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억새 산행으로 시작된다면 그다음은 당연히 단풍 산행입니다. 설악산으로 먼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지요. 하지만 시작은 설악산일지 모르지만, 단풍의 절정은 오대산에서 제일 먼저 맛을 봅니다.
아, 오대산! 접은 지가 한참 된 산입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선재길만 걸었지, 오대산 비로봉에 오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 건강이 계속 좋은 상태는 아니었거든요. 정형외과 단골병원이 있을 정도니까요. 갈 때마다 의사가,
"이번은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라고 물어볼 정도로 아픈 부위도 다양했습니다. 발목부터, 엉덩이, 무릎, 허리, 등, 어깨, 목, 손목, 손가락...
가장 오래 아팠고, 산행뿐이 아니라 걷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던 부위가 무릎입니다. 지금은 무릎이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좋아져서 맘껏 다닐 수 있게 되었는지 신통할 따름입니다. 다른 아팠던 곳들도 지금은 멀쩡해요. 허리만 무리하면 조금 아플 뿐이에요.
힘든 산을 거의 포기하면서 자연히 오대산 등산도 포기하였었는데, 슬그머니 용기를 내어보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더 힘들 텐데, 못 가게 되기 전에 가 보자!"
그래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오대산 산행을 오랜만에 시도해 보았지요. 사람이 많을 것을 각오하고, 단풍 절정 시기인 10월 15일 토요일에 선재길이 아닌 비로봉을 가기로 결정했어요.
오대산 비로봉 등산로는 상원사 - 적멸보궁 - 비로봉(정상) - 원점회귀하는 짧은 코스와, 비로봉에서 상왕봉 - 두로령 - 북대사 - (임도) - 상원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긴 코스가 있는데, 우리는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간 다음, 두로령으로 가지 않고 상왕봉 삼거리에서 임도로 내려와 상원사 주차장으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오는 길에 보니까 선재길 단풍이 예뻐서 잠깐이라도 걸어보려고 했던 거죠.
새벽 일찍 길을 나서서 오대산 상원사 주차장 도착이 오전 7시 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원사로 가는 도로가 거의 주차장으로 변하는데, 그 시간에는 주차장에 여유가 많이 있어서 자리를 골라 주차했습니다.
전에 왔을 때보다 주차장이 더 넓어보이고, 제반 시설들도 잘 갖추어져 있더군요. 오는 길에 본 버스 승강장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구요.
날이 밝아지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주차장 주변이 이미 단풍으로 멋지게 물들었습니다.
북대사에서 내려오는 임도길 쪽도 단풍이 많이 들었네요.
문수동자와 세조의 전설이 전해지는 관대걸이는 여전하네요.
상원사로 올라가는 길이 새로 단장된 듯하여 넓은 도로로 가지 않고 그길로 들어섭니다. 여름 내내 푸르던 잎들이 단풍 들 준비를 하느라고 연두빛으로 살짝 변하는 중이네요. 이곳까지 완전히 단풍이 들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단풍나무가 많은 곳이라 완전히 물들면 정말 예쁜 곳인데 살짝 아쉽네요.
섭섭하지 말라고 불그레한 단풍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오대산이 다섯 봉우리가 있어서 오대산이라고 한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비로봉(1,563m)을 비롯하여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호령봉 등 5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오대산이라고 하였다는데, 모두 1,400m가 넘는 봉우리들입니다.
오대산 오대서약만 지키면 법이 필요 없지 않을까요? 친정아버지를 친척분들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표현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아버지는 오대서약 대로 사신 분이었네요. '너희 아버지는 법이 필요 없으신 분이야.'라고들 하셨지요.
상원사 절마당에 잘 안 올라가는 편인데, 이번에는 절마당을 지나 상원사 뒷길로 향합니다.
요즘은 초파일과 상관없이 등을 다는 절이 많더군요. 절과 탑과 등이 잘 어울립니다.
황금 봉황새와~
익살스런 호랑이 석상이 눈에 들어오네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상상의) 새와 동물이겠지요. 하늘을 날 준비를 하는 봉황새를 호랑이가 공작 단풍나무 뒤에 숨어서 훔쳐보는 건지. 그 무서운 호랑이를 친숙하고 장난스럽게 표현해 버리는 해학을 엿봅니다.
남편이 이 소년상을 찍고 싶었던가 봅니다. 연잎을 우산처럼 쓰고 있는 아이는 아직 동자승도 아닌 모양입니다. 평상복 차림의 아이는 작은 연못 옆에서 앞으로 동자승으로 살아갈 생활을 상상하는 걸까요? 지금껏 살아온 세상을 그리워하는 걸까요?
단풍 속으로 뛰어드는 듯이 드디어 오대산을 오릅니다.
중대사자암과 적멸보궁까지 중간중간에 석등이 놓여 있습니다. 석등인 줄 알았는데, 안에 스피커가 있는 것도 있습니다. 걷는 내내 청아한 목소리의 불경 외는 소리가 발맞추어 걷게 하네요.
단풍잎은 빨간색, 은행잎은 노란색이라고 가르치던 시절에 가을 산에 올라와서 보고 아니다!를 외쳤었지요. 그때 단풍잎을 색깔대로 여러 장 가져다가 아이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산에서의 단풍나무 잎은 빨강, 주황, 노랑, 혹은 그 혼합색 등 다양한 색으로 물이 듭니다.
