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결혼은 하면 새로운 가정이 꾸려지고 보통 남편이 새로운 가정의 가장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은 가족 구성원을 외부의 위협으로 보호하면서 구성원 각자에게 삶의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효 사상을 중시하는 유교 중심의 한국 가족문화에서 남편은 부모를 상대로 자신의 가장 역할과 가족의 경계선을 명확히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결혼 후에도 부모님 중심의 대가족 체계가 유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식이 결혼을 한 이후에도 부모는 자식과 며느리에 대해서도 대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면서 가장 역할을 수행하려고 한다. 부모가 새로운 가족의 경계선을 지켜주지 않고 자주 침범하면서 부인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남편도 부인의 불평불만과 짜증으로 나름 힘들어한다.
며느리를 가족처럼 대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의 헛된 기대와 부모에 대한 효도와 가장 역할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남편들에 의해 한국의 가족은 갈등과 불화의 늪에 빠져 있다.
며느리는 부모 자신의 딸이 아니다. 며느리는 영원히 부모가 주관하는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없다. 며느리에게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강요하면 사랑하는 아들의 가족이 망가질 수 있다. 부모가 아들을 사랑한다면 며느리를 자유롭게 놓아줘야 한다.
남편도 자신이 부모에게 효도하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가정을 우선적으로 하는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남편이 가장 역할을 잘 수행하면 부인이 알아서 부모에게 효도하게 되어있다.
결혼을 한지 일 년 정도 지난 직장 후배가 어느 날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해 왔다. 결혼을 한 이후로 어머니가 부인에게 수시로 주말에 본가에서 같이 식사하자고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부인은 주말에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어머님의 요구에 거절을 못 하고 본가에서 식사를 하고 온 후에는 자신에게 온갖 짜증을 낸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에도 가족과 에버랜드 물놀이를 가려고 예약을 다 해봤는데 어머님이 전화를 해서 주말에 같이 식사하자고 해서 예약도 취소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식사를 한 후에 집에 와서 대판 부부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후배는 함께하고 싶은 어머님 마음도, 이런 상황이 힘든 부인의 불편함도 다 이해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그런 후배에게 "그런 우유부단함이 부모님과 며느리 사이에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라고 말해줬다. 어머님을 별도로 만나 뵙고 "어머님이 주말에 가족과 같이 시간 보내고 싶으신 것처럼 저도 주말에는 저희 가족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라는 말씀과 "앞으로는 저의 집안과 관련된 일은 가장인 저와 미리 상의를 하셨으면 좋겠다"라고 말씀드려서 부모님 중심의 가족과 후배 중심의 가족 경계선을 명확히 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해줬다.
자식이 결혼해서 가장이 되면 자식의 가족 구성원에 부모가 개입하면 안 되고 자식도 부모에게 가족의 경계선을 지켜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결혼을 하면 가장 먼저 부모님을 뵙고 "부모님!! 제가 부모님의 자식이지만 동시에 한 가족의 가장입니다. 부모님이 저를 통해서 제 가족에 대한 일에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가족에 대한 모든 결정은 가장인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정중히 요청을 해야 한다.
요즘은 고부갈등 못지않게 장모와 사위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만만치 않다. 시댁에서 남편이 나선 것과 마찬가지로 친정에 대해서도 부인이 나서서 동일하게 부모님에게 가족의 경계선을 지켜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부부가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수많은 불화와 갈등에 노출된다. 이런 복잡한 결혼생활 속으로 부모 등을 끌어들이면 결혼생활은 가히 혼돈의 카오스를 방불케 할 수 있다. 결혼생활이 행복해지려면 결혼 초창기부터 부모 등을 자신들의 결혼생활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경계선을 명확히 설정한 튼튼한 방화벽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