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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의 페르시아

by 최성락

키루스의 전기 – 키로파에디아를 읽는다. 키루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립한 왕이다. 사실 키로파에디아를 읽기 전에는 키루스가 누구인지, 페르시아 제국을 누가 건설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키로파에디아를 읽게 된건, 이 책이 크세노폰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크세노폰의 책을 읽다가, 키로파에디아가 크세노폰의 대표적인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읽어보려했을 뿐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알게된 건, 키루스가 바로 그리스어 발음으로 퀴로스라는 거였다. 키루스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퀴로스는 들어본 적이 있다. 원피스의 장난감 나라편의 주요 인물에 퀴로스가 있었다. 원피스말고도 이런 저런 소설 등에서 퀴로스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여기에서 따온 이름이었구나를 알게 된다.


그렇게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던 키루스의 전기. 그러나 읽으면서 키루스는 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로 인정하게 된다. 아니,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가 아니라,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그동안 내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고 인정했던 사람은 카이사르였다. 키루스는 카이사르와 동격이다. 앞으로 내가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본다고 말하는 두 사람은 카이사르와 키루스가 될 것이다.


나는 로마 제국을 굉장히 훌륭한 나라로 본다. 다른 나라는 제국을 만들 때 주변의 다른 나라를 정복하면서 나라를 키웠다. 정복당한 나라는 피지배자가 되고, 착취를 당한다. 그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로마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탈리아 반도를 로마의 원래 영토로 보지만, 사실 로마는 굉장히 작은 지역이다. 나머지 지역은 로마 영토가 아니라 로마 동맹국들이다. 로마는 주변국들을 동맹국으로 삼았고, 이 동맹국들의 연합체가 로마였다. 그리고 이 로마 동맹체를 계속 확대해 나가 로마 제국이 되었다. 보통 주변국과는 사이가 안좋은 법이다.


그런데 로마는 주변국들과 친구 관계를 맺고, 동맹국으로 삼았다. 역사상 다른 제국에 정복당한 나라는 착취를 당하고 피폐해졌다. 하지만 로마에 정복당한 나라는 아니다. 로마와 친구가 되고, 로마 제국에 융화되었고, 또 이전보다 훨씬 더 잘살고 선진 문화를 누렸다.


로마는 나에게 이상적인 제국이었다. 그런데 키루스의 페르시아가 바로 이런 제국의 원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주변에 있는 적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적을 없애는 방법이다. 키루스에 정복당하고 항복했으면서 오히려 키루스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시스템. 로마 제국보다 먼저 그런 시스템을 구축했다. 로마의 모델이 바로 페르시아 제국이었나 보다.


적대국이었던 이집트를 자신의 동맹국으로 끌어들인 예를 보자. 키루스가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앗시리아를 정벌했다. 앗시리아는 자신의 동맹국과 같이 페르시아 군과 싸웠는데, 이 중에는 이집트군도 있었다.

키루스의 페르시아군이 승기를 잡아 앗시리아 군은 도망쳤고, 앗시리아 동맹군들도 사방으로 흘어졌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페르시아 군과 열심히 싸우는 군대가 있었다. 이집트 군대였다. 이집트 군대는 원의 형태로 대형을 만든 후 서로 방패를 겹치게 해서 페르시아 군대의 공격을 막으면서 저항을 했다.


키루스는 이렇게 용감한 이집트 군사들이 이런 식으로 죽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키루스는 이집트 군대에게 제안을 한다. ‘이집트 군을 버리고 도망간 배신자들을 위해 싸우다 죽을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건지면서 용감한 자로 인정을 받을 것인가’


이집트 군은 ‘목숨을 건지면서도 용감한 자라는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고 물었고, 이때 키루스의 말이다.


‘무기를 버리고, 여러분을 파괴할 힘이 있으면서도 여러분을 구하기로 마음먹은 자들과 친구가 되면 된다.’

그리고 또 이런 제안을 한다. ‘이집트 군이 자신과 친구가 된다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여러분이 지금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급여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 평화가 오면, 여러분 중에서 나와 함께 남기를 희망하는 자에게 땅과 부인과 하인을 줄 것이다.’


