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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Feb 18. 2024

시대 소설을 쓰고 싶었다

꿈꾸던 일본행

 고교 시절, 나의 꿈은 할머니와 연결되어 있었다.

 당시 진주에 있는 국립대에는 일어 전공이 없었다. 대학에서 영어 전공, 일어 부전공으로 졸업한 다음 일본에서 활동하는 특파원이 되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의 가족과 일본의 친척 사이에 다리가 되어 서로 왕래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딱히 훌륭한 소설가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우리 집안의 이야기를, 할머니의 억울하게 살아온 일생을 소재로 된 시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고교 선배인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님이 나의 롤모델이었다.

  우선은 일어를 공부하고, 일본에 가서 활동할 수 있는 직업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집안 형편상 4년제 대학은 안된다는 바람에 차선으로, 서울에 있는 교대를 가려고 했다. 당시 2년제이던 교대를 들어가서 일어를 배울 수 있는 야간대학(진주는 없었다.)을 다니려고 했던 것이다. 초등교사를 꿈꾼 것이 아니라  발판으로 삼아 일본으로 가려고 서울로 교대를 갔다.

 발령을 받고 근무 후편입고사를 위한 야간 학원에 등록하여 다니기 시작했으나, 공부가 되지 않아 포기했다.

 의지력이 부족했거나, 체력이 약했거나 두 가지 다 해당될 수도 있지만, 학원 시간 내내 졸음이 쏟아져서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같은 학원을 다녔던 남편의 프러포즈 멘트가

'일본에 안 가면 안 되겠냐.'였던 것도 한 이유다.

 결국 마음은 먹었지만, 험난한 길을 혼자 개척해 나가는 어려운 일보다 결혼해서 가정에 안착하는 편안한 삶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지금 딸과 손녀와 같이 잘 살고 있으니 후회되지는 않지만,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 길을 선택했어도 성공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는 모험을 꿈꾸었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시도는 해보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는 추진력이 부족했다. 어려워 보이면 더 노력하지 않고 쉽게 단념해 버린다. 나는 소설가가 될 만한 재능뿐이 아니라 자질도 부족하다.

 어린 시절 집에 동화책은 없었지만, 대신 아버지가 월부로 사두신 백과사전 전집이 다락방에 가득 먼지를 쓰고 처박혀 있었다. 바깥으로 놀러 나가지 않을 때는 다락방이 내 놀이터였다. 백과사전은 어린 나에게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사진은 모르던 세계로 나를 안내하는 신나는 놀잇감이었다.

 작은 창이라 어둡고, 천정이 낮아 똑바로 일어설 수도 없지만, 명절 때 한과 등을 보관할 때 외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아 나만의 아지트로 삼기에 충분했다.

 그 아지트에서 어느 날 소중한 기록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쓰신 일본 방문기의 첫머리를 쓴 낡은 공책이었다.

 내용은 거의 잊혔지만, 소설의 시작처럼 쓰신 아버지의 글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후에 커가면서 내가 우리집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싶다는 막연하지만 거창한 꿈을 꾸게 된 것 같다.

 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제대로 된 취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글을 쓰는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소설가들의 인고의 세월이 문장 하나하나에 스며들어있음을 안다.

 '결혼, 그리고 이별'은 물론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써본 소설 형식의 글이다.

 쓰다 보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는 괜찮다 하더라도, 100년 전 시절의 두 나라의 실상을 알기가 어려웠다.

 하다못해 그 시절 일본에서 흔한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할아버지가 쓸 법한 일본 이름이 무엇인지, 소설의 등장인물 이름조차도 짓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몇 년 후에 소설을 쓰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년이면 칠순이다.      

 친척 중에 등단 시인, 수필가가 몇 사람 있는데, 할머니의 생애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머니와의 추억보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더 기억에 많다. 쓰려면 내가 써야겠지만, 재능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또 있다. 할머니가 살아온 시절을 아는 분들이 거의 다 돌아가시고 남아있는 세 분도 만나기 힘들다. 만나도 그 시절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다.

소심한 시도를 해본다. 에세이 형식으로 내가 아는 범위에서 할머니와 아버지의, 그리고 이어진 우리 형제간까지 내려오는 그 질긴 숙명의 세월을 그려보는 것.

 내가  이 매거진을 만든 이유다. 만들어 놓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몇 편이나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안 쓰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할머니의 생애, 아버지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훗날 혹시 내 자손 중에 괜찮은 소설가가 나타나거든, 그에게 우리 집안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시대 소설을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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