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026
2010년 2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을 강화도에서 군복무를 하며 보내고 전역을 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병장 월급이 10만원이 조금 넘는 정도였기에 수중에 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전역을 하며 딱 세가지 물건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가장 첫번째는 Tomos라는 모페드 오토바이, 통기타, 마지막은 필름카메라였다.
각각의 이유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필름카메라는 아무래도 당시에 좋아했던 일본영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 중에서는 연애사진이라는 영화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애니매이션이나 만화책같은 문화를 통해 일본어에 관심을 갖게 된게 아닌 순수하게 언어에 대한 관심이 앞섰기 때문에 영화는 일본어를 습득하는데 꼭 필요한 공부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당시에 봤던 일본영화들은 그 후 내 삶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연애사진은 2004년에 개봉한 영화로 당시에 유명했던 히로스에 료코라는 여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했다. 당시의 대부분의 일본영화들이 지금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감성이었지만 그런 부분들을 좋아했었다. 필름카메라를 찍던 마코토(남자 주연배우)와 사랑에 빠져 자연스럽게 사진찍는 법을 배운 시즈루(히로스에 료코)는 사진을 찍는데에 마코토보다 뛰어났고 마코토의 질투심과 열등감에 그들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한참이 흐른 후 편지를 받게 된 마코토는 시즈루가 뉴욕에서 사진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자신의 열등감보다 더 큰 시즈루에 대한 미련과 설레임을 갖고 뉴욕으로 향한다. 스포일러는 건너뛰고 마코토는 뉴욕에 가서 결국 유명한 사진작가가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중간에 총싸움이 나오기도 하고 집중력을 흐트리는 설정들이 있지만 크게 감명을 받은 영화였다. 그리고 그 외에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와 같은 영화들도 또한 필름 카메라와 아날로그의 감성을 다뤘던 영화다.
카메라 기종과 찍는 방법을 검색하며 네이버 카페에 필름카메라 동호회에 가입하고(당시 성격상 한번도 모임에 나가지는 않았다) 동대문 카메라 가게를 몇군데 돌며 가격을 비교했다. 사고 싶은 카메라는 Nikon Fm2였지만 가격대가 당시 예상했던 버젯을 초과했기 때문에 두번째로 마음에 두었던 Minolta X-700를 샀다. 그리고 필름을 구입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피사체는 상관없었다. 길을 걷다가도 친구를 만나도, 여행을 가거나 동네 산책을 갈 때도 계속해서 찍었다.
그 후로 필름 카메라는 몇년동안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방이 얼마나 무거운지, 기분이 어떤지를 떠나서 늘 목에 걸려있거나 가방속에 있었다. 그 당시에 사진작가가 되고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도 하고,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행이기도 하다.
여러가지 부분에서 필름카메라를 사랑했지만 역시 그 중에 최고는 사진을 찍는 순간의 소중함이었다. 찍고 싶은 장면이 눈에 들어오면 지이익하고 카메라 셔터를 감고 뷰파인더를 통해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초점을 맞춘다. 디지털 카메라와 같은 속도가 나지 않기 때문에 놓치는 장면들도 많았고 분명 귀찮은 일이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물보다도 나는 그 순간을 더 좋아했다. 그 순간에 멈춰져있는 내 숨과 찍고자 하는 순간,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게 느껴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도 개의치 않았다.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었던 세가지 물건들은 그로부터 15년정도가 지난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의 희미한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그 전만큼 사진을 찍지도 않고, 중간에 비디오그래퍼로 잠시 일을 했었던 걸 빼고는 카메라는 더 이상 내 가방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때에 비해 워낙 좋은 카메라들이 많이 나왔기도 하고 핸드폰으로 웨딩 스냅사진을 찍는 시절이 되었기 때문에 아마 필름카메라는 더욱 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되어간다.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는 과정은 쿠팡과 같은 온라인 쇼핑으로 대체되었고, 다같이 맛있는 음식을 찾으러 가는 과정은 수없이 많은 배달앱을 통해 사라져간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신중하게 골라 넣던 용량이 크지 않은 MP3보다는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스포티파이나 유튜브뮤직이 차지하고 이제는 알고리즘으로 내가 “좋아할만한” 음악조차 선곡을 해 준다. 택시를 타러 가기보다는 택시를 집앞으로 부르고 가방 가득 들고다니던 무거운 책은 전자책이나 아이패드같은 태블릿이 대신한다.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은 매일매일 속도를 내고 그렇게 얻는 시간은 다시 또 더 효율적으러 시간을 보내는 데에 쓰여진다.
식기 세척기가 아닌 손에 물을 뭍히며 설겆이를 하고 로봇청소기가 아닌 물묻힌 걸레로 방바닥을 닦고 전동칫솔이 아닌 치아에 닻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칫솔로 이를 닦았다. 그 과정을 낭비가 아니고,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도 살아보려고 한다.
다시 필름카메라는 사게 되는 날이 오면 그건 단지 필름카메라의 감성때문이 아닌 과정을 사랑하고자 하는 역행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