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내가 이렇게 약속을 많이 만드는 유형의 사람이었나?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지난 12월 1, 2, 3일. 가족과 제주도 여행 중이었다.
물론 12월 4일, 건강 검진에서 아플지도 모를 싸인이 시작되었기에,
건강 걱정 안 하는 일상으로서는 마지막이었던 시간들.
주식 펀드 매니저로 있다가 여차저차 전업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친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혹시나 상대방에게 내 연락이 누가 될까... 걱정 투성이인 우리집 유전자를 여실히 이어받은 언니가,
말을 뱅뱅 돌리면서 꺼낸 얘기가 결국 '12월 14일 롯시에서 하는 주식투자설명회에 함께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주식 투자라곤 모르던 내가, 몇 달 전부터 조금씩 투자를 시작하던 터.
그러겠노라 답했었는데...
이제 이날의 이슈는,
주식투자 설명회가 아닌,
친언니에게 내 상황을 알려야 하는 일로 바뀌어버렸다.
리얼치킨보이라는 전업주식투자자와 김탁이라는 모 기업 소속 전문가가 2시간 동안 유용한 정보를 주었다.
하지만 언니는 내 컨디션을 더 걱정했다.
니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닐텐데.... 하고.
"언니야. 난 내가 기를 쓰고 노력하면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살아야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정말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 안 되더라...
아들 얘기였다.
평소 사주를 반신반의하던 나는 하필 고3 운이 너무 안좋다는 말을 극복해보려고 정말 애를 썼지만,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특히, 담임 문제는 더욱.
한때는 담임에 대한 분노로 잠을 못 이루는 때가 있었다.
그 분노는 최근까지도 이어졌고, 저주의 문자를 보낼 생각도 했었다.
당신은 담임 같은 건 하지 말라고. 그럴 자격 없다고.
그런 내게 상담사를 하는 언니가 그 분노를 그림으로 표현해보라고 했었다.
내가 똥손인 줄 뻔히 알면서.
얼마전, 아들이 꿈에 빨간 눈의 까만 뱀을 찢어서 잡아먹는 꿈을 꾸고 일어나 온 몸이 뜨겁고 매스껍다고 힘들어했던 적이 있다.
상담사 언니는 뱀은 여러 상징이 있지만 치유의 의미이기도 한데, 아들 스스로 치유를 시작했지만, 아직 그림자 단계이고 매스껍고 힘든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저 그림은,
치유의 뱀을 먹고 성장한 아들을 뱀으로 상징, 담임을 잡아먹는 그림이다. 담임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상담사 언니의 첫 말은, "그림 잘 그리셨어요~" 였다. ㅎㅎ
(참고로 상담사 언니는 이대 미대 전공이다. 그림을 아주 잘 그린다. 그러니 이건 특급 칭찬일 터.^^)
그 의미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내 안에 지난 3월부터 들끓던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들이 그냥 운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성숙하지 못한 담임을 만난 불운.
그녀가 아들에게 휘두른 부당한 힘의 횡포를 내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여 참으로 많은 날 울며 힘들어했다.
왜 하필 고3이냐고.
그렇다면 스무살, 스물한 살의 불운은 그나마 다행인가?
꼭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냥 하릴 없이 벌어진 수많은 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운명을 바꾸려고 그 애를 썼으니 니가 아프지...
가볍게 살자... 너무 애쓰지 말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인정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하면서.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말자...
어쩌다 주식투자 설명회에 왔다가 언니를 또 울리고 말았다.
미안해, 언니야... 다시 건강해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