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15

곰의 재주

by Pia Jong Seok Lee

늘 내게 묻는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만하면 됐다라고 혼자 위로하고 있지 않은가, 난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유흥준 선생이쓴 ‘화인열전’ 이라는 책을 보면, 조선시대 이름 난 여러 화가들에 대한 그림과 그들의 삶을 열거하고 있다. 그 중 내 눈을 잡아끌고 날 떨리게 한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호랑이도’다. 그 그림은 김홍도가 세필로 그렸는데, 호랑이 털 한올 한올을 정성들여 힘있게 한획, 한획 그려 넣었다. 한 오만번을 붓질 했을까? 어쩌면 칠만번, 십만번 이상을 종이에 붓질 하여 호랑이 한 마리에게 생명을 불어 넣었다. 단원은 그림을 그리며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며 스스로와 싸웠을까, 어느만큼의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는 과연 어느 때가 돼서야 비로소 붓을 내려 놓았을까. 그리고 그 내려놓은 붓을 또 몇 번이고 다시 들었을까. 처음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을 마주할 때 그는, 또 얼마나 떨렸을까.


돌아보건데, 나는 그만큼의 끈기와 노력, 그것이 바탕이된 실력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지 않다. 아직도 그저 재주를 부리며 한 작품, 한 작품을 만나고 있다. 나의 재주가 실력이 되기 위해 나 역시 단원처럼 내 안의 떨림과 마주하며 세상이 바뀌는줄도 모르고 한 작품에 모든 것을 쏟아 내야 하는데, 나는 뭐 그리 바뻐서 하루 종일 이쪽 저쪽 뛰어다니는지… 한 작품에 연출료를 얼마 받던 그것에 괘념치 않고 작품이 처음으로 세상과 조우할 때까지 나는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내 눈과 마음은 온통 편리와 사회적 존재감에 빠져있다. 길을 걸으면 내 양편 가득한 상점의 간판들 속에서 어디를 들어가든 충분한 구매력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하고,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면 더 크고 더 세련된 자동차로 그 길 위 달리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고, 철 따라 새옷, 새 신을 입고 신고 사람들 가운데 나를 빛나게 하고 싶은 물욕이 내겐 있다. 이런 욕심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욕심은 나를 더욱 바삐 움직이게 하여 욕망을 채우려는 사회적 활동을 창작 활동을 보다 앞서게 하고, 결국 그것은 한 작품을 하는 동안 오롯이 그 작품에만 나를 묶어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아직 실력이 아닌 재주로만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다. 서커스의 곰 마냥 재주 부리고, 한끼 얻어 먹는 것에 허덕이면 끝이다. 버리자. 그럴 수 없겠지만 버리자. 진정한 빛은 새옷도, 새차도 아니다. 온전한 호랑이 하나 생명 불어 넣을 때, 나만 아는 완성의 순간에 붓을 내려 놓도록, 버리자, 좀. 쫄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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