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너를 가장 닮은 남주

by 셀린느

나는 강릉에서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대학 입학을 하면서 서울에서 살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 결과는 내 실력과 맘 같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소위 '이대 다니는 학생'이 됐다.

그때만 해도 재경 동문회나 고향 동아리 같은 게 활성화 돼 있었나보다.

강여고에서 이대 간 학생과 강고에서 연대 간 학생들이 재경 동문회에 자동으로 가입됐다.


그렇게 오늘의 '신촌내기'가 탄생됐다.


신촌내기엔 연대 출신 삼성전자 연구원으로 일하는 녀석 2명과 꽤 유명한 프렌차이즈 피부 클리닉 원장 1명, 그리고 미국 메타 다니는 친구, 이대 사서로 일하는 친구와 나. 이렇게 남자 셋, 여자 셋으로 구성됐다.

과거로부터 재경 동문회는 연애의 메카였으므로 그 속에서 누가 누구와 어떤 케미로 지냈는지는 공개적으로 알 길이 없다.

허나 짐작가는 일들은 수없이 많았고, 또 짐작되지 않는 수많은 일도 있었으리라.


2004년 11월 21일에 내가 맴버 중에 처음 결혼했다.

그 후 차례로 결혼을 했고, 그 중 누구는 이혼과 재혼을 했으며, 한 명은 여전히 싱글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

이대와 연대 중간 지점에 살던 사서 친구네 집이 아지트가 되어, 하루가 멀다하게 만나 술 퍼마시고 놀았다.

어느 비 오던 여름 날은 연대 채플 건물 처마 아래서 밤새 비를 안주로 술을 마시며 진실 게임을 하기도...

그랬던 철부지 아이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각자 사느라 정신 없었고 시간이 흘러서...


2025년 7월 10일.

시골쥐(동탄 친구들)과 서울쥐 중간 지점인 양재에서 15년 만에 모였다.

지난 3월. 한 녀석의 아버님 부고를 받고 부랴부랴 각자 다들 다녀갔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만든 자리였다.


20250710.jpg 15년만의 신촌내기

마치 다시 스무살로 돌아간 것처럼,

그리고 15년의 공백 따윈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번호표를 뽑아가며 수다를 이어갔다.


뭐 어찌 살았냐? 이런 얘긴 없었다.

그냥 내키는대로, 당장 느껴지는대로 아무 말이나 막 쏟아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퍼즐 맞추듯 맞춰나갔다.


다들 1분이 채 안 되는 속도로 술잔을 부딪혔고, 목구멍을 열고 고개를 젖혀 술을 흡입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기 얘기를 간간이 이어갔다.

그러다 5명 중에 2명이 끽연을 위해 왔다갔다 하면서 '담배'가 화제로 대두됐다.


아직도 담배 피워?


누군가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게... 끊은 지 7년 됐는데,
오늘은 피워야 할 것 같아서 하나 샀다.


나는 그 말이 명치에 걸려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누군가 내가 영화 데뷔를 했다고 알렸다.


너 시나리오 써?


응.


그렇구나...


(침묵)


내 얘기 좀 써줘라.


이번엔 머리가 띵 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랬는지, 아니면 뭐가 더 있었는지...


모임은 시골쥐들의 막차 시간에 맞춰 11시쯤 파했고,

나는 그 후로 한 동안, 간간이 마지막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내 얘기 좀 써줘라.



그 사이, 몇 번 그 말이 떠오를 때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다들 바빠서 시간이 맞질 않았고 그렇게 없던 일로 넘어갔다.


그런데.

내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젠 나도 내 얘기를 써도 되지 않을까?

그러면서 그 친구 생각이 났고, 만나려고 했으나 또 시간이 맞질 않았다.

도깨비처럼 서울, 제주, 미국을 오가는 친구라...

애써 자리를 만들 필요는 없다 생각했다.

만나지면 만나는 거고, 안 만나지면 이유가 있는 걸 테니까.


대화 중 몰랐던 사실 하나도 알게 됐다.

그 친구는 자기가 자기 얘길 써달라고 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취해서 한 말이라며 잊으라 했다.

때문에 앞으로도 멋지게 살자고 대화를 마무리 했는데...


아쉬웠다.


내가 그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얘기를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추가 톡을 보냈다.


[하나만 더 질문. (미안, 바쁠텐데)

영화나 드라마 캐릭터 중 널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 있어?

난 그런 캐릭터 있거든.

예를 들어,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중 상연.

어릴 때부터 가진 재능은 없지 않은데 좀 외로웠고 그래서 애정결핍도 있어서 인정욕구가 강해.

하지만 그 또한 자존심이 세서 사람들한테 숨기고 강한척 해. 선 긋고 유리캡슐도 있고.

그래서 차갑다는 얘기도 맣이 듣고. 근데 상처 많이 받을까봐 하는 방어기제야.

그래도 솔직하고 선하고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의 셀린느. 생각이 끊이지 않는 이상주의자야. 간혹 즉흥적이고.


당장 대답하기 힘들 거야.

그냥 생각 날 때, 톡으로 알려주면 고마울 것 같아~]


그랬더니,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아무 대답이 없다.


나는 그 친구를 모른다.

(심리 공부를 꽤 했는데도 여전히 그 친구는 알 길이 없다.)

그 친구도 아마 나를 모를 것이다.

스무살에서 스물 아홉.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분명히 그 친구와 공유한 뭔가가 있었을지라도.


나는 아직도 그게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알고 싶다가도 알고 싶지 않아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객관적 진실이란 건 있을 수 없고, 모든 일들은 내 안에서 각색되기에.


그래서 답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 친구를 가장 닮은 남주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기에.

그냥 내가 각색한 그 친구만이 내 안에 남아 있을 것이기에...!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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