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날, 보성 일림산을 찾았다. 전날 초암산 철쭉 산행을 마치고 보성군 웅치면에 있는 제암산 자연휴양림에서 숙박을 한 다음, 아침 일찍 서둘러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일림산 들머리로 향했다.
일찍 출발하였기 때문에 용추계곡 제1주차장의 좋은 위치에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산행 시작이 6시 30분. 이른 시간인데도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꽤 있었다. 철쭉으로 유명한 산이 꽤 많다. 철쭉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보성의 초암산, 일림산, 제암산을 비롯하여, 황매산, 서리산, 지리산(바래봉), 소백산(연화봉, 국망봉), 덕유산, 태백산, 한라산 등이 철쭉 명산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자랑하는 산이 바로 일림산이다. 약 100만 평이나 된단다. 등산객들이 선호하는 연계 산행코스로 한치재에서 출발하여 일림산 - 사자산 - 곰재 - 제암산 정상을 거쳐 제암산 휴양림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라는데, 총 16km,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철쭉을 볼 수 있는 등산로가 12.4km나 된다고 하니, 체력이 허락하면 그 코스로 산행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전날 초암산을 다녀왔기 때문에 우리는 짧고 편한 코스로 일림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산행을 끝내고 서울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용추교 들머리에서 일림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크게 3가지다. 첫째, 골치재를 거쳐서 가는 등산로. 둘째, 계곡 쪽(절터 방향)으로 등산로. 셋째, 임도로 골치재까지 가는 방법이다. 등산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임도로 왕복하는 트래킹을 하기도 한다.
임도를 끼고 조성된 자전거 라이딩 코스가 있었는데, 산행하는 내내 자전거 라이더를 한 명도 만나지 못하였다.
용추교를 건너면 편백 숲과 먼저 만난다. 키가 큰 편백나무의 줄기와 잎이 만들어 내는 짙은 숲 색은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묘약의 느낌이다. 편백 숲에서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피톤치드 덕분에 건강해질 것 같다.
골치재로 가는 길과 절터 쪽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우리는 절터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함께 출발한 사람들 중에 시끄럽게 떠들면서 올라가는 팀이 있어서, 일반적으로 등산객들이 많이 선택하는 길을 피해버린 것이다. 자연을 즐기러 온 등산객으로서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이 바로 사람이 떠드는 소리다.
절터 방향은 초입에 경사가 있어서 사람이 적은 편이다. 그래도 조금만 올라가면 평길 수준인 계곡길을 만나게 된다.
4, 5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보이는 곳마다 연녹색의 아름다움과 만난다. 이 시기의 어느 산이나 다 마찬가지다.
임도와 계곡길이 나란히 가는 길이 계속된다. 길은 평길 수준으로 완만하다.
작은 규모의 편백 숲을 만난다. 일림산에 편백 숲이 꽤 있었다.자연적 군락지라기보다는 조림을 한 듯하다. 누군가 처음에 작은 묘목으로 심어놓은 깊은 뜻이 지금 키가 하늘을 찌르는 편백 숲을 이루게 되었으리라.
철쭉을 보러 일림산에 온 것이 맞다. 하지만 녹색 숲이 주는 행복감은 꽃을 만나는 느낌에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나무들은 저희끼리 살면서 모여서 숲을 이룬 것이지만, 사람에게 주는 것이 정말 많다. 목재나 열매 같은 직접 생산물 외에도, 공기 정화, 물의 저장 같은 2차적인 이익 말고도, 정신적인 스트레스 해소, 면역력 증진 등의 도움을 준다고 하지 않는가.
숲을 벗어나 첫 번째 임도를 만났다. 길가에 쉬어가라고 벤치가 있다. 누구나 앉을 수 있는 빈 의자. 쉼이 필요한 나그네에게 도움이 되어주는 벤치처럼 나도 주변 사람에게 빈 의자 같은 포용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절터와 보성강 발원지 갈림길 안내판을 만났다. 우리는 발원지 쪽 일림산 정상 방향으로 간다.
수령이 오래된 서어나무가 멋진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하도 커서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하겠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수피가 정말 멋지다.
신록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햇빛을 받아 연녹색 잎이 푸른 보석같이 빛난다. 내 마음속까지 연녹색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다.
두 번째 임도는 화려했다. 홍단풍과 빨강 영산홍이 주위를 환하게 만든다. 약수터가 있었지만 음용불가라고 되어있다. 마실 물은 항상 가지고 다닌다.
산죽이 많다. 새로 길을 내었는지 산죽 사이가 베어낸 듯 단정하다.
간간이 보이던 철쭉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드디어 일림산 철쭉 능선에 도착한 모양이다.
철쭉의 향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유달리 선명한 빛깔의 철쭉 군락지가 화려하다. 힘들여 걸어 올라온 수고로움이 보상받는 순간이다.
집 주변 공원에도 예쁜 꽃들이 많건만, 왜 힘들게 산을 올라와 이 보상을 받고 싶어 하는 건지. 그런데 중독성이 있는지, 해마다 때가 되면 산 위에 모여 핀 진달래, 철쭉 군락지를 찾아 배낭을 꾸리고, 스틱을 쥐게 된다.
꽃 터널을 누비며 올라가서 일림산 정상석과 만났다. 일찍 갔기 때문에 당연히 정상석 차지가 쉽다. 피크기에는 정상석 앞에 길게 줄 서는 일이 보통이다. 토요일과 달리 파란 하늘을 실컷 배경으로 담을 수 있었다.
이정목에 녹차밭 안내도 있다. 보성은 녹차로 유명한 곳이다.
꽃길을 걷고 또 걷는다. 철쭉 군락지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 그분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꽃길을 마음껏 걸었다.
녹색 그라데이션과 철쭉. 산등성이가 빨갛게 물들었다.
골치재 쪽으로 내려간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원두막이 있는 쉼터가 우리를 맞이한다.
단체 산객들은 주로 골치재 쪽으로 올라온다. 골치재까지는 완만한 편인데, 골치재에서 정상까지는 경사가 조금 있는 편이다. 힘은 들겠지만 아름다운 철쭉을 보면 다 보상이 될 터이니 괜찮다. 단체팀이 쉬고 있었는데, 꽤 인원이 많은 데도 별로 시끄럽지 않아 감사하다.
골치재 쪽 등산로에는 철쭉이 적은 편이다. 식재한 듯한 철쭉이 크고 있으니, 몇 년 안 가서 아름다운 철쭉 군락을 이루리라 생각된다.
골치재를 넘어오면 바로 임도를 만난다. 걷기에 편한 길이다. 이제 녹색과 함께 하면서 날머리까지 임도로 내려가면 된다.
길이 있어서 우리는 걷는다.
길은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다준다. 잘 알지 못하는 길일 수도 있고, 이미 걸어본 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길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고 우리가 목적하는 곳까지 틀림없이 데려다준다.
용추교가 가까워지면 홍단풍 붉은색이 우리를 반긴다.
총 8.1km, 3시간 20분 동안 일림산 산행을 끝내니 아침 9시 50분. 단체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에 우리는 용추계곡 1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202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