중대사자암은 기와가 연속되어 있는 모습이 멋있더군요. 이번에는 하늘과 단풍이 어울려서 더 멋진 장면입니다.
산은 단풍이 절정입니다. 참나무가 많은지 멋진 주황색 단풍색이 아침 햇빛을 받아 제대로 빛나네요.
길도 깔끔해지고 용안수 약수터도 깨끗이 정리되었어요. 적멸보궁까지 오는 신자들이 많아서 이곳까지는 길을 편하게 단장해 놓은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궁전이라는 적멸보궁은 전국에 5곳이 있는데, 법당 안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고 하네요. 올라가는 계단만 카메라에 담고 우리는 비로봉으로 향합니다.
다보탑을 조각한 석공이 보면 놀라지 않을까요? 사람의 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기계를 이용하더라도 어떻게 이런 문양으로 돌을 깎아냈는지, 이어붙인 것 같지도 않아 한참을 보았습니다.
여기서부터 비로봉까지 1.5km는 제법 강도가 센 등산로입니다. 이곳을 올라갈 때마다 악! 악! 하면서 올라갔던 기억이, 내려와서는 허벅지와 종아리 통증 때문에 한참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데, 거의 모든 구간을 계단으로 잘 조성해 놓아 힘이 훨씬 덜 들더군요.
봄, 가을철 산불 예방기간이 되면 통제를 하는 산림감시 초소를 지나 드디어 계단을 오릅니다.
올라갈수록 전망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파란 하늘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산 저쪽에 무슨 호수일까요? 아니면 바다? 하얀 구름이 바다처럼 있는 것을 운해라고 한다지요. 호수 같으면 운호일까요?
정상에서 본 파란 하늘은 땀과 노력의 결과라서 그런지 더 예뻐 보입니다.
정상에서 운해를 다시 찍어봅니다.
가까이 당겨 찍어보았습니다.
상왕봉 쪽으로~
짧은 거리로 다녀갈 산행객들은 비로봉에서 원점회귀하지만 우리는 두로령 방향으로 향합니다.
정상의 모습은 이미 겨울입니다.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란색이네요.
햇빛 때문에 건너편 산의 단풍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주목 군락 보호지역이랍니다. 아고산생태계 지역에서 주목이 자란다는 것을 덕유산에서 알게 되었는데, 이곳도 아고산생태계의 핵심 지역이라고 합니다. 곳곳에 수령이 오래되어 보이는 주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상왕봉에 도착하여 간단한 휴식을 취합니다.
상왕봉 삼거리에서 두로령으로 가지 않고 임도 쪽으로 내려가서 상원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가기로 합니다.
다시 단풍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쉼터로 자리 잡은 곳입니다. 단풍이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던 곳인데, 햇살이 너무 강하여 우리가 직접 본 만큼 카메라가 표현하지 못하여 아쉽네요.
이런 하늘을 보며 점심을 먹는 그 맛. 이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둘이 함께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더없이 행복하였어요. 전망이 멋진 고급 식당이 부럽지 않죠.
오대산이라 추울까 봐 보온 도시락을 준비하였는데, 따뜻한 도시락과 커피 한 잔이 참 좋았습니다.
한참을 쉬고 내려오니까 임도가 금방 나오네요.
이번에도 하늘이 우리를 들뜨게 합니다.
저멀리 북대사 모습이 주황색 단풍산 속에 파묻혀 있네요.
임도는 편안한 길이라 부담이 적지요. 곳곳에 심심찮게 단풍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주어 지루할 새가 없네요.
나무 사이로 슬쩍 아침에 들른 상원사를 찍어보았습니다. 너무 멀어서 흐릿하네요.
아, 파란 가을 하늘은 아름다운 단풍 못지않게 큰 감동을 줍니다.
노래를 불렀어요. 하~늘이 예뻐요. 단~풍이 예뻐요. 바~람이 예뻐요. 국악 장단에 맞춰 저절로 노래가 나오길래 흥얼대며 걸었지요.
하늘이 하늘이 예뻐요. 단풍이 단풍이 예뻐요. 바람이 바람이 예뻐요.
바람도 더울까 봐 얼마나 예쁘게 불던지. 나중에는 우수수 멋진 낙엽비까지 선사하더군요.
구름도 구름도 예뻐요~
주차장 하늘도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아침에는 여유가 많던 주차장이 나올 때는 들어오는 차, 나가는 차 뒤엉켜서 잠시 정체도 겪었지만, 국립공원 직원들이 열심히 교통정리를 해주셔서 그래도 금방 나올 수 있었습니다.
선재길은? 차에 타니까 그냥 쉬고 싶더군요. 내리지 말고 그냥 양평 숙소로 가자고 했죠. 피곤했나 봐요. 이번에 못 가면 내년에 가면 되죠 다음 주에는 선재길 단풍도 빨갛게 절정을 이룰 것 같은데, 행선지를 다른 곳으로 정해두었거든요.
평일날 혹시 딸과 손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갈 수 있으면 가 보려고 하는데, 다른 일로 바쁠 것 같아서 잘 될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걸은 거리는 12km, 휴식 시간까지 합하여 6시간 30분 걸렸습니다.
젊은 건각들은 정말 빨리 걸어요. 보통 5시간 정도 걸린다는군요. 그래도 제가 오대산도 다녀올 수 있는 비결은 천천히 쉬엄쉬엄 걷기 때문이지요.
이번 오대산 산행을 다녀오고 또 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올 겨울 오대산 눈꽃 산행을 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