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태백산은 다른 산과 느낌이 좀 다르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으며 우리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지명이다. 하늘에 제를 올리는 산을 '밝은 산' 백산(白山이라 하였고,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밝은 산'이 바로 태백산(太白山)이다. 순우리말로 한밝달이다. 배달민족의 어원도 박달→ 밝달→ 배달로 변한 것이다.
<태백산 국립공원 안내판>
태백산 하면 눈꽃여행이다. 태백산은 등산을 하기 전에도 겨울에 눈꽃 여행으로 많이 찾았던 곳이다. 등산을 시작하고 나서도 거의 겨울산행을 하다가 2013년부터 철쭉 산행을 시작하였다. 철쭉 명산은 초암산을 시작으로 태백산에서 끝난다고 한다.
올해 소백산과 태백산이 4월 꽃눈 생길 때 한파가 심하게 와서인지 철쭉 개화가 예년 같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소백산은 포기했는데, 태백산은 망설이다가 산행을 하기로 했다. 철쭉은 다른 산에서 실컷 봤으니까... 혹시 피어있을지도 모를 앵초(큰앵초)를 보기 위하여 찾아간 것이다.
철쭉을 보러 갔다가 만난 큰앵초는 정말 내게 깜짝 선물이었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국망봉 가는 길에서 앵초를 처음 만났는데, 그 등산 코스는 총거리가 17.5km인 데다가 등산로가 우리 수준에는 꽤 험한 편이라 이제 추억 속의 산행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산에서도 간간이 만나면 그렇게 반갑던 큰앵초를 문수봉-천제단 코스에서 다시 만난 이후, 태백산 하면 큰앵초 생각이 먼저 나는 산이 되어버렸다.
6월 4일 토요일. 당골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아침 7시 40분에 출발했다.
겨울이면 하얀 눈밭에 멋진 눈조각이 가득하던 당골광장을 지나고, 태백석탄박물관 옆길로 들어서면 문수봉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번 산행 코스는 <당골탐방지원센터 출발-문수봉-부쇠봉-태백산 천제단-반재 -당골탐방지원센터>로 계획하였다.
등산로로 들어가면 푸른 숲이 기다린다. 바깥은 햇빛이 쨍쨍한데, 문수봉 올라가는 내내 숲 그늘의 연속이었다.
데크 계단까지는 거의 평길이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올라가야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된다.
아침을 못 먹고 올라온 우리는 적당한 장소에 돗자리를 펴고 간단한 간식과 바나나로 요기를 했다. 배가 부른 상태로 오르막길을 걷기가 쉽지 않아 산행 1시간 전에 보통 아침을 먹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냥 올라오게 된 것이다. 준비해 온 도시락을 먹고 올라가기에는 부담스러워 도시락은 점심을 위해 남겨두었다.
숲은 겉 보기는 푸른데 사실은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뿌리가 약한 작은 나무들이 시든 잎을 잔뜩 매달고 있었고, 관중도 바닥에 퍼져버린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기예보에 곧 비 소식이 있으니까 기대를 해 본다. 지역에 따라 꽤 많은 양의 비가 온다니까 이번에 가뭄이 완전히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숲은 그래도 꿋꿋하다. 물이 부족한데도 땅속에 깊게 뿌리를 박고 초록을 지탱해 낸다.
고광나무 꽃이 눈에 띄었다. 산을 다니다가 만나는 예쁜 꽃은 청량제다. 꽃잎이 4장이고 뽀얀 꽃 색이 귀티가 난다. 하얀 꽃잎이 밤중에도 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기억에 문수봉 가는 길이 울퉁불퉁했던 돌길이라 걷기에 불편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정비를 많이 한 모양이다. 반듯반듯한 계단과 길 덕분에 돌이 많은데도 걷기에 참 편했다.
쓰러져 오래된 나무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벌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이끼들의 마당이 되었다가, 차츰 분해되어 흙으로 사라지겠지.
소문수봉과 문수봉의 갈림길이다. 꽤 넓은 장소에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었다.
태백산국립공원의 탐방로 표식인데 좀 특이하다. 형광이라 밤에도 잘 보일 것 같다.
주목 군락이 나타나면 문수봉 정상이 가까워진다.
줄기 속이 비었는데, 나무는 살아있다. 주목 말고는 이런 나무를 본 적이 없다. 어떻게 체관 물관이 성하지 않은데, 푸른 잎을 무성하게 달고 살아있을 수 있을까?
거대한 이 참나무도 꽤 오래 산 것 같다. 천년을 산다는 주목만큼은 아니겠지만.
