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초암산 철쭉

첫 철쭉 초암산

by 세온

4월 한 달은 진달래 산행으로 바쁜 나날이었다. 진달래가 지기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산들은 품고 있던 철쭉을 드러내어 피우기 시작한다. 철쭉 명산은 한라산, 지리산, 소백산, 태백산, 일림산을 비롯하여 꽤 많은 산이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4월 끝자락 30일(토요일)에 우리는 첫 철쭉 산행을 시작했다. 보성은 녹차로 이미 유명하지만, 철쭉 명산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일림산(보성군 웅치면), 제암산(보성군 웅치면), 초암산(보성군 겸백면)이 있는 곳이다. 그중 하나인 초암산을 이번 산행지로 정하였다.
거리가 멀어서 숙박은 제암산 휴양림에서 하기로 했다. 마침 휴양관에 자리가 있어서 예약을 했다. 제암산은 두 번 다 휴양림에서 출발하여 곰재 철쭉제단을 거쳐 제암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제암산은 가지 않기로 했다.

새벽 2시 기상. 아침으로 먹을 유부초밥과 어묵탕을 만들고 새벽 3시에 집을 나섰다. 아침식사는 여산 휴게소 차 안에서 하였다. 일교차가 심해 약간 쌀쌀해진 날씨라 보온병에 담아 간 따끈한 어묵국이 일품이었다.

초암산 주차장에서 상까지는 2.8km인데, 보통 정상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등산객들이 많다. 오르막의 연속이긴 하지만 거리가 짧은 편이고 정상의 높이가 576m이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철쭉 명산이다. 올라가는 동안, 벌써 갔다가 내려오는 등산객도 있었다.

게 수남주차장 - 초암산 - 광대코재 - 무남이재 - 주월산 - 방장산 -수남 주차장으로 산행하는 코스도 있지만, 우리는 광대코재를 넘어서, 무남이재에서 윤제림 쪽으로 나가서 수남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택하였다.

요즘 산은 어딜 가나 녹색길이다. 연한 녹색의 어린 나뭇잎 색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숲길이다.

비가 많이 왔다더니 등산로 가운데가 푹 파였다. 이쪽저쪽 다리를 옮겨가며 조심조심 걷는다.

길은 계속된다. 길이 있으면 걷고 싶은데, 예쁜 길은 더 걷고 싶게 만든다.

완경사, 급경사 두 갈래 길을 만난다. 올라가서 보니 계단이 있으면 급경사이고, 없으면 완경사다. 완경사로 올라가는데 경사가 급한 건 마찬가지라 웃었다. 다음에는 그냥 급경사로 가기로 했다. 만사형통 스틱이 있으니까.

초암산(草庵山)의 암(庵)이 바위 암(巖) 자는 아니지만, 바위가 꽤 많다. 그래도 등산로가 그렇게 험한 편은 아니다.

이번에 알게 된 덜꿩나무 꽃도 보았다. 자주 만나는 꽃인데, 활짝 피면 마치 눈같이 예뻐서 늘 이름이 궁금했던 꽃이다. 제천 만수봉에서 처음 보았는데, 그때는 스마트 렌즈 검색을 모를 때라 이름을 알 수 없었는데 관악산에서 검색해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알고 나니 덜꿩나무 꽃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백제 때 창건했다는 금화사는 절터만 남아있단다. 높이 5m의 마애 석불이 그 터를 지키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금화사 절터 쪽으로 가지 않고 직진해야 정상을 간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철쭉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철쭉은 시야에 한꺼번에 들어온다. 유명 군락지답게 눈에 보이는 것이 다 철쭉이다.

하늘이 좀 더 도와주었으면 좋으련만. 하지만 어쩌겠는가. 꽃이 예쁘게 피었으니 감사해야지. 피크를 만나기도 어렵고, 파란 하늘과 함께 만나기는 더 어렵다.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 누리면 되는 것이다.

정상에 있는 바위를 망호암이라고 한다는데, 그 주변으로 철쭉 군락지가 넓게 펼쳐진다. 정상석은 철쭉 군락지 한가운데에 있는 셈이다. 정상석을 만나기 전에 철쭉에 휩싸여 버린다. 진한 행복의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파란 하늘이 살짝 드러난다. 다행이다.

바위들이 멋지다. 커다란 바위의 틈새로 철쭉 빛깔을 감상해 보기도 한다.

정상석의 모양이 바뀌었다. 5년 전보다 커졌다.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일찍 올라갔기 때문에 정상석 주변의 줄 서기는 하지 않아서 좋았다.

인증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마치 일부러 분재 작품을 만든 듯이 철쭉이 바위 위에 걸쳐져 피어있다.

주변 바위에 어린 철쭉이 바위틈에 또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뿌리내리는 과정이 힘들지, 뿌리가 안착하면 잘 산다고 한다. 이 작은 철쭉들도 잘 살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철쭉 평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상 화원이라고 했던가. 바로 여기가 그곳이다.

