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026
공간은 무엇일까? 독서모임의 다음 일정에 대한 주제로 정해진 책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책을 펼쳤다.
공간은 다양한 역할을 하며 존재한다. 두가지의 큰 틀로 구분할 수 있는 우리에게 친숙한 집이라는 공간은 먼저 벽과 천장을 통해 외부의 온도나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육체적 쉼의 공간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대부분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집이라는 공간에서 하루 24시간의 반 이상을 보낸다. 그리고 다른 면에서의 집은 태어났을 때 엄마의 포근함과 같은 정서적 쉼의 공간이다. 아,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은 비단 몸을 뉘이고 싶다만이 아닌 내가 구석구석까지 아는 공간에서 다른 스트레스로 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집 안에서도(여유가 된다면) 공간을 나누어 놓고 방이라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개개인이 다르겠지만 과연 자신만을 위한 감싸 안는 공간은 어디일까? 내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은 어디인가? 이불 밖은 위험해라며 외치는 침대 속일지도 모르겠다.
Jack Johnson은 Banana Pancakes라는 노래에서 이런 가사를 썼다.
And can't you see that it's just rainin'
비가 오는게 보이지 않나요?
There ain't no need to go outside
밖에 나갈 필요가 없어요
We could close the curtains
우리는 커튼을 닫고
Pretend like there's no world outside
바깥 세상이없는 척 할 수 도 있죠
저자는 아이들이 감싸 안는 공간을 본능적으로 만들 줄 안다고 한다. 생각 해 보니 어릴 적 나는 여섯살 위의 누나의 방보다도 컸던 내 방 안이 편안하지 않았는지 멀쩡한 침대를 옆에 두고 이불과 베게로 책상 밑에 조그만 텐트같은 공간을 만들어 그 곳에 숨었다. 당시에 옆방에서 들리던 부모님의 잦은 말다툼과 다른 방에 비해 유독 서늘했던 방의 온도로 부터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를 보호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간과 형상은 우리를 모이게도 흩어지게도 한다. 마주 보게도 하고 등 돌리게도 한다. 하나의 작은 바위가 특정한 자세와 사람 간의 관계를 유도한다." 페루의 쿠스코(Cuzco)와 마추픽추의 거대한 원형 구덩이를 예로 들며 가운데가 파인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게 만들고 한 곳을 중심으로 모이게도 하지만 유럽에 산이나 언덕 정상에 형성된 오래된 마을들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려 집들이 밖을 향한채 오목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공간과 환경을 통해 우리가 영향을 받는다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그 집을 마지막으로 완전체의 가족의 형태를 마무리하고 이사한 구룡마을이라는 곳은 어쩌면 나에게 큰 고비였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너무도 날 것이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것들조차 충족되지 않았다. 벽과 벽사이는 나무판자로 나뉘어져 있었고, 외벽은 넝마로 뒤덮여있었다. 공사장에나 있을법한 파란색 화장실은 도대체 몇명이 쓰는지도 모르게 공용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이제 막 청소년기를 지나던 나는 고개만 들면 저 멀리 높게 솟아있는 타워펠리스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환경에서 오는 열등감과 상대적인 박탈감과 같은 것들을 필터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행히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않고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다. 구룡마을같은 판자촌에서 사는 막장인생이니까 까짓거 뭐냐는 식의 무모함과 너네들에 비해 나는 이런 곳에 사는데 라는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얼마전에 읽었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그와 함께 수감되었던 사람들이 처음과 달리 차차 감정이 무뎌지며 어느 수준에 도달하자 코 앞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광경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내 상황을 아우슈비츠에 비교 할 수는 없지만 당시에 나 또한 마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나 동네 이웃들, TV에 나오는 비슷해 보이는 처지에 사람들에게 시니컬 한 시선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몇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집과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호주로 이주를 했다. 호주라는 이미 너무도 낯선 환경에서도 또 다시 집 렌트 계약이 끝나기도 하고 부동산 투자나 세금혜택을 위해 몇번의 이사를 했다. 그리고 약 8년만인 작년에 안식년을 갖기로 결정하고 호주에서 한국으로 잠시 돌아왔다. 꾸준하게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을 해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환경은 우리 삶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책에서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건축하기, 거주하기, 사유하기라는 에세이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하이데거는 삶이 평안하게 머무르면서 자신만의 본질을 찾을 때 비로소 진정한 거주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 때 진정한 거주는 순간순간의 경험으로 만들어진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거주’란 집이나 어떤 건물 안에 물리적으로 머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지난 몇년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이동을 했는지를 떠나서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정한 거주는 몇년이 채 안되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또 공간에 대한 경험은 그저 감각으로 자극을 받으며 형성되지는 않는다라고 서술한다. 단지 공간을 방문하는 것으로 경험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 그 말이 어느 부분 틀리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을 방문했을 때 피부로 느껴지는 역사와 장엄함에 경탄을 하며 떠나지만 그 기억 밀도는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좁디 좁은 계단을 올랐던 기억과는 다르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몸 속에 열이 올라 결국 반팔로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피렌체의 풍경은 로마의 콜로세움과는 다르게 뇌리에 깊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공간은 앞에서 언급한 일반적인 역할외에도 더 다양한 목적과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공간은 우리를 걷게 만들고 또 어떤 공간은 멈춰세우게 한다. 나란히 서있는 기둥들은 우리를 걷게 만들고, 큰 홀(Hall)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머문다. 그리고 서울과 같은 현대 도시와는 다르게 오래된 유럽 도시의 항공사진을 보면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난다고 한다. 오래된 도시들에서는 걷고 쉬고, 거닐고 머무르는 길과 광장이 거미줄 처럼 얽혀 있다. 도시가 만들어졌을 당시에 자동차가 아닌 사람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걷기와 머물기의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한 의도를 담고 만들어진 공간은 경험을 제공할 때 그 삶 또한 풍부하게 만들며, 어떠한 경험을 만들 수 있는가는 건축의 크기와 형식을 초월한다.
