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20

부름

by Pia Jong Seok Lee

며칠 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wakening) 의 연습이 시작됐다. 비가 내리는 날, 대학로 예술마당 지하 연습실에서 아침 10시에 첫 모임이 있었다. 대게 연습 첫 날에는 제작 프로듀서를 포함하여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가 누구인지, 어떻게 이 작품이 만들어 질 것인지에 대해 서로 인사하고 각오를 나눈다. 그날 늦으면 작품을 만들어가는 내내 불성실한 사람으로 이미지가 나쁘게 찍힐 수 있다, 모두에게. 연출부는 언제나, 반드시 일찍 와 있어야만 흔히 말하는 ‘가오’가 떨어지지 않고 팀을 장악할 수 있다. 그런데 이놈의 날씨가 어찌나 지랄 맞은지 비는 세게 내리고, 차는 막히고, 창덕궁에 도착하니 9시 45분이었다. ‘늦으면 안되는데, 더구나 이번 작품에서 난 연출도 아니고 연습감독이라는 애매한 포지션인데, 정말 가오 떨어지게 생겼구나, 첫 날부터…’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로 갈아타고 달렸다.


2분전에 연습장에 도착해 허겁지겁 내려가 호흡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역시 모두 와 있었다. K 누나와(연출가, 대학 2년 선배.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누나는 내게 많은 것을 보여 줬다. 연극도, 책도, 음악도 누나는 내게 채웠다. 누나의 눈을 통해 대학 생활을 열었고, 그해 여름 누나의 조연출로서 덴마크 연극제에 다녀왔다. 학교에서는 조연출에게 항공권을 제공하지 않는다 했지만, 누나는 그 때 자신의 통장을 깼고, 날 비행기에 태웠다. 졸업 후에 <쓰릴 미> 연출로 헤븐에 소개한 것도 누나다. 누나는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날 궤도에 올렸다.)쓴 인사를 주고 받고는 누나 곁에 앉았다. M대표가 피어노 곁에 서서 모든 참가자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첫 날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날, 그 아침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두 동그랗고 넓게 앉아 M대표의 인사를 듣는데, 무슨 개척교회의 열린 예배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M대표님은(시장이 원하는 작품을 기획하기 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작품을 기획해서 뮤지컬의 장르를 넓혔다. 그래서 본인 인생의 고생이 많았다. 몇 가지 나와 잘 안맞지만, 용기와 추진력을 배웠다. 그는 날 서경대에 보내 학생들을 가르치게 만들었다.)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라 소리가 좋고, 모두를 향해 말하는 스피치도 비교적 좋다. 그래서 인지, 비가 내려서 인지 가족적이지만 또 조금은 불편한, 그런 아침.


리딩(reading, 대본읽기) 대형으로 앉아 자료를 함께 읽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서울 예술단에서 연출을 찾는데 한번 해보지 않을래요? Js’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Js음악감독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잉? 나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거기서? 글쎄… ‘제가요? 아직 좀 그렇잖아요?’ 라고 답을 써 보내고 다시 쳐다보았더니 써니는(난 그녀를 써니라고 부른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청 이야기>, <웰컴 맘>등의 작품을 함께 했다. 난 써니로부터 호흡의 준비를 배웠다. 배우가 장면에 들어가기 전, 이미 결정되어 이었어야 하는 인물의 호흡, 그 호흡이 어떻게 음악을 불러내고 노래로 이어지는지 써니와 함께 작업하며 배울 수 있었다. 또 소주도 배웠다. 소주에 물을 넣어 알콜 도수를 낮추고 깨끗하게 마시는 법을 음악과 함께 가르쳐 줬다.) 내게 다시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 할 수 있어. 내가 얘기해 볼게.’ 그녀는 정말 얘기했고 수일 뒤, 나와 정중한 수인사를 나눴던 예술단의 Bw팀장은 정말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만나자고.

