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말하고 웃을 수 있는 고마움
딱히 비밀까진 아닌데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비밀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랑비가 내릴 때 우산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것처럼 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때가 있다. 나는 맞을 수 있는 비는 그냥 맞고 걷는 편이었다. 가까운 편의점에 우산을 팔아도 우산을 사지 않았다. 가볍게 맞고 툭툭 털어낼 수 있는 가랑비에 우산을 사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미리 준비한 우산이 있다면 가랑비 속에 더 오래 서있었을 거였다. 부끄러워서 그렇지, 때로는 젖을 수 있을 때 젖는 것도 좋았다. 비를 맞는 나를 보는 사람에겐 집에 있는 우산은 없는 거였다. 이야기도 그랬다. 마음의 준비 없이 꺼낸 이야기는 급하게 구매한 우산만큼이나 내구성이 좋지 않았다.
이야기는 기억으로 풀어내는 것 같지만 사실 감정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어떤 감정에 젖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가랑비정도라면 나는 그냥 젖으며 들어준다. 상대방의 감정이 좋았고 그 감정에 살짝 젖는 내 감정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 날엔 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상대방 이야기에 감정 리액션만 해주면 된다. 그게 상대방도 나도 모두에게 좋았다. 내가 가랑비가 되는 날엔 상대방도 그렇게 해주는 게 좋았고 그런 결의 사람들이 지금 내 주변에 남았다. 일기예보에 우산을 준비하듯 익숙해지는 만남을 소중히 대한다. 새로운 인연을 준비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가랑비에 젖은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나는 우산을 준비해 갔고 가랑비에 오래 서 있을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했고 내 감정을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오랜 인연이 만들어진다. 오랜 인연을 만나면 웃다가도 울었고 울다가도 웃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어떤 감정에 젖을지 알 수 있었다. 그런 날에는 폭우가 쏟아져도 한 우산 아래 함께할 수 있었다.
같이 말하고 웃을 수 있는 고마움이 있다. 기분 좋은 웃음에 초조함이 가려지고 다정한 배려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래 만난 인연이 주는 안전함과 반가움이 있다.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오랜 인연이 있다는 건 내가 괜찮다는 거다. 나는 오늘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