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선거일 하루 휴가 받았다. 물론 지난 금요일에 사전투표를 이미 했다. 평일 산행하기가 쉽지 않은데, 1박 여행의 기회를 잡고 무주 덕유산 산행을 했다.
덕유산은 우리가 자주 가는 산 중에 하나다. 더운 여름이나, 상고대가 그리운 겨울에 곤돌라 타고 중봉까지 갔다가, 다시 곤돌라 타고 내려오는 산행은 비용은 좀 들지만 부담이 적어서 자주 선택하던 산행지다.
물론 5년 전쯤만 해도, 구천동탐방지원센터 출발 - 백련사 - 향적봉 - 중봉 - 오수자굴 - 백련사 - 구천동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오는 풀코스로 여러 번 다녀오기도 했다.
백련사에서 향적봉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우리한테는 좀 험한 편이라 덕유산 리조트에서 곤돌라 타고 올라간 다음 향적봉-백련사로 내려오거나, 향적봉 - 중봉 - 오수자굴 - 백련사로 내려오는 코스로 산행을 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은 최단 코스로 백련사 - 향적봉 - 백련사 코스를 선택하기도 한다.
백련사에서 구천동탐방지원센터까지는 약 6km이지만 거의 평길 수준이라 어렵지 않다
이번에는 <덕유산 리조트-(곤돌라)-설천봉- 향적봉-중봉-오수자굴-백련사-구천동탐방지원센터>로 계획을 했다.
향적봉-중봉 - 오수자굴 -백련사 쪽 등산로가 향적봉에서 백련사로 바로 내려오는 것보다 거리가 멀고, 그렇다고 쉬운 길이 아닌 줄 알기에, 아직은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도 작용했다.
소백산 국망봉 산행 계획이 취소된 후 남편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덕유산 철쭉 소식이 뉴스에 나왔다고 갑자기 가자고 하더니, 바로 휴양림을 예약하고 딸에게 양해를 구한다. 초스피드 산행 계획에 늘 하듯이 군말 없이 협조한 것이다.
차는 구천동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두고 무주리조트 곤돌라 승강장으로 갔다. 일반적으로 구천동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덕유산 리조트까지 택시 비용은 1만 원이라고 한다.
덕유산 리조트에 도착하니 8시 반. 가게에서 카페라테 한 잔 주문해서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시원했다.
곤돌라 점검이 끝나고 9시부터 탑승을 시작하는데, 그전에 매표를 시작해서 벌써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곤돌라 덕분에 힘 안 들이고 설천봉까지 올라갔다. 산 위의 공기는 산 아래의 공기와 다른 느낌이다.
곤돌라 타고 올라와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만 갔다가 오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것만으로도 산 위에서의 푸른 숲을 만끽할 수 있다. 더구나 향적봉 정상까지 갈 수 있으니,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매우 좋은 트레킹 코스다. 설천봉 향적봉 코스가 피로도가 가장 높은 등산로라는 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철쭉(연달래)이 피어 있다. 덕유산은 높은 지대라 봄이 늦게 온다. 산 아래는 여름 날씨에 가깝지만 이곳은 아직 봄이다.
시간이 일러서 정상석을 차지하기가 어렵지 않다. 늦은 시간에 오면 인증 사진을 위해 긴 줄 서는 것이 당연한데, 1,614m 높이의 정상을 너무 쉽게 올라와 미안하다. 정상점은 사실 좀 더 위다.
산꼭대기가 위험해서인지 정상석이 약간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더 위로 올라가 인증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람이 많지 않아 남편도 위로 올라가서 설천봉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600m다. 왕복해도 1.2km밖에 되지 않는다. 향적봉에서 남덕유산까지 14.8km인데, 그곳까지 종주하는 등산객들도 있다.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안성탐방지원센터 - 동엽령 - 송계삼거리 -중봉 - 향적봉까지 왔다가 되돌아간 적이 있긴 하다. 지금은 못할 것 같다.