서울예술단에 찾아갔다. 그보다 삼년 전 뮤지컬 <이>를 만들 때 Tw형의(극작가, 연출가, 연극원 교수. 연극 <이>의 작가다. 그 작품은 후에 영화 <왕의 남자>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다. 형은 내 대학시절 극작과 조교였다. 글에 대한 집중력이 무섭고, 방학 중 도서관의 책들이 거의 형의 방으로 이동할 정도로 창작을 위해 공부가 깊었다. 형은 술도 잘마시고 놀기도 잘한다. 극단 우인을 이끌었다.) 조연출로 발을 딛었다가 위와 장이 뒤집어져 단 삼일만에 불명예 퇴직했던 그곳으로 다시 찾아갔다. 만감이 교차했다. 예술감독실에서 예술단의 여러 어른들을 만났다. 그들은 아무도 3년전의 3일짜리 조연출을 기억하지 못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무대 위에서 뵈온 분들이라 난 너무 낯이 익었고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나는 그들을 당황하게 했다. “<심청이>를 하려해요. 우리가 97년에 만들었었는데 이번 겨울에 다시 레파토리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까 우리가 보기에도 조금 어렵네, 그 때 작품이. 요즘 관객들이 좋아할 수 있어야 하는데…” Pw 예술감독이 말을 땠다. “그럼 내용을 바꾸어도 된다는 말씀이세요?” “다 바꾸어야겠지 아마?” 아싸! 아직 연출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고전을 새롭게 재탄생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기뻤다. 사실 어른들 속에서 조금 위축됐고, 예술단의 그 묘한 기운, 무언가 나를 누르는 듯한 그 기운에 쫄지 않으려고 아랫배에 힘주고 버텼는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호흡이 풀리고 말을 먼저 던져 버렸다. “제가 해볼께요, 일주일 안에 생각을 정리해서 페이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젊은 놈 용기가 가상했는지, 날 그냥 보내지 않고 식사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함께 소주를 마셨고, 즐거이 헤어졌다. ‘미쳤어, 못 하면 다시는 발도 못 붙일텐데.. 여기에..’


사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늘 두렵다. 작품을 새로 맡으면 새 작품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작품을 못 맡으면 또 못 맡은대로 삶의 두려움이 크다. 늘 이 두려움과 싸우며 지낸다. 새 작품이 두려운 것은, 내가 이전에 어떤 작품을 만들었건, 그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았건간에 새로 시작되는 새 작품을 잘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증거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번 망치면 끝. 페이 연출로 콜링이 사라진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고, 그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지속될지도 모르며, 또 모든 해석과 동선, 무대기술과의 조합이 정말 새롭고 완성도가 높을 수 있을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관객들이 받아 줄지 아닐지 모르기에 두렵다. 작품이 망하면, 나와 함께하는 모두가 망한다. 객석이 비면, 그 안에 있는 모두와 그들의 가족이 어려워진다. 잘해야 한다, 무조건. 그런데 대본을 읽으면 아무 생각이 안 떠올를 때도 있고, 또 떠올랐다 해도 가장 가깝게 일하는 안무, 조연출, 음악감독들이 내 생각을 잘 못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배우들의 첫 걸음을 떼게 할 때에도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모든게 새롭고 모든게 어려워 매번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철저한 준비밖에 없다.


앉으나 서나, 걸을 때나 달릴 때나, 먹을 때나 샤워할 때나 잠들기 전까지도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모든 생각과 관심과 눈을 그곳에 집중해야만 한다, 적어도 나는. 내가 정말 재능이 있는 것일까에 대한 수 많은 질문과 의심을 하며, 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블록킹(Blocking 배우들의 움직임 선을 만드는 작업)이 끝날 때 까지 이러한 위기와 두려움은 내 좌우 어깨에 있어 난 술자리도 피하고 다른 개인적인 만남도 피하며 나에게 집중한다. 겨우 블록킹이 끝나야 마음에 평화가 오고, ‘아.. 저걸 내가 어떻게 했데?’ 하는 자조와 위로를 갖는다. 그런데 일을 벌린 것이다. 새파랗게 어린 것이 심청이를 지 마음대로 해 보겠다고, 큰소리 땅땅치고 나온 것이다. 아무 생각도 없으면서. 그러니 소주마시는 동안 내 머리가 얼마나 팽팽 돌아갔겠는가, 이걸 어떻게든 만들어봐야 하는데, 짤리면 얼마나 쪽팔려.. 재능없음이 증명되는 것 아니겠는가… 소주를 많이 마셨지만 그토록 정신이 말짱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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