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 박웅현

Feb 2026

by Song Gidae

카프카의 글에서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를 시작으로 저자는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트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되는 거야 라며 책은 시작한다.


김훈, 고은, 알랭 드 보통과 안나 카레니나 등의 동양과 서양의 작가들의 글을 소개하며 저자는 우리 또한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트려버리는 도끼를 갖길 원한다(라고 생각한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다시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것은 반칙을 하는 것 같아 글을 읽고, 저자의 생각에 현재의 나를 얹는다.


최근에 김종진님의 공간의 진정성이라는 책을 읽었고 그에 대해 글을 쓰며 잠깐이었지만 서양과 동양의 정서적임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다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차이를 보여주는 판화가 이철수님의 <가을사과>에 쓰인 글을 소개한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지“


읽은 책들이 이렇듯 서로 엮이는 모습을 보면 늘 경이롭다. 마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별자리로 보이기 시작하듯이 불규칙적으로 널려있는 구절들이 내 가치관에 조금씩 못질을 하듯이 새겨진다.


우리가 놓치는 부분을 일깨워주듯 좋다라는 단순한 말로 지나쳐 갈 수도 있는 대나무에 대해서 말한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우리는 쉽게 천년을 살아온 고목에는 왠지 모를 경외감을 느끼며 놀라워하지만 대나무 자체보다는 는 대나무"숲"과 숲사이로 비치는 빛을 볼때야 눈을 돌리는 정도다. 대다무 한 그루라는 표현이 어색하고 대나무숲이 조금 더 친숙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훈은 대나무에 우리의 삶을 투영한다.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진다. 나이테로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점점 더 안을 비워만 간다.


또 우리가 일절의 놀라움없이 먹는 수박에 대해 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수박은 천지개벽하듯이 갈라진다.

수박이 두 쪽으로 벌어지는 순간

'앗!' 소리를 지를 여유도 없이 초록은 빨강으로 바뀐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놀라워하거나 그러려고 하는 삶은 어쩐지 피곤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글을 통해 0.1초의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빨리 여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예술이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라고 비난조로 말하곤 했다. 대단한 미술품을 보거나 조각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경이에 차있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하듯이 공간의 진정성에 저자는 프랑스 문학연구가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가 『일상 예찬(Eloge du Quotidien)』에서 했던 말을 소개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들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달착지근한 환상에 젖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운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그렇게 해서 우리 또한 그런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일상생활이 새로운 양태로 변질되어 가면서 위기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이 그림들을 보면서 가장 기본적인 일상 행위 속에 깃든 아름다움과 의미를 되찾고 싶어진다.”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걷는 속도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저자는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소개하며 그가 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차로가면 30분을 갈 거리를 버스를 갈아타며 1시간 반을 걸린 경험을 되짚어본다. 시간이 덜 걸린다고 무조건 더 나은 게 아니다. 그 순간에는 그 순간만의 의미 있고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툭하고 발에 걸렸던 돌멩이에도 이유가 있었고 우리는 이미 그렇게 많은 고비들을 넘겨와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 보면 극단적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내가 한 말을 뒷받침하는 장면이 나온다. 쇼핑을 가려던 여자가 외투를 깜박해서 다시 집에 들어가고 전화가 울리는 바람에 2분정도 통화를 한다. 같은 시각 데이지는 공연 리허설 중이다. 외투를 갖고 나온 여자는 택시를 놓치고, 한 택시 운전사는 방금 다른 승객을 내려주고 커피 한 잔을 사고나서야 여자를 태워주게 된다. 막 출발 하려는 찰나 평소보다 5분정도 늦게 일어나서 급하게 무단횡단을 하던 사람때문에 급정거를 하게된다. 택시에서 잠깐 물건을 가지러 내린 여자는 직원이 전날 애인과 헤어지는 바람에 깜박한 포장을 기다린다. 몇번의 예상치 못한 신호와, 사소한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리허설을 마친 데이지는 그 택시와의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


이렇게 내가 살아온 순간순간은 수많은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있고 운이 좋을 때도 있고 안좋을 때도 있었다. 억지스럽게 들릴수도 있지만 박웅현님이 탔던 버스는 자동차보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칼의 노래에 나오는 죽음에 대한 구절을 소개한다.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최근 심리상담을 하면서 잊고있던 혹은 상담사님의 표현을 빌자면 골방에 넣어두었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힘들고 불행하다고 느꼈던 때에 다른 친구의 불행에 대해 들으며 우리 모두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가늠할 수 없이 주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며 나는 그 불행에 완벽하게 공감할 수 없겠구나. 그렇기에 나는 내 불행과 불운했던 환경을 나의 무기로 삼아 내 부족한 행동들을 정당화 하며 살아가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다음 책으로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골랐다. 한국에 들어온지 두 달이 가까워지고 수술을 한 다리도 걸을만 해지니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책을 읽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읽을 책은 너무 많고 시간과 내 집중력이 너무 한정적이라는 게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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