문수봉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을 기대했는데, 수증기 구름층이 뿌옇게 생겼다. 그래도 문수봉 전망은 늘 시원하다.
당골광장에서 3.5km 올라왔다. 천제단으로 2.6km 더 가라고 한다.
문수봉 정상표지는 나무로 되어있다. 일반적으로 바위로 된 정상석이 많은데, 여기는 정상표지목이라고 불러야겠다.
문수봉 정상표지목 부근에는 돌이 가득 차서 흙을 찾아볼 수가 없다. 당연히 나무 한 그루도 자라지 않는 땡볕이다.
길 표시가 없지만. 돌탑 옆으로 천제단 가는 등산로가 있다. 우리는 그곳으로 내려간다.
돌과 나무가 함께 있는 등산로다. 꼭 계산한 듯 발 닿는 자리에 편안하게 놓인 계단목 덕분에 걷기가 편하다. 나중에 반재에서 하산할 때 보니까 이런 모양으로 등산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바쁘게 일하는데 방해될까 봐 조용히 지나가긴 했지만,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큰앵초를 만났다! 6월의 태백산에서 앵초를 만나는 일은 내게 선물 같은 즐거움이다. 야생화 중에서 앵초를 제일 좋아한다. 한 포기도 아니고 아주 많이 만났다. 매우 반가웠다.
한참 앵초와 놀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사스레나무가 많았다. 자작나무, 거제수나무와 매우 비슷한데, 사스레나무도 은빛 나는 수피를 가진 나무다.
자작나무는 눈(目) 모양의 자국이 있어서 금방 구별이 되지만, 거제수와 사스레나무는 잘 구별이 안 간다. 똑같이 수피가 종이처럼 벗겨지는데, 거제수는 약간 붉은 기가 돌고, 사스레 나무는 잎이 좀 더 크고 잎맥이 뚜렷한 것 같다.
철쭉은 거의 없었다. 얼마 안 피었다는데, 그나마 지는 중이었다. 나중에 하산하면서 보니까 태백산 철쭉 전국 등반 대회가 6월 5일에 있다는데, 기대하고 왔다가는 많이들 실망할 것 같다.
한 해 걸러 많이 핀다고 해거리한다는 말이 있던데, 태백산, 소백산 철쭉도 내년에는 풍성하게 피었으면 좋겠다.
나는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즐기면 된다. 원하던 꽃산행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등산에 집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철쭉 대신에 앵초 꽃산행이다.
큰앵초가 무더기로 피었다.
부쇠봉 가는 길에도 앵초 밭이다.
철쭉 지고 나면 병꽃의 계절이다.
부쇠봉은 백두대간 산행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중요한 곳이다
천제단이 보인다.
오랫동안 태백산을 지켜오는 주목이다. 뷰 포인트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활짝 핀 철쭉도 만났다.
태백산 천제단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부족 국가 시대부터 천제를 지내온 곳이라는 기록이 전해온다고 한다. 천제단이 3개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천왕단과 북쪽의 장군단, 남쪽의 하단이 한 줄로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데다가 점심 먹을 만한 장소를 찾지 못하여 고생을 좀 했다. 하단 주변에 쓸만한 쉼터가 많아서 드디어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산행 중 자연에서 먹는 도시락은 당연히 꿀맛이다.
다만 산행하는 동안 날이 가물어서 그런지 산길을 걸으면서 더위보다는 파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점심 먹을 때도 한 손으로는 파리를 쫓고, 부지런히 밥을 먹느라 힘들었다.
배가 부른 상태로 정상까지 올라가야 해서 걱정을 했는데 거리가 얼마 안 되어 괜찮았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발아래 산은 언제나 황홀하다.
태백산 정상 쪽에도 병꽃나무가 피어 있다.
사실은 장군봉(1,567m)이 최고 높은 곳인데, 천제단 때문에 정상석(1,560m)이 이곳에 세워진 듯하다.
해마다 개천절이면 나라의 태평과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강원도민체전 때 성화에 불을 붙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인이면 태백산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나무 밑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이 혹은 백두산이다, 묘향산이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태백산이라는 이름은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어쨌거나 그 이름은 물려받은 게 확실한 민족의 영산이 아닌가.
단군 성전도 이곳에 있다.
사람도 풍경이란 말을 자주 한다. 이곳에서 사람들의 쉬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인다.
천제단에 요즘엔 들어가서 인증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태백산 신령님이 귀엽게 봐주시는지. 옛날 같으면 신성모독죄로 다스리지 않았을까.
