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산의 더위는 등산에 집중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높이 오르지 않아도 되는 트레킹 코스를 찾아 산행을 즐길 때가 많다. 선자령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자주 찾는 여름 산행지인 셈이다. 다른 지역이 열대야로 시달릴 때에도 대관령은 서늘하다고 하지 않는가.
산을 다니면서 관심을 갖게 된 야생화가 선자령에 이렇게 많은 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야생화를 찍으러 다니는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야생화 출사지였다.
대상포진을 일주일 정도 앓고 난 다음이라 무리하면 안 될까 봐 선자령 코스 중에서도 가장 짧고 힘이 덜드는 <국사성황당 - 새봉 - 선자령 - 하늘목장 갈림길 - 원점회귀 코스>로 골랐다. 이보다 더 천천히 걸을 수는 없다고 하는 속도로 트레킹을 마치고 시간을 보니까 평소에 '천천히 시니어 산행팀'이라도 4시간이면 될 거리에 1시간이 더 추가되었다.
나도 산책하듯이 걸었지만, 남편이 피사체를 여러 번 찍느라 느리게 가는 나를 한참 기다리게 하는 일이 많았다. 산행이 아니라 야생화 출사 같았다. 트레킹을 끝내고 나서도, 동네 한 바퀴 한 듯이 몸이 아직 가벼워서 웃었다.
국사성황당 주차장은 좁아서 일찍 가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주차를 하고 산행 준비를 하고 있는데, 목에 명찰을 걸고 있던 분이 다가와 애기앉은부채가 있다고 한다.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서, 갈색 낙엽 속에 숨어 있어서 누가 일러주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보석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다. 아마 국사성황당과 관련된일을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덕분에 귀한 사진을 얻어서 감사했다.
국사성황당에서 대관령 옛길 등산로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하얀 꽃이 매력적인 궁궁이가 많이 눈에 띄었다.
궁궁이
흰진범
대관령 옛길 등산로는 포장이 되어서 걷기 어렵지 않다. 도로 양쪽에 야생화가 많이 보였다.
노랑물봉선
짚신나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싱아
물봉선
어수리는 꽃 가장자리가 나비 모양이라고 어수리를 키우는 사람이 가르쳐주어서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가장자리 나비 모양 때문에 바깥 꽃잎이 안쪽보다 더 커 보인다.
어수리
파란 하늘이 반갑다. 오랜만에 맑은 날씨를 보는 것 같다. 그동안 정말 비가 흔했다.
도로 양쪽으로 야생화가 지천이다. 서로 어울려 야생화 꽃밭을 만들었다. 야생화하면 함백산이나 곰배령을 먼저 생각하지 선자령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양으로 승부하려는 듯 야생화가 정말 많았다.
산씀바귀
산비장이
진범은 보라색을 띄는데, 전체가 흰색인 것을 흰진범이라고 한다. 마치 백조가 여러 마리 모여있는 듯한 모습이 신기하다.
흰진범
참취
동자꽃
강원 항공무선표지소가 발 아래로 보인다. 새봉 전망대가 가까운 모양이다. 하늘이 유난히 푸른 날이었다.
닭의장풀과 모싯대
맑은 날은 새봉 전망대에서 동해 바다와 강릉 시가지가 보인다. 이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대관령 고개를 넘으면서 보았던 강릉의 모습이다. 산과 바다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지않을까 싶다.
대관령과 선자령의 딱 중간 지점이다.
눈처럼 하얀 꽃이 피는 승마 종류를 눈빛승마라고 한다. 눈개승마보다 꽃이 더 예쁘다.
눈빛승마
단풍취
꼬리 끝이 약간 보라색이다. 전체가 보라색을 띄는 진범도 있다.
진범
숲속에 햇빛이 가득이다. 그 햇빛을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야생화와 풀들이 사이좋게 서로 나누어 쓴다. 작은 조각 햇빛이라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숲에 담아 건강한 에너지를 생산해 낸다.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숲의 향기는 진해진다. 온몸을 숲에 맡기고 그냥 걷기만 해도 숲의 건강한 에너지가 내 몸에, 내 마음에 오롯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오리방풀
송이풀
햇볕으로 나오니 개미취가 반긴다.
