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산 철쭉 / 축령산까지
금요일이면 당일 코스로 산행이나 여행할 거리를 찾는 남편. 오늘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서리산으로 향했다. 늘 계획과 준비는 남편이, 내가 한 일이라고는 도시락 준비밖에 없다.
일찍 서둘러서 아침 7시가 조금 지나서 양평 집을 나섰다.
새로 뚫린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양평에서 남양주 축령산 휴양림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이 도로가 없을 때보다 한 20분 이상 단축되었다고 남편이 좋아했다. 아직 우리 차 내비게이션에는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은 도로다.
서리산은 철쭉(연달래) 군락지를 보러 여러 번 왔던 곳이다. 피크 때를 맞추어 갔노라 했는데, 제대로 핀 철쭉은 딱 두 그루 보았다.
우리나라가 기후 갈이를 하는 것일까? 진달래 산행은 천주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철쭉도 초암산부터 바래봉까지 제대로 만개한 곳이 없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올해는 바래봉 철쭉 산행도 생략하였다. 기온이 안 맞아서 꽃이 덜 피거나, 늦게 피거나 하는 것 같다. 꽃 군락지는 이제 인공적으로 조성된 곳에서만 즐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번에는 서리산으로 올라가서, 연결된 등산로를 따라 축령산을 간 다음 하산을 하기로 했다.
일찍 도착해서 주차장은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서 주차했다. 입장료는 철쭉 피는 기간에는 면제라고 한다. 얼마 안 되지만, 배려하는 느낌이라 기분이 좋았다.
금낭화가 많은 곳이다. 벌써 씨앗 주머니가 생긴 것도 많았다.
서리산으로 가는 입구다. 500m 정도는 제법 가파른 편이다.
잣나무 숲을 지나간다. 아침의 서늘함과 잣나무 숲 그늘 때문에 상쾌함이 배가된다.
휴양림 내에 산내음 둘레길이라는 걷기 길을 새로 조성해 놓았다.
예전 계단은 왼쪽에 있는 것처럼 통나무를 찍어서 만든 것만 있었는데, 오른쪽에 다시 계단을 만들었다.
바위와 나무뿌리가 인상적인 험한 길의 연속이다. 밧줄을 잡고 낑낑대고 올라가느라 스틱은 무용지물이 된다.
쪽동백나무 꽃이 참 예쁘다. 이 나무의 열매로 기름을 짠 것이 머리에 바르는 동백기름이라고 한다.
숲길은 그야말로 초록초록이다.
바위 사이에 뿌리를 잘 내리는 말발도리인 것 같다.
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나무가 검색해 보니 노린재나무라고 한다.
숲은 이런 것이다. 초록의 세계. 초록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 사이로 걷는 느낌은 힐링 그 자체다. 5월의 아침 산행은 기온도 최적이라 걷는 걸음이 날아갈 듯하다.
나무에 박힌 듯한 동그란 바위가 재미있다.
철쭉꽃이 바닥에 더 많다. 비가 와서 거의 다 떨어진 모양이다. 서리산 철쭉이 지난주에는 덜 피었다고 해서 이번 주에 피크인가 했는데, 처음 만난 철쭉이 마치 예고하는 듯 살짝 실망감을 안겨준다.
그래도 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다행이다.
하산하는 어느 산행객이 딱 한 그루 제대로 피었다고 하더니, 바로 이 철쭉인가 보다.
꽃을 많이 만나기는 어렵지만 초록 숲길이 마음에 충분히 위로가 된다.
한반도 모양으로 철쭉이 피는 곳이었는데. 해마다 철쭉 한반도를 만나기 힘들더니, 올해는 아예 초록 한반도다.
새로 나오는 단풍나무 잎이 가을인 것처럼 발그레하다. 싹둑 잘린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아마 철쭉 동산 보호를 위하여 철쭉이 아닌 나무를 베어낸 것 같다. 살아나려고 안간힘을 써서 새순을 올리느라 잎이 저렇게 붉어진 것일까?
