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23

최귀섭, 최명섭 형제

by Pia Jong Seok Lee

강보람을 앞세우고 예술단에 찾아갔다.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처음 뵙는 두 분이 더 앉아 계셨다. 난 우선 예술감독님께 강보람 작가를 소개했고, 그 후 감독님은 내 앞에 앉은 두 분과 우리를 서로에게 소개하셨다. 최귀섭, 최명섭 형제였다. 여기서 잠깐, 그 두 사람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형제는 돌아가신 작곡가 최창권 선생님의 첫째와 셋째 아들이다. 최창권 선생님은 서울 시립 뮤지컬단 전신인 ‘예그린’의 단장이셨고, 한국 최초의 서양식 뮤지컬인 <살짜기 옵서예>를 작곡하셨던 한국 뮤지컬의 1세대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그 분에겐 아들이 삼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작사하는 최명섭, 둘째가 노래하는 최호섭, 그리고 막내가 작곡하는 최귀섭이다. ‘세월이 가면’,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사랑은 유리 같은 것’ 등과 같은 가요도 이들 형제 손에서 탄생됐다. 형제의 노래는 80년대 중 후반 대단한 인기를 누린 곡들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이 첫째, 셋째 형제는 90년대 초반 우리 창작 뮤지컬의 대표작들을 도맡아 작업했다. <사랑은 비를타고>, <쇼 코메디>, <마네킨>, <정글북> 등 아주 많은 작품들이 이들 형제 손에서 탄생됐고, 내 머릿속에 아직 그들이 만든 멜로디와 가사가 남아있다. 형제는, 용감했다. 그 멋진 형제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는 기 죽지 않으려고 아는체 안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보람이와 내가 계획하는 심청이에 대해 속사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하지만 정확하게 전달하려애썼다. 우리의 얘기가 끝나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최귀섭 선생님이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옛날하고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는거네요?” 이 두 형제는 사실 10년 전 예술단의 <심청>을 탄생시킨 장본인들이었다. 그 해에 이 작품으로 여러 상을 수상했었던 형제에겐 자부심과 그리움이 담긴 작품이었다. 그런데 새파랗게 젊디 젊은 애들 둘이 와 앉아서, 하나는 연출이랍시고, 또 하나는 작가랍시고 지금 그 원작의 주인들 앞에서 작품을 리뉴얼을 하겠다고 떠들어 대니 그 두 사람의 마음이 어땠겠는가. 물론 두 사람도 이 작품을 수정할 의도를 가지고 오셨고, 지난번 작품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의욕이 충만했다. 하지만 나와 보람이는 형제들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고 우리의 생각을 먼저 밀어 넣었다.


최귀섭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아, 이거 뭔가 틀어지겠구나’를 직감했다. 그가 다시 말문을 이었다. “왜 그렇게 바꾸려고 하시죠?” 나는 신중히 생각했고, 최대한 두 분 선생님들이 노하지 않도록 단어를 선택해 가며 내 이유를 밝혔다. “네, 저는 대학 2학년 때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 작품을 관람했습니다. 그 때의 저는 이 작품에 흥분했고, 몇몇 장면의 노래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한참을 따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다 이번 작품의 의뢰를 받고 다시 초연의 동영상을 봤더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었고, 두 분의 작품이 보다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기에 그렇습니다.” “그럼 꼭 내용이 바뀌어야 하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원작 <심청>은 극적 갈등이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청이가 단순히 아버지의 눈을 뜨기 위한 효녀로서는 제 마음부터 그 정당성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또 솔직히 말씀드리면, 요즘 관객들은 멋진 남성 캐릭터를 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심청이와 어린 왕자의 뚜렷한 삶의 이유, 그들의 사랑, 그리고 희생을 감수한 그들의 어떤 선택들이 작품의 극적 갈등과 인물들의 삶의 이유를 단단히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난 또박 또박 대답했다. 목소리 떨리지 않으려 대단히 애를 썼다. 최귀섭 선생님의 집중하며 듣는 모습을 모르는 사람은 그가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분명히 전달하고자 할 때의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 난 그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매서운 사람인지를 한번에 보고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주차장에서 두 형제를 다시 만났다. 형제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최귀섭 선생님은 내게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네, 서른 세 살입니다.” 날 또렷히 보던 그는, “좋은 나이예요. 이 감독 같은 나이에 이제 명작들이 나오기 시작하지. 그래요 또 만납시다.”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며칠 뒤, 일요일 밤, Pw 예술감독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귀섭이가 함께 하기 어렵겠다고 연락이 왔어, 본인은 원래의 작품을 다시 올리는 줄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많이 변화를 준다고 한 것이 맞지 않았나봐.” 아.. 어쩌지.. 물론 내가 최귀섭 선생님이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어진 시간 안에 이 작품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분은 최씨 형제들밖에는 없을텐데.. 다시 작곡가를 섭외하여 41곡이 넘는 송스루(Song Through)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일정상, 작품의 완성도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후 최귀섭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감독, 아, 미안하게 됐어요, 나도 함께하고 싶은데, 지금의 상태로는 서로의 방향이 너무 어긋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 감독이 잘 해 줄 거라 믿어요.” 큰 일이다.


며칠을 고민하며 여러 방향을 찾았지만 대안은 없었다. Sj 음악감독과 나는 분주히 여러 작곡가들의 일정을 살폈고, 요즘 이름을 얻고 있는 좋은 작곡가의 리스트를 만들며 그들이 우리와 작업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최귀섭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날 고민을 해 봤어요. 이 작품을 그대로 두어도 되는 것인가. 우리 같이 해 봅시다, 이감독. 나도 이 작품에 대한 숙제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짧은 시간 작품에 대해 이해하고 준비한 이감독의 정성도 마음을 움직였어요.” 하… “감사합니다, 선생님. 최선을 다할께요.” 문제가 풀렸다. 이젠 작업을 시작하면 된다. 정말 다행이었고,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보람이와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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