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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 정상을 넘어

킬리만자로 정상을 갈 수 있을까?

by 이미경

2016년, 회사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탄자니아 모시(Moshi)에 있는 킬리만자로 약학대학에서 3개월 동안 체류하며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미국에서 온 과학자 동료 두 명과 함께였는데요.

봉사의 목적은 아프리카 전역에 만연한 가짜약을 현지에서도 판별할 수 있는 환경과 역량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Assignment: Building capacity of counterfeit drug analysis)


아프리카의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 같은 시간을 보냈지요.

이 이야기만 해도 길지만, 언젠가 따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생각도 못한 도전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킬리만자로 등반입니다.

제가 생활하던 모시는 킬리만자로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도시입니다.


치안이 좋지 않아 혼자 외출할 수 없었지만, 맑은 날이면 동료들과 뛰어가서 잘 보이는 스팟에서 맨눈으로 만년설 봉우리를 올려다보던 순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DSC02062.JPG 매일 보는데.... 한 번은 올라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제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는 생각이 마음속에 피었습니다.

“나… 킬리만자로 올라가 볼까?”


체력 걱정, 고민, 그리고 결심

같이 가자고 한 동료는 30대 초반, 취미로 마라톤을 뛰던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저는…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을 믿고 싶지만, 체력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때였죠.

과연 5,895m를 오를 수 있을까?


“40대 아줌마가 킬리만자로 등반을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제 자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질문했습니다.

가이드와 동료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저는 매우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베이스캠프 도시인 모시에 있고,

해발 1,800m에서 두 달 동안 매일 아침 20분 조깅도 하고 있고,

매일 올려다보던 저 멋진 만년설을 그냥 두고 떠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또 한 번 저는 도전하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고생을 돈 주고 산다’는 말이 딱 맞았죠.


5일짜리, 가장 짧고 저렴한 트레킹코스

고산 적응을 고려해 10일·7일·5일 루트가 있었고

저는 가장 짧은 5일 코스를 택했습니다.

(네, 가장 싸기도 했습니다.)


가이드 2명, 요리사 1명, 장비를 지고 가는 포터 여러 명…

생각보다 호화로운 등반이었어요.

매일 보지만 볼 때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던 일출과 일몰,

고도가 오를수록 달라지는 풍경과 꽃들,

가끔 마주치는 동물들.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DSC04356.JPG


4일째, 고산병이 이런 것이었네.

5일 내내 하루 800m 이상을 올라야 했는데

3일째까지는 견딜 만했습니다.


하지만 4일차, 해발 4,000m 즈음

제 배낭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무너졌습니다.

결국 자잘한 짐까지 모두 포터에게 맡겨야 했습니다.

고산병이었습니다.


걷다가 계속 구토를 하고, 한 걸음 떼기도 어려워

가이드 두 명이 양옆에서 저를 끌어주었죠.

밥도 전혀 먹을 수 없었습니다.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밀어놓으니 가이드가 간절하게 말했습니다.

“I beg you to eat something. You need to eat!”


하지만 저는 “Leave me alone…”만 반복하며

몸은 말을 듣지 않고 정신만 멀쩡한 상황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렇게 간신히 정상 바로 아래 마지막 베이스캠프까지 도착했습니다.


“가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에 가야 하지 않을까?

비용과 노력, 시간을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 어떤 생각도 결국 하나로 귀결됐습니다.


“그래도…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저는 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아니,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5일째 새벽, 동료들은 가이드와 함께

마지막 만년설이 있는 정상으로 향했고

저는 제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조그만 텐트 안에서 밝아오는 햇살이고 뭐고 텐트 천장만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내가 포기를 하다니! 바로 저기 몇 백 미터만 가면 킬리만자로 정상인데!

가야 만년설도 직접 만져 보고 킬리만자로 정상에 왔다는 인증샷도 찍을 수 있는데!

킬리만자로 정상도 못 밟아보고 킬리만자로 등반을 했다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나?

온갖 잡생각들을 하며 누워있었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내려오자마자, 몸이 거짓말처럼 괜찮아다

정상 찍은 동료들과 가이드들이 돌아오고 바로 하산했습니다.

5일 걸린 오르막과 달리 내려오는 데는 그날 하루면 충분했습니다. 허무하더군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하산하면서 제 몸 상태가 점점 좋아졌습니다.

DSC04420.JPG 하산 후 단체 사진

그래서 더 속상했습니다.

“정신력이 부족했던 걸까?”

“조금만 더 힘냈으면 정상까지 갔나?”

게다가 정상에 다녀온 팀이

등반 인증서를 들고 기뻐하며 사진을 찍을 때 저는 몸도 마음도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6~7일 코스로 천천히 갔으면 나도 갈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오랫동안 내 약한 정신력을, 견디지 못한 내 몸을, 좀더 긴 일정을 택하지 못한 내 자신을 탓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깨달은 것

내 자신을 엄청 자책하고, 킬리만자로 등반 얘기만 나오면 마음 상하던 어느 날,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킬리만자로 만년설 탑봉우리를 못 올랐다고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할 수 있나?

비록 정상까지 가지 못한 상황이 안타깝지만 킬리만자로등반이라는 색다른 경험을 한 것인데?

킬리만자로 등반으로 4,673m 베이스캠프까지 오른 사람인데?

그리고 그건 한라산 1,947m, 백두산 2,744m 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본 경험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고산증세가 오기까지 저는 정말 즐겼습니다.

DSC04323.JPG 힘든 와중에도 마지막 캠프 인증샷 -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것이 티가 나네요.


그럼에도 고정된 사고(Fixed mindset)로 앞으로 다시 없을 기회를 놓쳤다고 제 자신을 계속 비난하고 있던 것이었죠.


다시 기회가 올까? 그 때 나는 어떻게 할까?

누가 아나요? 다시 또 다른 등반을 도전할 기회를 잡을지?


제가 탄자니아에서 3개월 살게 될 줄도 몰랐던 것처럼

인생은 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 문을 열어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다른 기회를 위해 저는 다시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을 예정입니다.

혹시 또 모르죠? 킬리만자로 등반도 또 하게 될지도.


그게, 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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