예전에 읽었던 박완서 님의 수필에서, 목련 나무를 잘라내었더니 그 밑동에서 많은 새순이 나와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철쭉을 살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단풍나무나 참나무도 나무의 삶을 다하고 싶었을 텐데 마음이 무겁다. 저렇게 다른 나무들을 희생시키면서도 철쭉이 제대로 피지 않았으니, 꼭 그래야만 했나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무와 숲을 더 잘 가꾸려고 많은 연구 끝에 실행을 한 일이겠지.
예쁘게 핀 철쭉이 한 그루 더 있어서 반가웠다.
철쭉 동산을 지나면 금세 서리산 정상에 도착한다. 해발 832m다.
정상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좀 더 가서 늘 우리가 쉬던 쉼터에서 과일 도시락을 먹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축령산 방향으로 걸어간다.
초록이 가득한 아름다운 숲길을 즐기면서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서리산 등산로 중에서 남편이 특히 좋아하는 길이라고 한다.
팻말이 붙어있는 나무는 신나무다. 수령이 매우 오래된 나무라 지나갈 때마다 인사하듯이 들여다보고 간다. 시골 마을의 정자나무 같은 느낌이다.
신나무의 꽃을 자세히 보기는 처음이다.
헬기장 사거리다. 이곳에서 헬기장을 거쳐 축령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간다.
헬기장은 전망이 탁 트이는 곳이라 기분이 좋다.
축령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서리산보다 더 가파른 산길이다.
붉은 병꽃나무가 많이 보인다.
바위틈에 저 어린 철쭉은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축령산은 해발 887.1m다. 서리산보다 조금 더 높은 편이다.
단풍나무 꽃과 신나무 꽃이 조금은 다르다. 프로펠러처럼 생긴 열매는 비슷한데. 신나무도 단풍나무과다.
스틱이 필요 없는 험한 구간이다.
밧줄을 잡고 레펠 하듯이 내려가야 한다.
발아래 저 풍경은 산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멋진 모습이다.
남이장군의 수련 바위. 움푹 파인 곳이 남이장군이 앉았던 자리라고 한다. 그 아래는 낭떠러지라 나 같은 사람은 무서워서 가까이 가기도 힘들어 보인다.
멋진 산그리메. 지금 사진으로 보아도 그 감동이 생생하다.
내가 좋아하는 큰앵초를 만나서 반가웠다. 또 있나 찾아보았지만, 더 만나지는 못하였다. 큰앵초 만나러 태백산에 가고 싶다.
벌깨덩굴도 참 예쁜 꽃이다.
나무 계단이 있어서 험한 축령산 등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 홍구세굴 쪽으로 갔다가 길을 못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수리바위 길로 내려갔다.
독수리 머리를 닮은 수리바위다. 축령산에 독수리가 유난히 많이 살았는데,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독수리 부부가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한다.
오른쪽에서 찍은 모습도 어떤 짐승의 머리 같다.
숲 속 놀이터가 보이면 거의 하산을 마무리할 지점이다.
야영장 쪽으로 내려가서 휴양림 관리사무소 쪽으로 가면 주차장으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뽕나무인 것 같아서 살펴보니 오디가 주렁주렁 달렸다. 산뽕나무는 일반 뽕나무보다 오디와 잎이 작은 편이다.
관리사무소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휴양관이 있다. 우리가 서울에 살 때는 서리산과 축령산 산행 때 자주 이용한 곳이다.
양평으로 이사한 지금은 새로 난 고속도로 덕분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보다 한 시간은 단축되는 셈이니 숙박할 필요가 없는 거리다.
축령산 하면 나는 험한 길이 먼저 생각나는데, 남편은 그걸 잊어버렸던가 보다. 망설이다가 예전에 갔던 산이니까 못 가기야 하겠냐 싶어서 그러겠노라 했는데, 정작 남편이 이렇게 험한 산에서 자칫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이제는 축령산도 접어야겠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잊어버리면 또 서리산 갔다가 축령산 가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축령산 산행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행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나이가 되어가니까 요즘 들어 더욱 산행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아쉬워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꽃 여행보다는 걷기 길, 걷기 길보다는 산행에 더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다.
쉬운 산행은 아니었지만. 총 거리 8.4 km, 6시간 30분 동안.
철쭉꽃도 보고, 초록 숲도 느끼고, 험한 산길도 즐기면서 재미있게 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