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025
이 책을 통해 소설의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 작가로써 살아가는 현실에서의 그의 삶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있자면 그는 글을 쓰는 것 만큼이나 달리기에 진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등떠밀어 소설가가 되지 않은 것 처럼, 그는 소설가로써의 삶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러너의 삶도 택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건전한 행위이고, 작가라는 사람은 공서양곡(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아우르는 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되도록 건전하지 않은 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람들의 흔한 인식에 대해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를 포함한 예술인들은 속세와 결별하고 예술적 가치를 지닌 순수한 뭔가에 더욱 근접할 수 있는 것이고 그 통념 같은 것이 세간에 뿌리 깊게 존재한다고 라는 말인데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술과 마약, 담배와 다른 종류의 쾌락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는 삶은 그런 삶에 비해 그야말로 너무나도 건전한 삶이다.
실제로 하루키또한 소설을 쓰는 행위는 근본에 있는 독소와 같은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솜씨 좋게 처리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독소를 중화시키기 위해서 건전한 삶이 필요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며 그가 달리는 이유중에 하나이다. 가지런하게 잘 개어져 있는 서랍속 옷들 처럼 깔끔하게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정신에서 나오는 그의 소설의 담백함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책에서 나왔지만 아침에 집필활동을 하는 그는 늘 단정한 모습으로 책상앞에 앉아 글을 쓴다고 한다. 꾸준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소설을 쓴다는 건 단순히 시간이 있어서 가능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리에 앉아 전날에 마무리 했던 곳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것이나 머릿속에서 수백번 수천번을 반복하며 등장인물과 그 주변 환경을 묘사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대중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글을 쓰는 작가로써의 고된 작업이고 쉽지 않은 일이다. 일반적이라면 온전한 정신외에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한 충동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달리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서른즈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그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고 하니 족히 20년은 쓰고 달리는 중인(책이 쓰여졌던 당시) 꾸준함이 베어있고 한 인간으로써 멋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옆에서 보면 뭔가 답답할 것 같기도 하다. 무릎이 아파도 무릎을 설득하며 달렸다는 에피소드에서 나는 아마도 그의 아내는 이 이야기를 듣고 속을 꽤나 썩였지 싶다.
달리기는 결코 소설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 없지만 매일매일 달리고, 대회를 위해 준비하여 몇번의 풀코스 마라톤 뿐만 아니라 100키로미터의 울트라마라톤까지 했다는 걸 보면 그의 인생에서 달리기는 적어도 다섯번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단순하게 말했던 꼭 소설가로써 작품활동을 하기 위한 삶을 위해서만 달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그는 러너로써의 정체성또한 비록 작가라는 타이틀에 비해서 순위는 밀릴지여도 그의 안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느껴진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글에서 하루키는 다른 스포츠와는 다르게 어디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 배드민턴이나 테니스같이 어디를 가야하는 게 아니고 자연의 힘으로 눈이 쌓여있거나 파도가 있어야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잘 포장된 도로와 내 발에 맞는 신발만 있다면 거칠게 없다. 나 또한 최근에 발목 수술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주에서 마치 뛰어주기를 기다리는 것 처럼 너무나 잘 정돈되어있는 공원을 제제와 산책하며 뛰었고, 한국에서는 당근을 통해 동네 주민들과 만나 운동장 트랙을 따라 뛰었다. 아직 하프마라톤조차 뛰어본 적이 없고, 적어도 수술 후 몇개월 혹은 올해에는 장거리를 뛸 예정도 없지만 그의 말에 공감하며 준비물이나 거추장스러운 과정들은 생략하고 간편하게 뛴다는 행위에서 오는 만족감을 나도 알고 있다.
하루키는 35키로 구간을 말하지만 하찮게도 나에게 가장 힘든 구간은 첫 1키로와 3키로전까지다. 뛰기 시작하면 속으로 그래, 오늘도 그래도 신발신고 나온게 어디야라고 스스로를 멈추라고 설득한다. 3키로까지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과 허벅지에 느껴지는 텐션이 또 나를 이제 멈추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3키로 지점이 지나고나면 조금씩 오히려 근육이 이완되는 느낌이 들면서 6키로정도가 넘어가면 슬슬 러너스하이라는 게 찾아오기 시작한다. 마치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쉽게 풀코스 마라톤을 뛸 수 있을 것 같고, 매일매일 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나는 보통 달릴 때 귀에 무언가를 꽃는 느낌이 싫어서 아무것도 듣지 않는 편이다. 골전도 이어폰을 고심 끝에 사서 사용했지만 결국 진동으로 인해 두통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달리면서 무언가를 듣는 건 포기했다. 하지만 역시 재즈바를 운영했던 하루키는 달릴 때 듣는 음악에 대해서도 꽤나 진심인 편이다. 즐겨 듣는 곡이 있고 때와 장소, 온도와 계절에 따라서 바뀌기도 할테지만 적어도 책에서 언급되는 곡들은 약간은 펑키한 느낌의 경쾌한 음악들이다.
하루키는 자신에 대해 말하며 자신감이 느껴지는 큰 보폭으로 속도감있게 달리는 하버드의 학생들에 비해 비교적 속도는 느리지만 주변의 풍경을 보며 느긋하게 달리는 그자신은 지는 일에 길들여져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산만큼 있고, 아무리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산더미처럼 있다” 그에게는 그의 적합한 페이스가 있고 시간성이 있으며 그것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며,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도 한다. 그리고 하루키는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 일단 리듬이 설정되어지기만 하면, 그 뒤는 어떻게든 풀려 나간다. 그러나 탄력을 받은 바퀴가 일정한 속도로 확실하게 돌아가기 시작할 때까지는 계속 가속하는 힘을 멈추지 말하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나 감정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해지는 사회적인 시선이나 관습까지 대수롭지 않게 처리 해 나가고 있는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달리기 열풍이 불고있다. 어쩌면 이미 지나가버린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나를 포함한 다른 많은 사람들도 체중조절을 위한 달리기가 아닌, 삶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다거나 일차적인 것들을 위한 밸런스로서 달리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