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상 1
워렌 버핏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투자자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들은 보통 새로운 사업을 일궈낸 사람들이다. 테슬라를 세운 일론 머스크,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베이조스,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벨 게이츠 등, 세계를 바꾸었다고 하는 기업을 만들어서 키워낸 사람이 보통 세계 최고의 부자 명단에 들어간다. 그런데 워렌 버핏은 이런 기업체를 만들지 않고 오직 투자로만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워렌 버핏도 회사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버크셔 해서웨이란 회사이다. 하지만 버크셔 해서웨이는 특별한 제품,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회사는 아니다. 단지 워렌 버핏이 투자를 할 때 이용하는 회사로서의 의미만 있다. 워렌 버핏은 자기 이름으로 투자를 하지 않고 버크셔 해서웨이 이름으로 투자를 한다.
2022년 4월 30일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 날이었다. 한국의 주주총회와 달리 미국의 주주총회는 주주들의 파티인 경우가 많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이 자리에 워렌 버핏이 참석해서 회사의 투자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진다. 워렌 버핏이 뭐라뭐라 했다는건 사실 대부분 바로 주주총회에서 한 말이다. 워렌 버핏은 개별적인 인터뷰, 발표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워렌 버핏이 주주총회에서 한 말은 바로 이슈가 되었다. 이번에 한 대표적인 말은 바로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이다. 비트코인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하고, 전세계 모든 비트코인을 25불에 살 수 있어도 사지 않겠다고 했다.
워렌 버핏이 비트코인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워렌 버핏은 비트코인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워렌 버핏의 말을 예시로 들면서 비트코인을 비판한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 세계 최고의 현인으로 인정받는 워렌 버핏이 비트코인을 이렇게 보고 있는데, 그래도 계속해서 비트코인을 살거냐는 비판이다.
비트코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비트코인을 투자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워렌 버핏의 말을 기준으로 하여 비트코인에 대해 이런 저런 판단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 유명인의 말을 그냥 인용하고, 또 유명인의 말을 그냥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지의 오류일 뿐이다.
우선 워렌 버핏은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가치투자자이다. 가치 투자의 가장 대표적인 투자자가 바로 워렌 버핏이다. 가치 투자는 기업, 주식의 객관적인 가치를 중시한다. 이익이 얼마인지, 수익창출력이 어느정도인지, 자산 가치가 어느정도인지가 투자대상 여부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지표이다. 이런 실질 가치에 비해 현재 주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보고 투자 여부를 판단한다. 실질 가치가 현재 주가보다 높으면 주식을 사고, 실질 가치가 현재 주가보다 낮으면 주식을 판다.
이런 가치투자 관점에서 보면 비트코인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비트코인은 아무리 오래 가지고 있어도 어떤 현금 흐름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현금을 은행에 두면 이자라도 나오는데, 비트코인은 그런 것도 없다. 기대 수익이 0이면 가치도 0이다. 그러면 가격도 0이어야 한다. 가치투자 관점에서 보면 워렌 버핏의 말은 100% 옳다.
그런데 이 세상 물건의 가격이란게 꼭 이런 수익을 발생시키는 객관적 가치에 따라 정해지지는 않는다. 유명한 그림을 보자.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매달 얼마의 이익이 생기지는 않는다. 매년 이익 배당금이 나오지도 않는다. 수익 가치가 0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십억, 몇백억의 가격이 붙는다. 가지고 있어도 아무런 돈이 나오지 않는 한정판 스니커스, 야구선수 카드 등이 몇천만원, 몇십억이란 돈으로 거래되고 있다. 가치투자 입장에서는 이 모든 상품의 가격은 0이어야 한다.
수익 가치만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극단적으로 제시되는 예가 있다. 아기들은 어떤 수익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어디 쓸데도 없다. 오히려 많은 돈과 시간을 소모해야 한다. 가치투자 입장에서 아무런 가치가 없고 오히려 손해를 주는 대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기들이 정말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 가족 입장에서 다른 그 어떤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투자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가치투자는 그 여러 투자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기술적 투자에서는 기업의 가치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다. 차트 중심 투자에서는 기업의 본질적 가치가 얼마인가는 아예 신경쓰지 않는다. 워렌 버핏은 가치투자자로서, 가치투자 입장에서 비트코인을 판단하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투자 기법에서 보면 비트코인 가격은 다르게 산정될 수 있다.
또 워렌 버핏이 세계적인 투자자로서 이름이 높다고 워렌 버핏의 모든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오류이다. 워렌 버핏은 많은 돈을 벌었다. 그건 사실이고 충분히 칭송받을만하다. 그런데 돈을 벌었다고해서 남다른 예지력이 있다거나 미래를 판단하는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세계적인 수영 선수가 수영에 대해 뭐라 하면 새겨들어야 한다. 하지만 축구에 대해서 하는 말은 무시해야 한다. 같은 수영에 대한 이야기라 해도, 자유형 전문 선수라면 자유형에 대해서만 귀기울여야지, 접영, 평영에 대해서 하는 말은 새겨서 들어야 한다.
워렌 버핏은 본인이 젊었을 때 유명하고 유망한 산업, 기업에서 큰 돈을 벌었다. 코카콜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등등이 대표적이다.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라 인정해도 된다. 하지만 워렌 버핏은 인터넷 세상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지금 비트코인을 비판하듯이, 1990년대, 2000년대에 인터넷 기업들을 비판했다. 당시 인터넷 기업들은 수익을 하나도 내지 못했다. 가치투자 입장에서 가치 제로의 회사들이었고, 이런 회사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워렌 버핏 입장에서 애플, 아마존,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의 회사들은 쓰레기 회사들이었을 뿐이다. 워렌 버핏은 훌륭한 투자자이다. 하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등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거품으로만 생각한 사람을 혜안이 있다고 볼수는 없다.
워렌 버핏이 지금 애플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애플이 이 세상을 스마트폰 세상으로 바꾸고 난 이후이다. 사람들의 생활에 떨어질 수 없는 완전한 소비용품이 된 이후에야 애플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 세상을 받아들여서 투자한 것이 아니라, 과거 전통적인 산업에서의 판단 기준-생활에 밀착되어서 그 상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단계, 그래서 기업이 계속해서 이익을 낼 수 있는 단계-에 따라 투자한 것이다. 워렌 버핏은 그 기준으로 돈을 벌고 세계 최고 투자자가 되었다.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으로 돈을 번게 아니다.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이야기할 때 워렌 버핏의 말을 예시로 들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비관론을 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비트코인이 어떻게 될지는 사실 누구도 모른다. 미래 예측은 우리들이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가치투자 입장 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가치투자자의 시각으로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워렌 버핏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건 비트코인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세상은 가치투자 이외에도 여러 투자 방법이 있고, 수익 가치 이외의 것을 중시하는 세계관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