학창 시절 소풍을 갔던 '너우니'(진양호 부근)에서 만난 들국화가 어찌나 예쁘던지, 그 걸 소재로 콩트를 쓴 적이 있었다. 국어 선생님이 글을 보시고 개천예술제에 출품한다고 고쳐 써 오라고 하신걸, 느긋한 성격이던 내가 한참 만에야 갖다 드렸더니 마감이 지났다고 했었다. 그때만 해도 바쁠 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 작품은 학교 문집에 실리긴 했는데, 실렸던 책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버려진 모양이었다. 세세한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들국화에 빠져 일행을 잃어버릴 뻔한 소녀의 감성을 표현했던 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그때 그 보랏빛 들국화, 개미취에게 나는 이미 반했던 걸까?
그 들판에는 노란 들국화도 참 많았었는데, 아마 산국이나 감국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개미취
잔대
꽃층층이꽃
톱풀
각시취
꽃은 햇빛을 좋아한다. 그늘진 숲속에서도 야생화를 볼 수 있지만,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은 그야말로 야생화의 안방이다.
마타리
숲도 좋지만, 탁 트인 들판도 좋다. 파란 하늘은 행복감마저 느끼게 한다.
하늘멍. 하늘에 내가 빠져드는 느낌이다.
하늘 목장에 손님이 찾아왔다. 어느 외국의 목장 같은 분위기다.
풀이 바람에 드러눕고, 내 마음도 바람 따라 드러눕는다.
뚝갈은 꽃잎이 5장인 모양이 뚜렷해서 잘 기억할 수 있다. 마치 하얀 별꽃같다.
뚝갈
선자령 바람의 언덕(우리는 그렇게 부른다.)에 오르면,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불어오는 순수한 바람의 느낌을 온몸으로 받는다.
시야의 산들이 모두 발아래라, 때로는 내가 산에 우뚝 서 있는 나무 같은 느낌으로 바람을 맞는다. 하늘과 내가 소통하는 방법이 바람인 것처럼.
선자령에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있을까 궁금하다.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발전기가 선자령에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람은 언제나 거기 있다가 찾아오는 우리에게 시원함을 맘껏 선사한다. 그래서 더운 여름이면 '선자령 갈까?'하고 배낭을 싼다.
산비장이랑 고려엉겅퀴도 비슷하다.
산비장이는 가시가 없고, 고려엉겅뀌는 꽃받침 부근에 가시가 있는 게 다르다고 한다.
고려엉겅퀴
흰색 고마리
하늘을 실컷 구경하였다. 선자령은 하늘 구경하러 오는 곳이다.
정상석 뒤쪽 풀밭에서 간단히 휴식을 취하고, 강릉 시가지도 한번 내려다보고, 왼쪽 등산로로 내려간다.
풍력 발전기를 가장 많이 화면에 넣을 수 있는 포인트다.
은분취
처음으로 만난 온전하게 핀 구절초. 조금만 더 있으면 여기저기 화려한 꽃 잔치가 벌어지겠다.
구절초
정상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다 내려오면 짧은 임도 구간이 있다. 풍력발전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겨울에는 고드름이 떨어질 수 있다고 위험하니 접근하지 말라는 안내판이 있다.
하늘목장 갈림길이다.
며느리밥풀꽃과 새며느리밥풀꽃의 차이는 입술 색깔이다. 하얀 밥풀 모양이 아니고, 자주색이다.
새며느리밥풀꽃
2015년부터 산림 습원 복원 사업을 했다고 한다.산림 습원은 그 특이성과 다양성으로 인해 생태계의 보고라고 한다.
습지식물의 대표인 속새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속새
대관령 영웅의 숲까지 오면 국사성황당이 가깝다.
닭의장풀
박새
한 바퀴 돌아 제 자리에 온 거리가 8.7km다. 쉬엄쉬엄 산책하듯이 걸어서 5시간이니까 평균 시속 1.74km로 걸었다.
아마 다음부터는 시원한 산행지를찾아서가 아니라, 야생화를 만나러 여름 선자령을 찾을 것 같다.(22.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