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먹던 음식
고향은 엄마생각이 대부분이고, 엄마는 어릴 적 먹던 음식에 대한 향수와 항상 함께 한다.
엄마의 고향은 하동 횡천. 지금은 교통이 많이 좋아졌겠지만, 어릴 적 기억에 버스를 내려서 한 시간 이상을 걸어서 가야했던 두메산골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식 넷 중 셋째라 어쩌다보니 외갓집을 거의 가보지 못했다. 기억도 안 남은 세살 때와, 다 큰 후 중학생 때 딱 한 번 가본 기억 밖에 없다. 장녀인 언니는 외갓집에 자주 갔다는데. 셋이나 주렁주렁 데리고 한 시간 이상 산길로 걷기 쉽지 않았으리라.
오히려 터울이 큰 막내동생은 외갓집에 자주 갔던 것 같다. 세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난 후라 막내만 데리고 가기 쉬웠을테니까.
중학생 때 방문한 외갓집은 시골이지만 행랑채는 철거했다는데도 대갓집 수준은 아니지만 꽤 규모가 큰 기와집이었다. 사랑채에 연못도 있고 본채에 누각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한때 주변 일대가 다 외갓집 땅이었다는데,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으면서 쇠락해 가던 집안을 외삼촌의 장남이 다시 일으켜세워서 지금은 번듯하게 잘 산다는 소식을 언니를 통해서 들었지만, 나는 그 뒤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나서 외할머니, 외사촌들의 진주 나들이가 더 쉬웠고, 외사촌들은 아예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외갓집 나들이는 더 어려워진 이유도 있겠다.
엄마(어머니라고 부른 적 없다. 친정어머니는 엄마다.)도 고향에 대한 향수가 없었을리 없을텐데. 살기 바빠서 나중에는 건강이 나빠져서 고향을 자주 찾지못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늘 있었을텐데.
나도 엄마처럼 고향을 자주 가지 못했다. 내 딸도 진주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을 듯 하다. 살기 바빠서, 나중에는 두 분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니 가지 않게 되어버렸다.
호박범벅은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이다. 고향 생각을 하면서 만드셨을 법한, 노랗고 달콤하고 걸죽한, 호박죽과는 다른 음식이다. 드문드문 씹히던 팥과 강낭콩의 맛도 매력적이었다.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한테서 배우지 못했던 조리법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고교 졸업 후 바로 독립? 서울 자취생활을 시작했고, 내가 배운 음식들은 대부분 결혼 후 시어머니 전수다.
살면서 어린 시절 먹던 호박범벅을 레시피 찾아 혼자 해보겠노라고 몇 번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호박범벅은 어릴 적 먹던 음식 중 가장 향수를 많이 느끼는 음식이며, 그것은 엄마 생각이고, 고향이다.
늙은 호박을 사둔 지 오래되었다. 호박죽도 해먹고 호박씨도 받을겸. 호박잎쌈이나 호박잎찌개를 좋아하는데, 호박잎은 맷돌호박잎이 제일 나은 것 같아서다. 여행 다니다가 꽤 큰 것을 싸게 팔 기에 덥석 사놓고 시간도 안 나고 용기도 안 나서 전실에 놓고 장식물처럼 두었었다. 해를 넘기고 봄이 다 되어서야 호박을 잘랐다. 다행히 썩지는 읺았지만, 씨앗 몇 개가 발아해서 콩나물처럼 자란 것이 몇 개 있었다.
손질해서 호박죽 끓일 것을 냉동실에 넣고, 삼등분한 양 정도를 쪄서 호박범벅을 시도해보았다.
레시피는 검색으로 대충 골랐다. 호박은 쪄서 으깨고, 찹쌀가루 넣고, 팥은 30분 이상 삶고, 강낭콩은 중간에 넣어서 같이 삶아 준비했다. 새알심도 익반죽으로 몇 개 만들어두었다.
예전에는 멥쌀가루인지 찹쌀가루인지 헷갈렸고, 들어간 호박의 양이 적었을까. 생각보다 엄마가 해주신 호박범벅과 비슷하게 나왔다.
야생화꿀을 넣었더니 조금 검어진 것 말고는 거의 비슷했다. 덜 단 것을 보니 엄마는 설탕을 나보다 많이 넣었을까싶다. 설탕을 조금더 추가해서 엄마가 해주신 바로 그 호박범벅을 만들었다. 나도 연륜이 생기다보니까 호박범벅도 만들 수 있었나보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 음식을 하게 되면 더 생각이 난다.
딸도 제 가정을 꾸리고, 저를 닮은 딸을 키우며 잘 산다. 입에 맞는 음식도 식성에 맞게 잘 챙겨준다.
딸이 어릴 적 먹던 음식 중에 체질이 바뀌어 잘 먹지 못하는 음식이 생겨서 좀 섭섭하지만, 딸이 물어볼 때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는 친정엄마가 되어서 좋다.
쉰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신 엄마의, 내가 어릴 적 잘 먹던 음식 레시피는 고향 생각과 엄마 생각을 버무려 내가 찾아 만들어야한다.
너무 일찍 가신 친정엄마가 보고싶다. 그 때는 너무 힘들 때라 나중에 잘 살게 되면 잘 챙겨드리려했는데. 장례식 내내 철이 덜든 딸은 그 속상함에 더 많이 통곡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