항복했으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쳐라라고 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이등국민이니, 피해를 감수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보다 더 많은 혜택을 베풀었다. 이러한 키루스의 제안에 이집트 군대는 페르시아 편으로 돌아서고, 이후 충실한 페르시아 동맹국이 된다.


이런 식으로 적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건 페르시아가 중동의 제국이 된 다음 키루스의 정식 정책이 된다. 페르시아는 서남아시아, 중동 지역을 완전히 제패했지만, 페르시아에 복속된 지역 중에는 아직 강한 군사력을 지닌 부족도 많이 있었다. 이들은 언제든 페르시아에 반기를 들 수 있다. 위험한 상대라 해서 피하고 견제할 순 없다. 그랬다간 이들은 정말로 페르시아의 적대국이 될 것이다. 키루스는 이런 위협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이들을 좋은 친구로 만드는 방법이다. 자기에게 가까이 있으면서 적이 될 수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된다. 이용하는 관계,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동등한 친구 관계. 그러면 상대방도 진심으로 페르시아 편이 된다.


주변 국가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게 당연해보이지만 당연한 게 아니다. 지금 한국이 가장 견제하고 싫어하는 나라가 어디인가. 일본과 중국, 가장 옆에 있는 나라이다. 중국이 어느 나라와 가장 분쟁을 하고 있나? 인도, 베트남 등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러시아는 옆에 있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했고, 이스라엘은 옆에 있는 레바논 등을 폭격한다. 주변 국가는 싸우는 국가이지, 친하게 지내는 국가가 아니다.


이 페르시아, 로마의 시스템을 도입한 현대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은 자기 옆 나라인 캐나다, 멕시코를 완전한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미국도 캐나다, 멕시코와 사이가 안좋고 전쟁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 친구 나라가 되고, 국제사회에서 절대적인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일본을 점령했지만, 일본은 미국과 가장 친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독일도 점령했는데, 독일도 현재 가장 중요한 미국 동맹국 중 하나이다. 미국도 로마와 같이 전 세계에 동맹국을 두고, 이 동맹국을 중요시한다. 미국이 현재 세계 최강대국인건 단순히 미국의 힘 때문이 아니다. 미국과 미국 동맹국들의 힘이다. 그 시스템을 제일 처음 구축한 게 키루스의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인정할 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키루스의 전기-키로파에디아를 읽으면서 충격을 받은 부분이 있다. 키로파에이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페르시아의 대도시에게 기술이 크게 발전한 이유, 또 왕의 식탁에 나오는 음식이 굉장히 맛이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작은 도시에서는 한 사람의 장인이 의자와 문짝, 쟁기와 탁자 등을 모두 만들고 또 집까지 짓는다. 하지만 대도시에는 각 분야에 대한 수요가 많아 한 사람이 한가지 분야에만 집중하고 모든 분야를 다루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한 분야만 전문으로 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남자 신발만 만들고, 어떤 사람은 여자 신발만 만든다. 신발을 꿰매는 일만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신발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만 수집한다. 이렇게 고도로 전문화된 작업에 전념하는 사람은 최고의 기술을 소유하게 된다. 또 궁전에서 음식을 만들 때는 한 사람은 고기를 삶고 다른 사람은 고기를 굽고, 어떤 사람은 생선을 삶고, 다른 사람은 생선을 굽고, 또 다른 사람은 빵만 만들고.. 이런 식으로 각자 맡은 분야에서만 음식을 만든다. 한 사람이 의자, 테이블을 정리하고 빵을 굽고 여러 음식들을 조리할 때보다, 훨씬 더 음식 맛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근대 경제학의 시조였던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제시했던 생산성 증대의 원칙, 바로 분업과 전문화의 원리가 키로파에디아에 그대로 적혀 있었다. 키로파에디아는 기원전 4세기, 무려 2400년 전에 씌여진 책이다. 그런데 여기에 현대 경제학의 기본 원리-분업과 전문화가 나와 있다. 분업과 전문화는 아담 스미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서구 문명의 뿌리는 그리스-로마 시대라는 것, 또 그리스-로마 시대는 그 이전 중동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걸 실감한다. 주변국들을 친구의 나라로 만드는 국가 전략, 동맹국을 중시하는 국제관계, 그리고 분업과 전문화의 경제 논리가 무려 2400년 전 키루스 페르시아의 모델이라는 건 상상도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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