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은 운동장으로
첫눈 오는 날 우리 만나자. 이런 약속을 요즘도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젊은 시절에는 그런 약속을 할 수 있는 것을 무척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첫눈 오는 날 그냥 집으로 퇴근하는 일? 짝이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첫눈이 내렸다. 12월 4일이니 예년보다 좀 늦은 편일까. 보통 11월 말이면 첫눈이 내렸던 것 같다. 통계를 찾아본 건 아니니, 첫눈이란 좀 빨리 내리는 눈이라는 느낌 때문에 11월 말에 내린 눈이 더 기억에 남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학교도 11월 말에서 12월 초로 넘어가는 이때가 겨울 준비 시즌이다. 교사는 학년말 수행평가와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를 위한 종합 정리에 바쁜 시기다.
단원도 걸맞게 살짝 느긋해진다. 복잡한 계산식이나 머리 아픈 지식 정보보다는 놀이 형식이나 정서적인 수업 내용이 많아진다. 중요한 평가는 이미 끝나고 학년 마무리 및 새 학년 준비에 바쁜 겨울이 온 것이다.
요즘은 좀 다를지 모르겠지만, 내가 퇴직한 때가 2015년이라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니 그러려니 짐작하시기 바란다.
"선생님, 눈 와요!"
눈이 오면 강아지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가. 살짝 내렸다 녹는 눈은 아이들에게 실망만 안겨주고 무사히 끝나지만,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그 시간은 이미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 다음 시간에 체육 하자."
와! 하는 함성과 함께 그 시간은 어찌어찌 끝 내고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부리나케 운동장 나갈 채비를 차린다.
1학년이라는 학년이 참 가르치기 쉽지 않은 학년임에도 그 매력을 알고 단련이 되면 전공인 듯 1학년만 도맡아 하는 교사들도 꽤 있다. 나도 그런 교사였다.
12월이면 충분히 훈련되어 예비 2학년으로 손색이 없는 아이들이 가장 예쁠 때다.
운동장에는 고학년 중학년 저학년 상관없이 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눈을 즐기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1학년 담임들이 모두 나와 모여 서있는 주변에 아이들이 눈덩이를 만들어 던지거나 작은 눈사람이라도 만들듯이 눈을 뭉치는 몸짓을 선생님께 보여주며 눈맞춤하려 애쓴다.
한 녀석이 눈을 뭉쳐 내게 던지려고 폼을 잡는다.
"선생님은 안 돼."
간혹 친화력 강한 용감한 교사가 아이들과 눈싸움하며 즐겁게 해주기도 하지만 나는 한 번도 같이 눈 장난을 한 적은 없다.
아이들도 선생님과 눈 맞춤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금세 예의를 지키고 저희끼리 눈놀이에 열중한다.
짧은 쉬는 시간이 지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가면 체육을 하기로 한 반만 남아서 눈 내린 운동장을 더 즐긴다.
달리기만 해도 좋고, 늘 준비되어 있는 줄넘기만 해도 좋고, 이럴 때는 단원과 상관없이 눈이 온 운동장에서 맘껏 뛰고 놀 수 있는 시간을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1학년 교과서의 겨울은 단원이 '겨울'이다. 겨울을 공부하고, 겨울을 느끼고, 겨울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가르칠 때마다 교육과정을 참 잘 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늘 아침 남한강길을 걷다가 양평자유발도르프 학교(대안학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웠다.
10년을 넘게 거슬러올라가, 아이들과 보냈던 눈 내린 학교 운동장에서의 시간을 추억하며 행복해졌다.
첫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어제저녁 퇴근길 교통 정체가 심했다고 한다. 눈이 오면 어른들은 걱정이 먼저인데, 여전히 강아지와 아이들은 신났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