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을 갓 넘긴 시각. 아이가 내 방문을 열고 무심히 얘기했다.
"홍대 떨어졌어."
그렇구나.. 라는 말도 못했다.
등골을 타고 내려오는 서늘함에 몸이 떨렸다.
그리고 이어진 수시 발표. 아이가 걱정됐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 때문이 아닐까? 자책하기 시작했다.
내가 괜히 조직검사 받는 날을 아이 대학 발표일과 같은 날로 잡아서...
온 우주의 에너지가 아이에게 쏠려야 하는데, 내가 흐트러뜨린 건 아닐까?
가장 빠른 날을 선택했어야 했다는 머릿속 합리화따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나 때문이야...
그렇게 길바닥에서 울면서 전철을 타고 병원까지 갔다.
평소 바빠서 내 병원 치료에 거의 온 적 없는 남편이 이상하게 왔다.
좋은 일인데, 서늘했다.
몇 가지 검사가 끝났다.
의사 상담을 받으러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남편까지 불러 모으며 나를 보는 의사의 눈빛에서, 난 이미 결과를 읽었다.
유방암.
또 온 몸을 관통하는 서늘함에 몸을 떨었다.
그래도 의사가 하는 말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끝까지 다 들었다.
그 끝에... 참았던 질문을 했다.
“그래서... 치료 잘 받으면, 살 수 있나요?”
그렇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럼 됐지뭐. 살 수 있다니까.
‘우리 삶의 재앙은 어느 날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죠....’
로 시작한 의사의 따뜻한 말이 끝났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작가로 살면서 ‘하염없이’라는 말을 여러번 써봤지만, 그 정확한 의미를 오늘 처음 안 것 같다.
막, 너무, 엄청 슬프지 않은데, 그냥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것.
억울하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신...
그래... 내가 너무 애쓰고 살았어... 그래서 잠시 쉬라는 걸 거야.
안 죽는다잖아. 치료 잘 받으면 살 수 있다잖아.
지난 50년. 너무 애쓰고 살아서, 강제로 멈추게 한 걸 거야.
그래야 나머지를 살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하늘이 날 도와준 거야. 이 즈음에서.
그런 생각에 머물자, 하루 종일 내 몸 곳곳에 배어있던 서늘함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두려움은 어쩌면 서늘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늘함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앞으로 뭘 어찌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일단은 멈춰본다.
쉰 살이 되어서야.
아직 삶이 무언지도 모르는 아이 같은 내가.
이런 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