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은퇴 생활
누군가 내년이면 나이의 앞 자릿수가 바뀐다고 카페에다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아마 5에서 6으로 바뀐 모양이다.
나는 56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이미 올해 앞 자릿수가 바뀌었고, 내년에는 만으로 계산해도 빼도 박도 못하게 7을 앞자리에 갖다 대고 살아야 한다.
이미 65세가 넘어서면서 경로 우대의 혜택을 감사히 받으면서, 누가 나이를 확인하고는 정말이냐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해 주는 것을 은근 즐기는 중이다.
주름 질까 봐 에센스 아이크림 꼼꼼하게 찾아 바르고, 등산복 등산화 차림에 산에도 전처럼 큰 산은 못 가지만 그래도 열심히 다닌다고 자랑하고 산다.
하지만 7에서 8로 가고 9로 가는 세월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떤 단체이건 장을 잘 맡았다. 특별히 능력이나 책임감이 있는 편이 아닌데도 아이들이 잘 뽑아주었다.
나서기를 꽤 좋아했나 싶은데, 아마 인정받기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도 괜찮다, 실력 있다,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좋아했던 것을 보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꽤 큰 편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이왕이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잘 한다 인정해 주면 정말 신난다. 그런 재미로 블로그나 브런치, 카페에 글도 쓰고 사람들과 소통도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퇴직한지 10년, 양평으로 거처를 옮긴 지 3년, 나이 70.
이쯤에서 열심히 하고 있던 일들을
우선멈춤! 하고 돌아보았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거지?
뭘 또 인정받고 싶은 거지?
장미 잘 키우는 것?
브런치에 글 잘 써서 인정받는 것?
캘리그라피?
겨울 다운 추위로 영하 10도 내외가 되니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느라 거의 캘리그라피 연습과, 그림, 악기 연습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캘리그라피는 2년 동안 배운 것을 총 복습 중인데 이미 한 번씩 다 써 보고 두 번째 쓰기에 들어갔다.
그림은 캘리그라피에 그리는 그림을 따라 그리기 복습 중이다. 수채화 위주다.
악기도 하루에 한 시간씩 연습하는 중이다. 잊어버린 운지법도 슬슬 기억나는 중이다. 아직 어렵다.
장미는 썬룸에서 고전 중이다.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몇 개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영하로만 내려가지 않게 히터를 가동해 주고 있다.
11월에 삽목한 것은 저면관수한 물이 혹시 얼까 봐 거실로 갖고 들어왔다. 영하 10도가 풀리면 다시 썬룸으로 나갈 예정이다. 겨울이라 뿌리내리기까지 오래 걸릴 것 같다.
장미를 많이 잘 키워서 인정받기에는 너무 화단이 좁다. 욕심을 버렸다.
캘리그라피로 작가가 되거나 부업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이것도 자격증 딸 정도로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즐겁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함께 하는데 만족한다.
그림은 캘리그라피 그리기에 부족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
악기도 연주회 할 정도의 실력을 원하는 것이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잘 하면 된다.
인정받으려는 함정에서 벗어나야겠다.
은퇴 생활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갖고 즐기는 것이다.
25년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다.
현명한 70대로 살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 브런치를 처음 도전할 때만 해도 수필로 등단하거나 책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응모도 몇 번 해보고 나름 열심히 글을 써보기도 했다. 지금은 그 욕심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한결 여유있게 나의 글을 써 나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