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건,
소위 가로수길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고추튀김'을 잘하는 어느 술집이었다.
아는 선배 작가 왈,
"내가 아는 편집장 하나가 괜찮은 작가를 그렇게 소개해달라고 난리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뻘뻘 흐르는 한 여름의 어느 날.
그렇게 그를 만나게 되었다.
모 출판사 편집장인 그.
선배 작가, 그, 또 다른 그, 그리고 나.
넷은 처음 만났음에도 오래 만난 사람들처럼 아주 사적이 얘기까지 서슴없이 꺼내가며 수다를 이어갔다.
그 후, 그와의 만남은 항상 편함 속의 약간의 긴장감을 일게 했다.
일단 첫 만남에서 내가 제일 나중에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몰랐다가 모임이 파하는 시점에 알게 된 사실.
그의 키가 188이었다. 나보다 30cm가 더 크다. 난 그렇게까지 큰 사람은 별로다. 이건 내 컴플렉스다.
그리고.
권작가는 피부가 까무잡잡하니까 섹시한 스타일로 옷을 입어 봐요.
헉. 객관적으로 나는 그리 못난 얼굴과 체형은 아니다. 하지만 난 잘 모르는 사람이 외모언급을 하는 걸 정말 질색한다.
권작가가 아이디어는 좋은데, 센스가 좀 떨어지잖아.
글을 더 잘 쓰고 싶으면 연애를 해봐.
니미. 나는 유부녀다.
지난 20년간 작가 일을 하면서 내가 결혼한 줄 알면서도 이런 말을 꺼내는 남자들(보통 나의 '갑들')이 꽤 많았다. 이런 경우, 크게 2가지 부류다.
첫째, 당신은 너무 모범적이고 삶의 굴곡이 없다. 틀을 과감히 벗어라!
둘째, 나랑 연애하자.
그의 의도는 첫번째였다. 당시엔 몰랐으나, 지금은 안다.
그렇게까지 힘든데, 대화가 안 통하면 그냥 집을 나와 버려요.
결국 본인이 행복해야 주변이 행복해요.
애는 어떡하라고? 아이가 열 한살이라고...!
그래놓고 난 결국 '독립운동'이란 명분으로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갔고 3년 만에 돌아왔었다.
그렇게 그와 느슨한 관계를 이어가면서...
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많이, 잘 알게 되었고,
속이 조금은 덜 곪았으며,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찾아갔다.
그리고. 내가 사느라 정신없을 때도 언제나 때가 되면 안부를 물어줬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권작가, 나 퇴직하고 내 회사를 차려야 할 것 같아...
바쁠 때였다. 정신 없이.
달력을 체크하며 만날 날짜를 골라보려했지만... 도저히 아들 대학 수시 합격 발표날 이전엔 볼 수 없었다.
그의 아들은 이미 연극영화과에 합격한 상태였다.
그때만해도 내 건강에 위험 시그널이 없을 때였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다음에 보자했을 텐데...
그가 퇴사를 하고 독립을 해야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무조건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5일로 약속을 하고 이동시간을 줄이려 집앞에 있는 인스타 핫플인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그와의 약속은 오후 3시였고,
나는 12일에 이어, 15일 오전에 조직검사를 받았다.
여전히 마취기운이 남아있는 몸을 이끌고 그를 만나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했다.
주로 일과 아들들 이야기였다.
서로 정보를 주고 받고, 가능한 도움을 주기로 한 후...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건강 상태를 알려야만 했다.
오해는 없어야 하니까.
말 많은 양반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내가 괜찮다고 웃었다.
그래도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한참 만에 그가 꺼낸 말.
내가 치유의 화신이야, 권작가.
그가 떠날 시간이 되자, 남아서 조금 더 일하려던 나를 밖으로 불렀다.
난 노트북을 어찌해야 하나... 안절부절 못하는데... 잠깐만 나오라고 자꾸 불렀다.
그래서 에라이~ 모르겠다... 무슨 급한 말이 있어 이렇게 부르나 싶어 급히 나갔다.
문밖으로 날 급히 부른 그는,
내가 저 카페 문을 나오자마자,
안아주었다.
둘 다 빵빵한 롱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오리털일지 거위털일지 모를 털들이 다 납작해지도록...
그렇게 꼬옥---!!!
내가 치유의 화신이야. 권작가 꼭 다시 건강해질거야...
그 순간, 눈물이 폭- 쏟아졌다.
최근 그 누구도 나를 이렇게까지 꼭 안아준 이가 있었던가?
그럴 마음이 부족해서도, 그럴 상황, 그럴 자격이 없어서도...
나를 이렇게까지 꼭 안아준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 지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던 그가...
돌아보면, 자기만의 방식대로 모두 다 나를 위한 솔직한 마음을 거침없이 전하던 그가...
또, 지 마음대로, 지 멋대로, 지 방식대로...
나를 안아주었다.
꼭 건강해지라면서.
치유의 화신님. 꼭 다시 건강해질게요.
안아주어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