한참 기다렸다가 사람 없는 틈을 타서 겨우 사진을 찍었다. 누군지 얼굴을 알게 나오면 초상권 때문에 모자이크 처리해야 하고, 그러면 사진이 질이 떨어지는 듯해서 웬만하면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하산은 반재 방향이다.
내려가는 길에 고광나무가 꽤 많이 있었다.
태백산 산행을 할 때 가장 짧은 코스가 당골 - 반재 - 천제단 코스다. 사실 초보 산행객들도 어렵지 않게 도전할 수 있는 곳이다. 태백산 산행을 한번쯤이라도 갔다 온 사람들은 '아! 나 저기 알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단종이 억울하게 죽은 후에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영월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고 하는데, 단종비각이 여기 있는 이유와 관련이 있지 않나 짐작해 본다.
단종비각 뒤뜰에 핀 철쭉과 앵초도 섭섭할까 봐 찍어본다.
망경대의 모습이다. 천제단에서 300m 거리다. 등산객들에게는 망경대보다는 멋진 용정약수가 더 인기가 있을 것 같다.
하얀 야생화가 지천이다.
돌무더기는 어느 산에서나 볼 수 있는데, 조형물 같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
옛날부터 산을 걷다가 돌 하나 던지면서 소원을 빌고 갔다는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그래서 성황당이나 산길 모퉁이에서 돌무더기나 돌탑을 많이 보게 된다.
반재 쉼터다. 정상을 지나고 좀 나아졌나 했더니 반재 쉼터에서 또 파리가 심하게 귀찮게 한다. 어떤 산객은 도시락을 꺼내다가 파리 때문에 못 먹겠다고 도로 집어넣기도 했다.
나도 산행하면서 파리 때문에 얼굴을 가리기 위해 등산 수건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등산 수건 색깔 때문인지 얼굴까지 달라붙던 파리들이 주춤하긴 했지만,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내 생각이지만 환경이 나빠지니까 파리가 과잉 번식된 듯하다.
등산로를 정비 중인 모양이었다.
돌과 나무로 만든 계단을 만들고 있었다. 포클레인 옆을 지날 때는 위험을 느껴 지레 넘어질 뻔했지만, 이분들 덕분에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등산로가 만들어지는 거니까 얼마든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포클레인 기사까지 네 분이 일하고 있었는데, 여자분이 꼼꼼하게 계단목과 돌을 배치하여 계단을 만드는 것을 보고 방해될까 봐 소리 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고맙습니다!'하고 지나갔다.
데크 계단이 꽤 긴데, 이곳을 지나면 평길 수준의 등산로만 남게 된다.
날이 가문데, 흙에 충분히 뿌리를 박지 못한 나무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같아 안쓰럽다. 씨앗은 자신이 떨어진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애를 쓴다. 큰 바위와 혹은 돌무더기에서 뿌리를 뻗어 뻗어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며 큰 나무로 자랐으리라. 이 나무들이 이번 가뭄에도 꼭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수량이 너무 적다. 이곳은 상수도 보호구역이다. 이 물로 이 지역 사람들의 식수를 충당해야 한다. 그래도 긴 가뭄에도 물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숲이 아니면 어려울 일이다.
다리.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 주는 길 - 다리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양쪽을 모두 아우르려면 더 포용적인 자세가 필요하겠지.
개다래나무는 자신의 잎을 변색시켜 곤충을 유인한다는데, 하얗게 변한 잎이 신기하다. 개다래나무 꽃을 처음 보았다. 곤충을 잘 유인하여 열매를 잘 맺었으면 좋겠다.
암괴류라는 이름은 비슬산 산행 때 알게 되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애추와, 암괴류, 토르 등의 용어를 열심히 공부했었다. 애추는 높은 경사에서 암괴(커다란 암석), 암설(암석 조각)이 낙하하여 쌓인 것이고, 암괴류는 낮은 경사에서 암괴가 흘러내린 것이란다. 비슬산보다는 암괴의 크기가 작은 편이다.
6월 초인데도 쉽지 않은 산행이었다. 더위는 각오한 바이지만, 파리가 왜 그렇게 극성인지. 가뭄이 문제라면 이번 비 오고 완전히 해소되었으면 좋겠다. 기록을 보니까 8월에도 태백산 산행을 한 적이 있는데, 이렇지 않았다. 그래도 예쁜 앵초를 많이 만나서 행복했다. ^^
주차장 한가운데 작은 숲이 있다. 그 안에 성황당이 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을 지키는 성황당이었을 것 같다.
총 거리 12.2km, 7시간 17분의 산행이었다. 2년 전에 12km를 6시간 30분에 산행하였는데. 풍경 사진을 더 많이 찍어서인지,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지... 50분이나 더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