갈 길로 가리라. 눈 쌓인 태백산 등산로 따라.

또다시 잠깐 아주 잠깐의 파란 하늘.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은 여전히 조금씩 내리고 있다. 바람이 별로 없어서 눈 때문에 산행에 방해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정상 부근에서는 눈보라로 변해서 방한마스크를 꺼내 썼다.

달라진 점 또 하나. 올라오는 코스에 꽤 가파른 곳이 있는데, 계단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2016년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여러 시설을 설치한 것 같았다. 덕분에 참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파란 하늘이 정말 반가웠다. 남편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설경을 더 많이 담고 싶어 했지만, 이만해도 어디인가 싶다. 올해 눈 산행 못할 뻔하지 않았는가.

파란 하늘 아니어도 정말 좋았다. 눈 속에서 백설 공주도 되어보고, 눈 요정도 되어보고.

내 눈 닿는 곳마다 눈꽃아 피어라 얍!

내 집 앞의 눈은 좀 힘들래나? 산에서 만난 눈은 그냥 마냥 좋기만 하다.

태백산은 아고산대다. 주목은 주로 아고산대에 자생하는 침엽수다. 기후 온난화로 인하여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등 여러 침엽수가 고사되고 있다고 하여 걱정이 많은데, 태백산 주목이 오래오래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하지 않는가.

누군가의 솜씨로 웃음 짓게 만드는 꼬마 눈사람.

가지가 손을 내밀어 누구를 부르는 것 같다. 여보 어디 가?

덕유산의 중봉 가까이 우리가 이름 붙인 '여보 어디 가' 주목들을 흉내 낸 건 아닐까?

정상에 가까운 능선에 올라오면 오늘 온 눈이 어제 온 눈 위에 쌓여 좀 더 두터운 흰옷을 입히고, 며칠 전에 온 눈에 합쳐져 특별한 설경을 창작해 낸다.

마치 하얀 산호초들이 얽혀 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더러는 흰 쌀가루로 버무린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탁 트인 평전에 하늘마저 흰 구름이 배경이 되어 그저 하얀 색깔만 존재하는 세상인 듯 몽환의 느낌마저 주기도 한다.

천제단으로 가는 길. 그 중간에 태백산 최고봉인 장군봉이 있고, 그 끝에 민족의 정기를 한데 모은 천제단(천왕단)이 있다.

장군봉에 위치한 천제단(장군단)도 있다.

천제단(장군단)

여기가 실제로는 태백산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고 한다.

장군봉 정상석

개천절이면 이곳에서 하늘에 제를 올린다는 천제단(천왕단)이다. 사람이 많지 않아 남편이 한배검이라고 쓰인 비석을 찍었다. 한배검은 단군왕검을 높이는 말이라고 한다.

천제단(천왕단)
한배검 비석
태백산 표지석

사실 너무 오랜만에 산행을 해서 몸이 전 같지 않았다. 인물 사진을 살펴보니 죄다 웃음기가 없다.

"웃는 모습이 거의 없네. 힘들어서 그랬나 봐."

당골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접고 원점 회귀를 하기로 했다. 잘한 선택이었다. 준비해 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한 후에 내려오는 동안 원래의 컨디션을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올라갈 때보다 훨씬 여유 있게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걸음도 좀 더 속도가 났다. 하기야 두 달 동안 전혀 산행을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달라진 점 세 번째. 올라갈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다시 찍었다. 군데군데 쉼터를 멋지게 조성해 놓았다. 가운데 배낭 걸이도 만들어 놓았는데, 아쉽게 사진에 안 보인다.

유일사 쉼터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알고 보니 새들이 산객들이 준 먹이를 먹느라고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워낙 빠른 데다가, 새를 찍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타이밍을 잘 못 맞추겠다고 한다. 겨우 건진 몇 장의 사진이다.

예쁜 산불 감시초소도 한 번 더 찍어보고.

멋진 눈길 등산로도 다시 찍어본다.

이런 눈길을 걷는 일.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없고 아무 때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나에게는 더 소중하고 귀한 행복이다. 이렇게 남편과 멋진 산행을 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 둘이 더 오래 함께 다닐 수 있도록 '함께 건강!' 하길 바란다.

낙엽송. 일명 일본잎갈나무라고 하는 이 나무는 침엽수 중에서 가을이면 단풍이 들고 잎이 떨어지는 낙엽침엽수다. 과거에는 전봇대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한창 녹화 사업을 할 때 주종으로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인공조림된 나무들 중에 엄청난 양을 차지한단다. 처음 도입된 것이 1904년이라니 일제강점기의 슬픈 역사와 관련이 있는 나무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역사적인 사실은 그렇다 해도 산을 다니다가 낙엽송 숲을 만나게 되면 쭉쭉 뻗은 줄기의 시원함과 침엽수임에도 부드러운 느낌의 잎사귀에 눈길을 자주 주는 편이다. 겨울 낙엽송 또한 눈을 만나면 특유의 부드러운 눈꽃이 만들어져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 주는 느낌이다. 방앗간에서 찧어져 나오는 쌀가루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들머리가 날머리로 원점회귀하는데, 하늘이 파랗게 마중한다.

"다시 올라갈까?"

하늘은 파랗지만 눈은 아직 내린다. 산행 내내 눈을 맞으면서 다녔다.

총 거리 8.3km. 걸린 시간은 5시간 20분이다. 일반 산행객들이 4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니까 꽤 거북이걸음이다.

원래 천천히 시니어 산행팀이지만, 차츰 속도도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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