서양의 오래된 도시들의 지하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유럽이나 서양권의 지하 장소가 창고나 대피소, 교회나 성당의 크립트(비밀공간)와 같은 지상에 비해 신비로운 느낌을 갖고 있는 반면에 동양에서의 지하는 참 다른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사람인 나에게 지하라는 공간은 지상과 다름없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주차장, 혹은 큰 건물들의 상가, 지하철이 다니고 무엇보다 오래된 빌라에는 어김없이 반지하라는 공간이 있다. 이 곳에서 살아가는 경험은 지상과는 또 다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에서는 지하의 어두운 면의 표현했다.
“반지하는 지상과 지하의 경계에 걸쳐 있으며 물리적으로 사회의 하층을 상징한다. 반면, 박 사장의 집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는 상류층의 공간이다. … 반지하 집이 물에 잠기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끝없이 아래로 추락한다” <영화 리뷰 블로그에서 발췌>
또 한편으로는 서양에서 빛과 어둠에 대해 대립하는 관계, 성경에서의 선과 악, 혹은 플라톤이 말하는 무지와 혼돈과 대비되는 이상과 이데아를 이야기 한다. 그에 반해 동양은 이 둘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고, 중도가 있음을 인정하는 차이를 보인다. 로마의 판테온과 같은 오래된 서양의 건축물들에서 의도적으로 한 곳에 빛을 집중시키는 반면 한국 전통 사찰의 경우 내부에는 빛의 중심점이 없는 대신 음영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한지에 스며든 먹물같이 공간 전체에 은은히 배어 있다.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신비함 뿐만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으로 기억하고 기억 되는 경험도 있다. 티베트 라싸를 야크젖으로 만든 버터 향초의 냄새나 멕시코 시티의 냄새로 재해석된 지도도 있다. 음악중심으로 설계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의 공간과 소리의 관계나 절대 침묵속의 부반향실에서 들리는 내 몸속의 신경 시스템이 작동하는 소리와 피가 순환하는 소리에 대해서 말하기도 한다또한 오스트리아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몸을 감싸는 옷과 같은 역할로써의 공간, 즉, 촉각으로 느끼는 공간에 대한 경험도 이야기 한다.
책에서 저자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살레미 마을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다루며 지진으로 파괴된 공간을 재해석하고 재조직한다. 서울의 선유도 공원은 선유봉에서 암반채취가 이루어진 후 정수장으로 활용이 되기도 하고 기존의 모습을 살리며 지금은 생태 공원의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나는 현재 망원동에 살고 있다. 운이 좋게 마땅한 집을 찾아 기본적인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채워넣었다. 이 동네에는 주거공간들에서 카페나 레스토랑, 와인바같은 상업시설로 변화시킨 공간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가게마다 각각의 브랜드의 색이나 디자인은 강조했지만 구조의 변경은 쉽지 않기 때문에 어렴풋이 누군가 살았을 법한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망원동 뿐만 아니라 작년에 을지로를 방문했을 때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심부름을 위해 골목골목 돌아다녔던 때의 삭막하고 위험해 보이기 까지 했던 도매상가들이나 창고들이 조화롭게 감성을 살린 채 변화된 식당들도 찾아볼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변하는 모습들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장소의 기억은 그 장소가 지닌 모습에 대한 기억이자 삶의 기억이다. 우리는 도시와 건축 형태를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형태와 우리의 만남을 기억한다” 무의식이라는 곳에 숨어있다가 어떤 순간 우리는 어떠한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급격하게 변한 망원동의 거리는 더 이상 로컬들만의 공간은 아닐뿐이지만 여전히 변해버린 카페에서 어릴 적 놀러갔던 친구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결국 저자는 보편적인 감각은 공간만이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의 특정 상태를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즉 경험의 템포는 삶과 공간이 만나 이루어지는 합주다. 특별한 공간에 있기때문에 평소에는 느끼지 않던 생각이나 사색에 빠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아무리 특별하고 아름다운 공간에서도 그 순간에 걱정과 근심이 너쿠 큰 나머지 공간을 볼 여유조차 없어지기도 한다.
“결국 공간은 숨 쉬고, 울고 웃고, 부딪히고 어루만지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때 가치가 생간다“
공간을 거니는 것은 삶을 거니는 것이다.
공간을 향기 맡고, 듣고, 만지는 것은
삶을 향기 맡고, 듣고, 만지는 것이다.
공간을 기억하는 것은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
공간을 짓는 것은 삶을 짓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그 하나의 숨결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