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생각나는 것들

Jan 2026

by Song Gidae

나이가 삼십대 후반이 되고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온지 20년정도가 되어가니 늘 반복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기억들이 있다. 대부분 특정한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이 트리거가 되어 기억이 떠오르지만 때로는 내가 하는 행동과 전혀 관계가 없는데도 자주 떠오르는 기억들이나 장면들이 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내가 스물 넷쯤 두 살정도 어린 친구와 목욕탕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겠지만 샤워를 하고 몸을 닦는 방법은 이미 수천번의 반복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이다. 그 순서는 매번 같다. 수건의 앞면으로 머리와 얼굴을 닦고 뒷면으로 몸을 닦는다. 마지막에는 팔을 몸 뒤로 수건의 끝과 끝을 잡고 던지듯 등에 있는 물기를 털어낸다. 나와 어색함을 덜어내기 위해서 였을까, 진심으로 그 순간의 내 모습이 신기했던 걸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당시에 그 친구는 놀라움에 내 모습에 감탄을했다.


그 기억은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 깊게 남아있어서 생각보다 자주 생각이 난다.


한번은 군대에서 어느정도 선임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때가 되었을 때 쯤이었다. 나와는 한달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가깝게 지내던 선임이 있었다. 피부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피부관리에 진심이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씻기 때문에 침상 건너편에서 내가 로션을 바르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바르는 게 아니라며 나에게 뭐라고 했다. 내가 로션을 바르는 방식이 특별히 잘못된 것도 아니고 이미 선임이 무서운 시기는 지났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같은 방법으로 로션을 발랐고 지금도 변함은 없다. 그런데 지금도 로션을 바르고 있으면 문득문득 동그란 눈으로 안경너머 나를 째려보며 허공에 발길질을 날리던 선임이 기억이 난다.

글로 적으려고 보니 대부분은 누군가로 받은 내 칭찬들에 대한 기억들이 오래 남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어릴적 학교 운동장 구석에서 연습했던 농구에 대한 기억이다. 가끔 한번씩 집앞에 있는 운동장으로 가서 아버지가 농구를 해줬었는데 그래서인지 농구라는 스포츠에는 애정이 조금 담겨있었다. 할 일이 없으면 운동장에 가서 공을 던졌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네에서 농구를 꽤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고등학교가 되어 학교 농구부에서 활동을 하며 길거리 농구대회를 나가기도 했었는데 아쉽게도 이미 그 때는 팀의 에이스보다는 그냥 친구들 중에서 농구를 조금 하는 애 정도였다. 그러다가 어릴적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고 다른고등학교로 가서 농구로 유명한 친구가 자기가 어릴 적에는 나에게 비교도 안되었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들었고 소위 어깨뽕이 가득 해졌다.


대낮에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라도 껴있으면 여지없이 나는 순간적으로 군대로 시간여행을 한다. 나는 축구를 하다가 멍하니 하늘을 올려 보고 UFO를 발견했다(발견했다고 믿는다) 이야기를 했던 수십번의 기억이 있다.


돌담길같은 곳을 걸으면 영화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손 끝으로 담의 촉감을 느낀다. 영화 동감의 하지원과 유지태가 생각나서 부차적인 기억으로 영화를 보고 교복을 입고 길거리를 뛰어가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산에 여행 갔을 때 만든 향수의 냄새는 그 때 우리의 대화와 따뜻함이 기억나고 힙합그룹 올블랙의 노래 꿈을 들으면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때 교실 한 구석에서 MP3를 돌려가며 가사를 적던 기억이 난다. 장재인이 부른 가로수 그늘 아래서를 들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떠오른다.


이렇듯 서로 연관성이 있든 없든, 기억들을 희한하게 서로를 이어준다. 겹겹히 쌓여가고 하루에도 수백번씩 들리는 소리와 만져지는 촉감, 음식을 먹었을 때의 특별한 맛과 그 향으로 과거의 어느 때로 소환된다.


나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상상속의 미래와 지나버린 과거를 가까이에 두고 살아간다. 시간을 포함한 4차원의 세계가 아닌 그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과거와 미래는 시간속에서 자유롭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뿌듯함과 보람은 결코 시간의 속도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상대적인 박탈감보다는 순순한 인정으로 마음 편히 살아가려고 한다.


기억들이 짧게는 몇년에서 부터 10년, 20년이 지나서 나에게 이렇듯 남아있다는 건 앞으로도 계속 생각이 날 거라는 생각을 하니 나의 행동 하나 하나가 누군가에게 내 생각보다 깊게 기억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친다. 과연 단편의 기억으로 나를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기억 속에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일의 감각 - 조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