멀리 보이는 바다는 득량만이다. 전남 보성군과 고흥군 사이에 있는 만으로 넓은 간척 평야가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보이는 곳이 모두 철쭉이다. 바위와 어울려 멋진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속에 있으면 나도 꽃이 된 듯 착각이 든다. 그때만큼은 꽃인 양 행복해도 괜찮으리라. 하나하나도 곱지만 모인 꽃 무더기들이 참 곱다.

철쭉꽃 속의 이정표는 더 행복하겠다. 이정표에서 우리가 내려갈 방향인 광대코재를 확인한다.

포토존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가장 멋진 풍경을 골라 이 자리에 포토존을 만들었겠지 싶어 데크에 올라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우리 곁에 전문적인 카메라를 소지한 두 명의 남녀가 파노라마로 사진을 찍고 있다. 거의 180도를 돌면서 찰칵찰칵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연결된 모습이 궁금하다.

파란 하늘이 제법 나타나 우리를 도와준다. 청명한 날씨는 아니지만 그만큼이라도 반갑다. 나중에 보니 그 뒤로는 계속 회색 하늘이었다.

2017년 초암산을 찾았을 때도 피크였다. 철쭉도 참 좋았지만 내가 초암산에 따로 반한 일이 있었다. 비 온 다음날, 초암산은 철쭉만 보여준 것이 아니라 녹색 그라데이션을 제대로 보여준 산이었다. 그 모습을 또 보고 싶어서 다리가 허락할 때 한 번 더 가지고 졸랐다. 광대코재 내려가는 길에서 꽤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 쉽게 선택하지 못하던 코스였다.

첫 기억은 원래 그렇게 진한가 보다. 다음에 다시 찾아왔을 때 기억 속의 순간만큼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 정도면 녹색 그라데이션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다시 만나 행복했다.

경사가 급하니까 등산로가 많이 상했다. 길이 움푹 파여서 마치 계곡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비가 꽤 많이 왔나 보다. 길에 먼지는 나지 않아 좋았지만, 미끄러질까 봐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작은 봉우리인 밤골재에 올라서니 등산객들을 위한 벤치가 몇 개 설치되어 있다. 정상을 바라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휴식할 수 있게끔 한 작은 배려가 고맙다. 간단히 간식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선다.

여기까지 오는 등산객이 별로 없어서 산행이 더욱 편하다. 코로나 시대 등산로에서 사람 만나는 것도 스트레스였는데. 야외 마스크 해제 이틀 전, 대부분 등산객들이 마스크를 안 하고 다니는데 아직은 코로나가 종식된 게 아니니 마음 한켠에 불안함은 어쩔 수 없다.

철쭉봉을 넘어서자 또 철쭉의 향연이 시작된다.

광대코재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아마 그때 내 컨디션이 안 좋았던지 광대코재를 내려가면서 매우 고생한 기억이 나는데, 뜻밖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코스이긴 하다. 험한 길이라 내려오는데 집중하느라 사진을 못 찍었다.

무남이재 쪽으로 내려오면서 녹색 풍경을 실컷 본다. 숲속은 녹색 그라데이션 잔치다. 4,5월은 그래서 산행할 맛이 더 난다.

무남이재에서 임도로 연결이 된다. 산길로 직진하면 주월산 - 방장산으로 연결되는 종주 등산로가 되는데, 총 16km라고 한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 코스로 산행하려고 했으나, 다음날 다른 산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오른쪽 길인 윤제림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평길이지만 수남 마을까지 4km다.

윤제림은 개인이 운영하는 산림복합문화센터다. 잘 정리된 아름다운 숲정원에는 숲속야영장과 커피숍까지 갖춰져 있어 캠핑객들에게 인기 있는 핫플레이스인 모양이다. 숲정원을 공들여 가꾸어 일반에게 개방한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남해고속도로 옆길이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이 다니지만, 우리가 걷는 길은 윤제림으로 오가는 차 외에는 통행하는 차가 없는 듯하다. 더구나 걷는 사람들은 우리뿐이다. 포장도로라 발밑의 느낌은 딱딱하지만 사람 마주치는 스트레스 없이 호젓함을 즐긴다. 간혹 지나가는 차를 비켜 걷는 일 외에는, 텅빈 대로를 우리가 다 차지하였다.

걸어 나오는 내내 녹색 풍경이 우리를 즐겁게 한다. 녹색 그라데이션은 여전한데, 짙은 색 삼나무 숲이 색 하나를 더 보탠다.

고속도로 아래의 통로를 지나면 수남 마을로 연결이 된다. 5년 전에 만났던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때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렸더니 반가워하시면서 이곳 저것 물어보셨다. 팔순이 넘어 보이셨는데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걸은 거리는 11.2km, 걸린 시간은 3시간 20분이다.(202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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