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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명지 Oct 11. 2023

머리빗는 파랑, 산토리니


                        


  벼랑끝 이아마을에는 하양과 파랑이 있어

  멀리 동방예의지국에서도 찾아오지


  초승달 모양의 검붉은 절벽 능선에 눈이 내려앉은 듯한 섬,

  베네치아 사람들은 성 이레네를 추모하며

  벼랑에 옹기종기 모인 마을에 산토리니 이아마을이라는 이름을 주었어.

  사람들은 하얗게 벽을 칠하고, 교회의 둥근 지붕에 파란색 빵모자를 씌워주었지

  부지런한 후손들 매일 하얀색을 칠하며 전통을 이어가고 있어


  파랑과 하양을 말려 멀리 아주 멀리 보내기도 하지

  하지만 하양과 파랑은 서로의 바깥 에게해에서만 내내 환하지

  신기루 같은 색들을 물에 풀면 파도가 철썩철썩 아름다운 일몰을 풀어놓지

  화산섬의 비밀이 그리운 사람들 로망을 안고 배 멀미를 참아내지


  좁은 골목을 꽉 채운 파랑에 홀린 사람들, 세상은 알 수 없는 모호한 사진들이 너무 많아


  파랑에 담긴 오십 년 로망에 속았다는 어떤 이는 다시 파랑을 찾아 떠나고 우리는 파랑에 붙들려 바쁘게 팔짱을 끼었어


  경사가 심한 골목에서 파랑을 뛰쳐나온 머플러를 깔고 앉아 그리스인 조르바를 생각했어


  몸속 어딘가에 있는 우울을 꺼내 아무렇지 않게 맨발로 춤추기 시작했어

  삶을 춤추듯 즐기라는 조르바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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