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026
한국에 와서 당근을 하며 모임을 몇군데 다니니 사람들은 기대님, 혜진님이 아니라 마토님, 파렌님같은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는 게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안녕하세요, 송기대입니다가 아니라, 안녕하세요 000(닉네임)입니다와 같이 말이다.
어떤 이름으로 할까 즐겁게 고민하던 중 나는 제제아빠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했다.
제제는 우리집 개이름이다. 몸무게는 27kg가 나가는 데 털이 복실복실해서 실제로 보면 40kg는 족히 나가보인다. 견종은 레브라도와 스탠다드 푸들이 섞인 래브라두들. (골든리트리버와 푸들은 그루들 혹은 골든두들, 잉글리시쉽독이랑 푸들은 쉬파두들, 코카스파니엘과 푸들은 카부들로 불린다)
동물들은 가족이지만 아들 딸로 부르는 건 내 가치관에 맞지 않아 모순적인 부분이 있지만 제제는 나를 아빠라고 생각할 지 모르고 어감도 괜찮아서 제제아빠라고 닉네임을 지었다.
제제는 몇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먼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주인공인 아이의 이름, 그리고 중국어로 큰언니라는 뜻이 있다. 어제는 성수동에서 제제라는 중식당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제제로이름을 지은 건 당시에 즐겨보던 유튜버 강아지 이름이 베베였는데 영감(?)을 받아서 이런 저런 이름을 넣어보다가 결정했다.
영어로는 jeje인데 동양사람들은 제제라고 하면 잘 알아듣고 제제하고 부르지만 서양사람들의 대부부분은 jayjay로 듣고(들었다고 믿고) 제이제이라고 불러버린다. 처음에 몇번은 고쳐주려고 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알려준다고 한들 뒤돌아서면 까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That's right를 외쳐버린다.
사실 요즘에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이번에 한국에 올 때 제제를 데려오는 게 어려워서 한국 분에게 맡기고 왔는데 인스타를 통해서 보는 제제가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당연히 잘 지내야 좋은 거지만 우리와 5년을 살고 맡긴건 이제 3개월째인데 우리에게 보이던 행복함을 다른 분에게도 보이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은 이기적이지만 부정할 수 없다.
엊그제는 망원시장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제제와 비슷한 사이즈의 개를 봤는데 한국에서 제제를 키우는 게 쉽지 않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개의 덩치에 놀라면서 귀여운 마음에 관심을 보이는데 아마도 제제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아이처럼 과하게 꼬리를 흔들텐데 말이다.
제제는 내가 처음으로 "키우는" 애완동물이다. 어릴적 부모님이 집에서 키웠던 흥부와 놀부, 흰둥이와 검둥이들은 모두 내가 어릴 적에 언젠가 부터 이미 우리 집에 있던 개들이었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기억은 희미하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누나가 부모님 몰래 데려왔던 해기(해바라기)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한참이 지난 후에 알고보니 아빠가 시골에 누군가에게 줬다고 들었다. 제제는 우리가 태어난지 8주차부터 데려와서 키우기 시작한 덕분에 마치 아이에 대한 기억처럼 제제에 대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제제의 가장 충격적이고 독특한 특징은 배변을 하는 방법이다. 공원이 잘 갖춰져있는 호주에서 산책을 하면 제제는 적어도 두번 이상 많으면 네다섯번의 큰 볼일을 보는데 그것만으로도 다른 개들과 다르지만더 유니크한 점은 꼭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비닐봉지를 손에 두르고 깔끔하게 잡기가 힘들도록 굳이 얇고 뾰족한 잎들이 많은 풀들 속에 들어가서 찔릴듯한 스릴을 감수하고 볼일을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늘 불만의 표시로 일부러 그런다고 애정이 담긴 핀잔을 준다. 물론 제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릴 적 소위 똥개라고 불리는 개들을 보며 자라온 나는 개들은 뭐든지 잘 먹는다고 생각했었다. 제제는 거의 초딩입맛인데 우리가 주는 건사료에 만족하지 못해서일까 산책을 가면 떨어진 닭뼈(생각보다 많다)나 빵쪼가리들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몸에 좋다는 야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먹으면 안된다는 초콜릿을 좋아해서 식탁위나 제제의 키로 닿을만한 곳은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또 한가지는 부끄럽지만 강약약강이다. 자기보다 덩치가 조금이라도 크면 아주 소극적으로 행동하며 눈치를 살피는 주제에 작은 아이들에게는 매너없이 엉덩이에 코를 박고 쫓아다닌다. 가장 민망한 때는 개들끼리 모여서 다같이 한 아이를 괴롭힐 때다. 주인들이 놀라서 각자 자기 개를 부르고 있으면 중간에 껴서 괜히 괴롭힘 당한 아이를 끝까지 따라가서 시비를 건다. 민망하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제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다.
닉네임을 소개하다가 우리집 제제를 소개하게 되었다. 제제는 이제 우리 부부의,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인생에서도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기에 그 이유를 이렇게 거추장 스럽게 소개를 했다. 하루에 한 번씩은 제제를 그리워하니 제제의 행복보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제제를 데려와야 하나 진심으로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