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메타버스를 위한 상상력

1. 세계의 구축

by 금동이발톱

(3) 접속 종료 시 캐릭터의 상태


접속 종료 시 캐릭터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아주아주아주 중요하다. 메타버스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가 기존 게임을 할 때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것, 기존의 메타버스 세상에 몰두할 수 없는 이유, 기존의 메타버스 안에서 자체적으로 경제가 형성될 수 없었던 모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는 캐릭터 A를 상상해 보자. 캐릭터 A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채집해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열심히 사과를 따고 있다. (그가 채집한 사과는 그의 가방에 담긴다.) 또 다른 캐릭터 B는 A의 주변에 숨어서 A의 사과를 훔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B는 A를 공격할 수 있고, 위험에 처한 A는 사과가 담긴 가방을 내려놓고 도주를 할 것이다. 그러면 B는 A의 가방을 챙겨 달아날 수 있다. (새로운 메타버스에서는 캐릭터와 캐릭터 사이에 공격을 자유롭게 허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A의 접속이 끊어진다고 가정하자. 스마트폰 배터리의 방전, 인터넷 연결의 끊김, 기타 수백 가지의 개인적인 사유로 언제든지 접속이 끊어질 수 있다.


기존의 게임에서는 접속이 종료되면, 사과를 따는 A는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A는 사과나무에서 사라지고 차후에 다시 접속하게 되면 다른 장소(맵의 시작점이나 성 안의 광장 등)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이는 매우 당연해 보이고, 현실적인 여러 여건 등을 감안하면 적절한 처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반칙이자 기만행위이다.


캐릭터 B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눈앞에 먹잇감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허탈하고 황당할 것인가. A의 사과를 절취하기 위해 B가 소요한 시간과 노력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가?


기존의 게임에서는 개발자들은 접속 종료 시 캐릭터가 사라지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유에 의해 갑자기 게임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해줌으로써, 그 게임은 현실감을 잃어버리고 사용자는 몰두할 가치를 이유를 찾지 못한다.


새로운 메타버스에서는 접속이 종료되었을 때 캐릭터가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춘다. (종료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앉고, 눕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다른 캐릭터는 얼마든지 접속이 종료된 캐릭터의 몸을 뒤지고, 물건을 훔치고, 심지어 그 캐릭터에게 상해를 입힐 수도 있다. 물론 그 캐릭터를 업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올 수도 있다.(이는 "인신매매"를 다룬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상상을 해보자.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집이 왜 필요한가? 가족과 공동체는 왜 필요한가? 주머니에 많은 현금을 지닌 사람이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잠들었다고 가정하자.


아침에 깨어보니 돈을 도난당했고, 감기까지 걸렸다. 누구의 잘못인가? 현실에서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산다. 우리가 안심하고 잠시 정신을 놓을 때는 안전한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다.


접속 종료에 대한 책임은 해당 플레이어가 져야 한다. 그로 인한 책임과 대가는 그에게 주어져야 하는 벌이다. 그래야 공정하다. 공정하지 않은 메타버스는 모두 소멸할 수밖에 없다.


메타버스를 개발하는 사람의 임무는 최대한 공정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메타버스에 접속하여 최대한의 정신을 집중한 플레이어에게 더 큰 보상이 주어져야 하고, 당연히 메타버스 안에서 많은 시간을 소모한 플레이어는 많은 재화를 가져야 한다.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접속이 종료된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데이터 연결 장애, 스마트폰 배터리 부족으로 인한 접속 종료, 급한 생리현상 등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종료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적게는 1~2초, 많게는 5분 정도의 접속 종료가 흔하게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접속이 끊어져 있는 동안 캐릭터는 하던 일을 멈추고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렇다.

내가 상상하는 이 새로운 메타버스 세계는 한계가 분명하다. 우리 인간의 한계를 그대로 메타버스 월드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한계 때문에(덕분에) 이 메타버스 안에서 경제의 개념이 발생한다. 역할이 생기고 직업이 생기고 번성한다.


한계가 있고, 공정하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한계가 발생하면 플레이어는 선택을 한다. 이 낯선 메타버스를 떠나거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공존하거나.


접속 종료 시 캐릭터의 멈춤 현상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파장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상상해보자.


메타버스에서 시간을 보내는 순돌 씨는 잠들기 전에 캐릭터를 성안의 자신의 집으로 옮긴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캐릭터를 침대에 눕게 한 다음 접속을 종료한다. 그리고 현실의 순돌 씨는 씻고 잠을 잔다. - 접속이 종료되었을 때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 의해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성안의 집을 구매했다. 비용이 들었지만 캐릭터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조치이다.


산들 양은 잠들기 전에 캐릭터를 숲 속 으슥한 곳으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주변을 정찰한 뒤 안전하다고 느끼면 나무 그늘에 캐릭터를 눕게 한 다음 접속을 종료한다. 그리고 현실의 산들 양은 씻고 잠을 잔다. 그리고 잠을 설친다. 캐릭터의 안전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 접속이 종료되었을 때 캐릭터가 다른 캐릭터에 의해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숲 속 한적한 곳을 선택했다. 비용을 아꼈지만 만일의 사태시 캐릭터의 건강과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캐릭터 MSAKD은 사과를 따기 위해 성안에서 사람들을 모집한다. 다섯 명은 사과를 따고 다섯 명은 사과 나무 주변에서 강도들의 공격에 대비한다. - 갑작스럽게 잠시 동안 접속이 종료될 수 있지만 여러 명이서 공동체를 이뤄 사과를 따러 나가기 때문에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다. 사과를 모두 딴 다음에는 열 명이 사과를 나눠갖는다.


캐릭터 aqwe123은 맵에서 가장 부유한 캐릭터다. 그는 맵의 중앙에 있는 사과나무 주변을 빙 둘러 성을 쌓는다. 성주인 그는 성 안에서 사과를 따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고, 그들을 안전으로부터 지켜준다고 약속한다. 그는 수비대를 고용하고 성을 지키는 한편, 성 안에서 일어나는 불법행위(절도나 강도)에 대해 단속을 실시한다. - 사과를 따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은 세금을 지불하는 대가로 접속이 종료되건 말건 편안하게 사과를 딸 수 있다. 수비대의 경우 자신이 접속한 시간에 비례하여 성주로부터 사과(돈)를 지불받는다. 많은 시간 접속하여 성을 수비한 사람이 많은 사과(돈)를 가져간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보았다.


접속 종료 시 캐릭터의 멈춤 현상은 분업의 필요성을 야기한다. 집을 짓는 사람, 여관을 운영하는 사람, 성을 짓는 사람, 군인, 강도, 성주, 공동체, 정부, 국가....등 수많은 개념과 직업이 생겨나고 비로소 정치, 군사, 경제라는 개념까지 등장하게 된다. 접속 종료 시 캐릭터를 제자리에서 멈추게 하는 간단한 조치가 실로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적절한 스트레스(한계)가 오히려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메타버스가 성공한다면 그것은 현실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고, 실패한다면 그것 역시 현실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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