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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Apr 14. 2024

한 세대는 가고

할머니를 아는 부모님 세대는 끝나고

 또 한 분의 어르신이 세상을 떠나셨다.

 올해 만 90세로 우리 곁을 떠나신 분은 친정의 작은어머니(숙모)다.

 사촌 여동생이 보낸 부고를 받자, 전화로 장례식에 가겠노라고 했다.

 양평에서 진주. 아마 내려가리라 기대를 안 했나 보다.

 "끝에서 끝인데, 그 먼 데를~"

 가고 싶었다. 남편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나는 장거리 운전의 수고로움을 남편에게 부탁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작은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50대 나이에, 아버지는 정년퇴직 후 5년을 못 넘긴 70 전에, 아버지와 10살 터울이신 작은 아버지는 80을 넘겨서 떠나셨다.

 할머니의 사연을 아는 어르신들이 거의 다 떠나신 것이다.

그 어르신들의 세대는 가고 이제 우리가 어르신 세대가 되었나 보다

 할머니의 후손. 아버지의 2남 2녀와 작은 아버지(숙부)의 2남 4녀(사촌 오빠는 몇 년 전 돌아가심.)가 대부분 60을 넘겼다. 우리 집 장녀인 언니는 70대다.

 이제는 가까운 친척 간에도 모임이 어려워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90이 넘으신 데다가 요양원에서 오래 계셔서 호상의 분위기였다.

 작은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들과 손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사촌인 우리 형제는 나와 통영 사는 동생네 식구들만 왔다.

 자연히 사촌끼리도 함께 자랐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너무 빨리 세상을 뜬 사촌 오빠 이야기, 그다음 세대인 아이들 이야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다.

 작은 아버지 장례식장에서도 연출되었던 분위기라 낯설지가 않다. 그때도 작은 아버지의 선물이라 표현했는데. 이번에는 작은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선물이었다.

 네 분의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자리에 어느덧 우리가 어르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굴은 어느 정도 세월의 주름이 새겨지고, 염색 안 한 머리가 하얗게 빛나며 살아온 시간의 길이를 가늠하게 한다.

 어린 시절 추억의 공유 끝에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화두를 던질 때쯤.

 젊고 예쁜 젊은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딸과 손녀와 우리가 사는 모습이 이미 주인공 세대가 누구인지 깨닫고 남음이 있었지만.

 내게는 오촌이 되는 아랫세대의 모습에서 정말로 우리가 어르신 세대가 맞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할머니의 사연으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마음만 먹었을 뿐 나의 어르신들에게 한 번도 그 속내를 보이거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내 능력으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쓸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는 심정이었는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사촌 오빠의 딸이 출판사에서 선정한 신인상을 받아 책을 냈다는 것이다. 방송작가가 꿈이라는 아이의 책을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문해서 반갑게 읽어보았다.

일상 에세이나 일반 수필과는 다른 깊고 날카로운, 산문시 같은 느낌의 글에 그저 '감동'이 아닌 '감탄'을 했다. 내가 평소 읽어오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의 글이라 서평을 쓰려다 말고, 그냥 애독자가 되기로 했다.

 아버지의 사촌 누님이 시인이고, 그의 딸 역시 시와 수필을 쓴다.

 우리 집안에 흐르는 글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의 등단 소식에, 문득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그 아이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버지가 못했던 할머니의 이야기, 내가 못했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 아이가 혹시라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

 기대대로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르신의 나이에 이르러서 꿈을 접는 중인데, 말간 얼굴을 하고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손님을 맞던 그 아이의 얼굴이 자꾸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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