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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명지 Jul 26. 2023

명중 수집가

연명지



검은 코뿔소의 몸은 

어디가 명중일까요

과녁을 향해 달려가는 코뿔소는 

귀에 의지해 시력을 의심하지요 

한 호흡, 느리게 코뿔소가 쓰러지고

아프리카 초원에서 명중 하나가 사라집니다.

명중에선 어김없이 노을이 쏟아져 나옵니다

숨죽인 풀들 한쪽 눈을 질끈 감지요.


노을이 꼬리를 잔뜩 세우고

공작새처럼 걸어오네요.

새들은 꽃의 얼굴에 넘쳐나는 검은 열매를 좋아하지요.

글씨를 몰라 이기적인 전래동화를 들으며 자랐거든요

시간은 스스로 명중을 찾아갑니다

거절을 지나 신조차 없는 세계를 서성이며

초침을 지긋이 감아봅니다 


조준은 한쪽 눈을 질끈 감아야 합니다.

감은 다른 눈엔 그동안 수집한

명중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명중을 위해 두 눈을 뜨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무심코 두 눈을 연 사이

그동안 모았던 명중들이 다 도망칠지도 모르니까요.


조간신문을 보면 명중 수집가들은 넘쳐납니다

나는 어떤 종류의 수집가일까 왼쪽 눈을 감아봤어요

단순히 불행을 비껴가는

듣고 싶은 과녁만 향해가는 수집가가 보입니다

쉽게 짓무른 자리에 

풀꽃이 돋아나고 다시 짓물러갑니다


한 계절, 씨앗이 수십 개의 명중을 끌고 

열매 속으로 가는 이유는

모든 꽃이 과녁이어서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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