정상에서 보면 하늘색이 더 파랗다.
여기저기에서 철쭉을 만난다. 다른 철쭉 군락지와는 달리 모여있지는 않다.
중봉 가는 길에 만난 바위 미끄럼 바위다. 조심해서 내려가야 한다. 미끄러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곳을 아고산대라고 부른다. 아고산대는 고산대와 산지림 사이에 위치한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형을 말하는데,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은 지역이다. 구상나무, 주목 등 상록침엽수림 및 철쭉, 신갈나무 등 낙엽활엽수림과 원추리, 산오이풀 등이 서식한다고 한다.
기후 온난화로 인하여 구상나무와 주목이 살아내지 못하고 고사하는 현상이 이 덕유산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곳곳에서 누렇게 뜬 구상나무와 주목을 만났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고산대 식생 보호를 위해 마련한 묘포장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현상을 사람의 힘으로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 할 것이다. 산에서 귤, 과일 껍질 버리지 않는 작은 일부터라도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아고산대 묘포장 존재감이 확실한 이 나무는 주목이란다. 수령이 몇 년인지 궁금하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말처럼 주목은 오래 살고, 고사목이 되어서도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킨다.
이곳 덕유산 평전은 원추리 군락으로 유명하다. 6~8월 한창 더울 때 피는 원추리를 보려고 덕유산을 찾기도 한다. 산 아래는 매우 더운 날도 여기는 서늘하다. 더운 여름 산행지로 그만이다.
꽃대가 생긴 원추리 두 고사목은 유명한 포토존이다. 제목이 "여보, 어디 가!"이다.
남편 나무는 어디를 가는 걸까? 아내가 애타게 부르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가려고만 한다. 살짝 비켜서 찍었더니, 그만 아내 손에 잡혀버렸다.
중봉에서 송계삼거리로 가는 길인 덕유 평전을 정말 좋아한다. 소백산 비로봉 평전, 한라산 어리목에서 만나는 평전과 함께 내가 3대 평전으로 꼽는 곳이다.
저 길을 걸어서 걸어서 가면 송계삼거리까지 닿을 수 있다. 이제 제 추억 속에서만 걸어야 할까? 자꾸 접어야 하는 어려운 산행길이 느는 중이다.
발길을 돌려서 오수자굴 쪽으로 내려간다.
산 위에서만 볼 수 있는 발아래 푸른 산이다.
녹색 융단 같은 느낌이 든다. 자연이 창조한 예술품이다.
참나무 숲과 조릿대 길이 계속된다. 다소 지루한 구간이다.
오수자굴 방향의 등산로가 그렇게 편한 코스는 아니다. 나무 사이로 곡예하듯 몸을 비틀어 지나가기도 하고, 스틱의 힘을 빌어 가까스로 바위로 된 위험한 길을 지나기도 한다.
긴 계단이 보이면 고생 끝이다. 바로 아래에 오수자굴이 있다.
오수자굴 오수자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 하여 오수자굴이라 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화가 전해오는 곳이다. 나는 하루도 못 지낼 것 같다.
오수자굴은 산객들이 애용하는 쉼터다. 특히 올라올 때는 꽤 긴 거리를 걸어왔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데 마침 안성맞춤의 쉼터가 딱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도 간단한 간식과 한 잔의 차와 적당한 휴식을 갖는다.
오수자굴을 지나면 계곡과 등산로가 가까이 있어서 좀 더 쾌적한 산행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덥긴 했다. 탁 트인 곳이 없기 때문에 조금만 계곡에서 멀어지면 땀이 난다.
백련사까지 왔다. 이제 임도나 구천동어사길을 택하여 내려가면 된다.
노약자들을 위해 전기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튼튼한 두 다리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패스한다. 하루에 5회 운행하는데, 4월 25일부터 10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실시한다는 안내 플래카드를 나중에 입구에서 볼 수 있었다.
