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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락 Apr 26. 2022

끝없이 백성들을 돕고자 한 조선이 가난했던 이유

경제학의 패러독스

필자가 보기에 정말로 백성들을 위하려 했던 나라 중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조선이었다. 조선은 소위 말하는 성인 정치를 펼치려 했던 나라였다. 태평스러운 요순 시대가 이상이었고, 왕은 모두 요순같은 성군이 되려 했다. 성군의 조건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백성들이 어려울 때 돕는 것이다. 왕이 아직 왕세자일때부터 철저히 교육을 했다. 성군이 되어야 한다, 백성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세뇌를 시켰다. 

 그렇게 성군을 지향하도록 세뇌를 해도 연산군 같은 폭군이 나오기도 했고, 고종같이 국가를 완전히 자기 사유물로 생각하고, 국가는 자기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왕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왕들은 선의를 가지고 있었고 착했다. 조선의 왕들은 백성들이 어려울 때 도우려고 한다는 선의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조선에서 백성들을 도운 대표적인 정책이 진휼이다. 어떤 지역에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면 그 지역 백성들이 먹고살기 힘들다. 이때 조선은 언제나 진휼 정책을 시행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먹고살 식량을 제공해서,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게 했다. 엄청난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도와주는 것은 다른 나라도 있다. 하지만 조선은 조금만 홍수, 가뭄으로 피해가 나도 진휼을 베풀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끊임없이 어떤 지역에서 홍수 피해가 났으니 곡식을 보내라는 기사가 나온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진휼로 검색하면 2949건의 기사가 나온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평균 1년에 6번씩 진휼 정책을 시행했다. 이렇게까지 국민들을 위해 복지 정책을 시행했던 국가는 세상에 없다. 

 이런 임시적인 지원책인 진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스템적으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을 돕는 정책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환곡이다. 식량이 떨어졌을 때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지고, 가을에 수확을 하면 꾸어간 곡식을 갚게 했다. 이 환곡 정책은 고려, 조선에 걸쳐 무려 1000년 동안 이어진다. 국민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는 복지 정책이 이렇게 장기간 동안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국가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조선은 그렇게 국민들의 복지를 위하고, 또 복지 정책을 시행했던 국가였는데, 조선의 백성들은 항상 굶주림에 시달렸다. 1945년 한국이 해방된 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다. 한국은 1960년대까지 보리고개가 있었다. 가을에 수확한 쌀은 봄에 떨어지고, 6-7월 보리가 수확될때까지는 먹을 것이 없었다. 

 1950, 60년대에도 세계최빈국이었던 한국이 조선 시대때는 잘살았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1950, 60년대에 한국이 세계최빈국이었다면 조선도 세계최빈국이었다. 조선도 보리고개가 있었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국가는 전세계에서 극히 드물었다.


 아이러니이지 않은가. 전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국민 복지 제도를 갖추고 실행했던 조선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의 백성들은 항상 굶주렸고,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을 했다. 복지 제도가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한데, 그 제도가 제대로 굴러가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복지 제도인 환곡은 오히려 조선 말기가 되면 백성들을 괴롭히고 못살게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비난을 받는다.

 제도 자체는 좋았는데 탐관오리들이 제도를 잘못 운영해서 환곡이 망한 것은 아니다. 물론 탐관오리들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탐관오리가 없다고 해서 환곡이 제대로 백성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환곡 제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봄에 곡식을 나누어주고, 가을에는 곡식을 되돌려 받아야 했다. 그래야 그 다음해 봄에 다시 곡식을 나누어줄 수 있다. 그런데 흉년이 들었다 하자. 가을에 곡식을 되돌려받아야 하는데 돌려받을 곡식이 없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 

 흉년이 들어 곡식이 없으니 백성들을 위해 곡식을 걷지 않으면, 그 다음 봄이 되면 나누어줄 곡식이 없다. 보리고개를 넘지 못하고 백성들이 크게 굶주리게 되니 환곡 제도가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흉년인데 곡식을 억지로 거두어들이면 그게 바로 잔혹한 수령이고 탐관오리이다.

 보리고개가 존재하는 상황,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곡식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진휼을 잘 하고 복지 제도가 잘 마련되어도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조선은 소수 양반 귀족을 제외하고는 모두 먹을 것이 부족했고, 그래서 빈부격차가 굉장히 적었던 국가였다. 빈부격차가 작고, 국민들을 위하고, 다양한 복지정책이 시행되기는 하였지만, 우리는 조선을 살기좋은 국가, 살고싶은 국가로 보지는 않는다.


 한국이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이런 가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박정희 정권 시대에 한국은 세계 극빈국에서 벗어났고, 점점 잘사는 나라가 되어간다. 한국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고 굶어죽는 사람이 없어지게 된 것은 복지제도가 더 강력히 구축되어서가 아니다. 소위 산업화 정책, 경제성장 정책으로 가난에서 벗어난다.  

 박정희 시대에 한국은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을 만들고 시행한 적이 없다. 제대로 된 노동자 보호 정책도 없고, 빈민 구휼 정책도 없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자하는 정책은 거의 찾을 수 없다. 그 대신 산업화 정책, 성장 정책, 기업 지원 정책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런 정책으로 한국은 몇천년에 걸친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것이 경제학의 가장 대표적인 패러독스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복지 정책에 초점을 맞추면 국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서 더 잘살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을 돕는 복지 정책에 초점을 둔다고 해서 국민들이 더 잘살게 되지를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되지도 않는다. 열심히 국민 복지를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오히려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질 것 같다.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어려워질 것 같다. 그런데 경제가 성장하는 국가에서 가난한 국민들이 더 잘살게 된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고 하는게 아닌데,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가난에서 벗어난다. 가난하다고 해도 이전보다 생활 수준이 훨씬 더 나아진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고, 기업, 사업가, 부자를 위한 성장 정책을 실시할 때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진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경제는 그렇게 굴러간다.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래서 패러독스이다. 


 이 경제학의 패러독스를 모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정책을 주장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책을 강력히 지지한다. 자신들의 선의가 그에 합당한 결과와 보상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경제학의 패러독스를 아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정책에 별로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다. 의도는 좋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대신 경제성장 정책, 기업 성장 정책에 찬성의 표를 던진다. 이런 정책이 결국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잘살게 하는 정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책의 의도가 중요한가, 정책의 실제 결과가 중요한가. 경제학의 패러독스는 의도, 목적과 실제 결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이 경제학의 패러독스를 이해해야 현대 경제 정책의 메카니즘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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