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Nov 2025

by Song Gidae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술을 부릴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소.


제목만으로도 어려울 것 같아서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전자책 내 서재에 넣어놓았다. 다른 책들을 읽는 중간중간 조금씩 읽어나가려고 했던 책이었는데 며칠만에 한 숨에 읽어나갔다.


아침에 다합 바닷가 앞에 카페에서 혜진이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아, 내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기도 하고 그 동안 읽었던 자기계발서나, 내 개인적인 경험들을 통해 뜬구름처럼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이 떠다니는 생각들을 저자의 글을 통해서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그리고 그렇게 정리되는 사고를 나 또한 글로 적어놓지 않으면 또 다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려.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하여 이 시간을 읽고 쓰는데 소비하고 싶어“


책 속의 싯다르타는 남들보다, 적어도 고빈다보다는, 뛰어나다. 그는 어려서 부터 더 깊은 사색을 할 줄 알았고, 고빈다는 자연스럽게 그의 결정을 따라 마치 그림자처럼 싯다르타를 따른다. 바라문이라는 소위 귀족집안에서 제사를 지내고 온갖 성스러운 행위들을 하던 싯다르타는 마을을 지나가는 몇명의 사문들을 쫓아 이끌리듯 그 길을 택한다. 그리고 사문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 아버지와 마주했을 때 그는 물러서지 않고 마치 이미 결정이 된 일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를 설득한다. 아들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보내야만 하는 아버지의 축복을 뒤로한 채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사문으로써의 길을 떠난다.


그 둘은 길 위에서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을 목표로 갈증으로부터, 소원으로부터, 꿈과 기쁨, 번뇌로 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기 시작했다. 그는 정좌를 하고 호흡을 줄이는 법을 배웠으며, 아예 멈추어버리는 법도 배웠다. 또한 자기 초탈 수련을 하고 침잠 수련을 통해 왜가리가 되기도 하며 왜가리가 겪는 배고픔과 죽음을 겪기도 하고, 죽은 자칼이 되기도 하여 윤회의 슬픔 황홀경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던 그는 더 이상 최연장자인 사문에게서조차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수행을 통해서 열반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고빈다에게 말한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부정적인 생각에 그런 끔찍한 말들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싯다르타는 말한다.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오, 친구,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앎뿐이며, 그 것은 도처에 있고, 그것은 아트만이고, 그것은 나의 내면과 자네의 내면,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 그래서 난 이렇게 믿기 시작하였네. 알려고 하는 의지와 배움보다 더 사악한 앎의 적은 없다고 말이야.“


수행을 한지 삼 년 정도 지났을 무렵 그들은 번뇌를 극복하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정지시킨 세존 부처라고 불리는 고타마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둘은 고타마에 대한 여러가지 좋고 나쁜 소문을 뒤로한 채 수많은 무리에 속해져 가르침을 들으려 떠난다. 먼 발치에서 수많은 승려들 사이에서 바라본 부처는 싯다르타에게 손에 붙어 있는 다섯 손가락 모두의 마디마디가 가르침 그 자체이기 진리를 말해주고 호흡하고 향기를 풍기고 진리를 빛내 주는 것 같이 보였다.


부처의 설법을 듣고난 후 많은 순례자들이 앞으로 걸어 나와 그 가르침에 귀의하였고 고빈다 또한 제자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달랐다. 그는 고빈다를 떠났고 그 가르침에 귀의하지도 않았다. 슬퍼하는 고빈다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로 한 날 싯다르타는 세존 고타마와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를 요청했고 설법에서 결함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아내었다고 말하며 세존 고타마가 부처님이고 최고의 목표에 도달하였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본인의 깨달음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자기 또한 가르침을 받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난다고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었을 때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싯다르타는 강을 건너며 뱃사공에게 도움을 받고 어떤 마을로 가는 길에 카말라를 만나게 된다.


책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전개로 이어진다. 싯다르타는 카말라를 만다고 속세에 빠져 그녀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그로인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리고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에 가득 찬 싯다르타는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않냐는 카말라의 질문에 이렇게 말한다.


“이보세요. 카말라, 만약 그대가 돌멩이 하나를 물속에 던지면, 그 돌멩이는 곧장 그 물 아래 밑바닥에 가라앉게 되겠지요. 싯다르타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계획을 세우면 바로 그렇게 되지요. 싯다르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아요. 그는 기다리고, 그는 사색하고, 그는 단식을 할 뿐이지요. 그러나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몸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마치 물속을 뚫고 내려가는 그 돌멩이처럼, 세상만사를 뚫고 헤쳐 나가지요. 그는 이끌려 가면 이끌려 가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놔두지요. 그의 목적이 그를 끌어 잡아당기지요. 왜냐하면, 그의 목적에 위배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자기 영혼 속에 들여보내기 않기 때문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단식할 줄 안다면, 마술을 부릴 수 있으며,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소.”


이 부분에서 나는 책을 접고 한 동안 사색을 하고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앞에서 읽어왔던 책들과 또 한 번 같은 선상으로 빛이 이어지는 것 같았다. 이 세상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현재와 과거, 미래는 어떻게 연결이 되어있는지, 나는 어떻게 이 삶을 대해야 하는지, 다합에서 요가를 가르쳐주고 프리다이빙을 가르쳐주었던 비앙카를 포함해 최근에 다합에서 만난 인연들을 통해 내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가 마치 일식이 일어나듯 같은 선상에 맞춰진다.


오늘 아침에는 혜진의 임신소식을 알게되었다. 4주차도 되지 않은 임신테스트기의 두번째 줄은 잔잔했던 우리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제 막 호주를 떠난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고 앞으로 적어도 일 년은 떠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계획을 다시 상의했고 설레임과 두려움의 어느 한 중간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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