구천동어사길은 계곡과 함께 하는 쾌적한 길이다. 숲과 물과 멋진 바위... 풍광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계속되는 그늘과 계곡 바람은 여름에 걷기 좋은 길에 등록을 해도 될 만큼 상쾌하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있는 트래킹 코스다.
길을 아주 편안하게 조성했다. 도시에 있는 공원길 같이 야자 매트도 깔아서 걷기 좋았다.
구천동 계곡에는 폭포나 소의 이름이 많이 붙어있는데, 구천 폭포, 월하탄, 사자담, 다연대, 청류동 등의 명칭은 계곡물의 형태에 따라 붙여졌다고 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아름다운 경치나 감상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명경담이다. 담은 물이 흐르다 넓고 깊은 못(물웅덩이)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다리가 어사길과 임도를 연결해 주고 있어서 언제든 옮겨가며 걸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임도로만 다니면 꽤 지루한데, 어사길이 생겨서 참 재미있었다. 하지만 무릎에 무리가 가거나 발바닥이 아프면 임도가 훨씬 부담이 덜 가는 길이다.
물속에 비친 풍경. 파란색 조각하늘도 보인다.
흐르는 물이라 마치 유화를 그린 것 같은 색감이 연출되기도 한다.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예전에 화장실이 있는 쉼터였는데, 살짝 오르막이라 여우고개라고 이름을 붙였던 생각이 났다. 데크길과 계단으로 두 갈래 길을 만들어서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아름다운 새들의 대화. 서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새 종류가 다르면 새소리도 달라서 사람으로 치면 심한 사투리 못 알아듣는 거나, 혹은 영어와 국어처럼 아예 소통이 어렵지나 않을까 싶다. 검은등뻐꾸기 새소리가 '호, 호, 호, 호오'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어떤 장난스러운 산객이 '홀, 딱, 벗, 고'라고 표현했을까. '홀딱벗고새'라는 이름이 인터넷 검색이 되는 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후, 투, 투, 티(솔, 솔, 솔, 미)'라고 생각하며 들었는데, 사실 후투티새는 '투, 투(솔, 솔)' 또는 '투, 투, 투(솔, 솔, 솔)'로 들리는 소리를 낸다.
임도는 늘 다녀봤으니까, 임도 왼쪽에 있는 구천동 어사길이 궁금해서 그리로 가기로 했다.
숲과 계곡의 연속이다. 임도보다는 훨씬 낫다.
남편이 무릎에 통증이 있다고 해서 끝까지 걷지는 못하고 도중에 임도로 나왔다.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못 걸어본 어사길 코스는 꼭 가봐야겠다.
폭포에 장노출 안 하고 찍었다는데, 사진이 멋지게 나왔다.
비파담이다. 7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을 하고 넓은 반속 위에서 비파를 뜯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단다.
사자담 내려가는 길에는 큰 돌탑이 자리하고 있다. 단조로운 임도에 이런 조형물은 심심함을 깨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구천동 수호비 구천동어사길 시작점까지 왔다. 우리는 여기서 주차장 더 가야 한다.
금강모치와 구상나무가 덕유산의 깃대종이라고 한다. 깃대종은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특정 지역의 대표 야생 동·식물을 말한다.
320년이 넘은 느티나무다.
좋은 글귀가 있어서 옮겨본다.
나는 당신을 위해 이렇게 서 있습니다.
이 땅에 일어났던 모든 재난 속에서도 오직 당신을 위해 의연히 서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아끼고 사랑해 주신다면 당신과 당신의 후손들 곁에서 억겁을 살으렵니다.
사람은 길어야 100년밖에 못 사는데, 나무는 300년도, 천년도 더 이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만약에 나무가 말을 할 줄 안다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할까? 수백 년 동안 이 자리에서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살아갈 큰 나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아침 8시 10분에 이곳을 떠나 다시 원점회귀했다. 덕유산을 자주 왔지만 언제나 후회 없는 즐거운 산행이었다. 앞으로도 체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덕유산 산행은 계속할 생각이다.
오늘 걸은 거리는 13km, 6시간 30분의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