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24

심청씨의 윤곽이 잡히고

by Pia Jong Seok Lee

작곡가, 나, 조연출 John, 작사가, 작가, 음악감독은 매주 2~3회 밤을 세워가며 서울대 근처 최귀섭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회의를 하고 이야기의 틀을 잡아나갔다. 우린 이견이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가 제안한 제일 명제 in time. 즉 연습 전까지 대본과 모든 곡을 완성 짓고 모든 미술적 작업까지도 마친 후 연습을 시작하기로 합의 했기에 부족한 시간을 낮밤 구분 없이 흘려보냈다. 우리가 합의한 이야기 흐름에 따라 작곡 선생님이 먼저 곡을 쓰고 작가와 작사 선생님이 이야기의 틀을 채워나가며 나와 조연출 전순열군이 동선을 만들어가는 방법으로 봄과 여름을 살았다. 낮에는 <스프링> 연습장에서, 밤에는 <쓰릴 미> 극장에서, 저녁과 새벽은 서울대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어도 피곤하지 않았고, 삶이 기쁘고 행복했다 우린 정말 열심히 작업했다. 기존 곡과 새로 써야할 곡을 합쳐 총 41곡이 넘는 분량을 우린 만들어 나갔다. 동시에 스태프들과는 미술회의를 진행하며 무대와 의상, 미술적 통일성도 차근히 준비해 나갔다.


회의와 기록을 통해 시놉시스가 점차 대본화 되어갔고, 각각의 장면에 적합한 노래들이 배치됐다. 대본과 음악의 창작과정들이 넉 달 안에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업이 원작을 기반으로 한 재창작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바탕 없이 처음부터 장면의 구조를 짜고 44곡의 곡을 쓰는 일을 시작했다면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창작자 전원이 합의하고 의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인 원전 판소리 <심청가>의 서사구조와 인물구도, 12년 전 공연됐던 가무극 <심청>은 우리의 창작 과정 가운데 단단한 뿌리가 되어줬고, 그 뿌리 위에 줄기와 잎, 꽃과 열매를 배치할 수 있었기에 넉 달 만에 새로운 창작의 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또한, 창작자 상호 간의 철저한 준비와 상대 파트의 작업을 존중하는 태도였다. 이 창작 과정을 진행하며 매 순간이 고되고 놀라웠지만, 특별히 작곡가 최귀섭의 작업방식이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그는 우리가 함께 논의한 장면들의 분위기와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가사 없이 자신의 음악으로 한 곡씩 장면과 인물을 완성해 갔다. 그리고 음악의 사이마다 효과음을 대신한 악기를 배치해 시간과 장소, 극적 긴장들을 배가했다. 그의 곡들을 연결하면, 가사가 없어도 장면의 흐름과 분위기가 짐작됐고 상황이 연결됐다. 작사가 최명섭의 작업 역시 존경스러웠다. 그는 작가와 합의한 장면의 얘기들에 동생의 작곡을 거의 100% 존중하며 노랫말로 채웠다. 뮤지컬 1세대의 주역들과 작업하며 그들의 실력뿐만 아니라 나이와 경력을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역할로서 동료 작업자를 대하는 겸손함에 깊이 감사했다.


청이의 윤곽이 거의 잡혔다. 스토리와 음악 배분이 끝났고, 모든 노래들이 거의 완성되었다. 미술도 무대 디자이너 이태섭 선생님과의(무대 디자이너, 전 용인대 교수. 한국 뮤지컬, 연극, 무용의 무대 디자인에 이태섭 선생님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용인대 연극영화과가 무대 미술파트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도 이 분의 노력이 크다.) 여러 차례 회의와 모델 제작을 통해 준비 되어갔다. 미술적 핵심은 서양 사람들이 동양을 소재로 동화를 그린다면 어떤 색감과 스타일을 만들어 낼 것인가에서 출발했고, 디즈니와 20세기 폭스사의 동양소재의 만화 영화들을 참고하며 그러한 개념들을 완성해 갔다. 왜 이런 개념을 합의 했냐면, 난 이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 되기보다 가능하면 전 세계를 향하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의상 디자이너인 유미양 선생님은 거의 100장이 넘는 채색 스케치를 하고 지우고 찢고 다시 그리며 우리가 합의한 무대와 의상의 조화를 위해 노력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청이의 두려움이었다. 만경창파가 뛰는 뱃전에서 열다섯 청이가 그 시커먼 물을 봤을 때, 아무리 굳은 결심하고 그 곳에 섰다해도 얼마나 그 애가, 그 위에서 두려웠을까하는 것이 청이라는 인물을 창조하는데 핵심이었다. 물론 청이의 당찬 용기 있음과 아버지의 행복을 바라는 그 강렬한 욕망이 청이를 다시 살게 하지만, 그런 애 일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또 이제 갓 찾은 사랑을 떠날 때의 그 선택은 얼마나 두렵고 또 가슴이 아플까. 그것이 만들고 싶은 청이의 핵심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아파트 건설 현장의 골리앗 크레인을 보게 되었다. 허공 끝에 위태로이 시소처럼 서 있는 크레인, 저 끝에 누군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서 있다면… 그래, 저거였다. 이태섭 선생님께 나는 그 것을 말씀드렸고, 그는 내 마음을 정확히 이해한 후 두 개의 시소 장치가 교차되는 기본 무대를 디자인 했다. 완성, 그래. 무대가 그렇게 완성됐고, 의상도 그 무대와 어울리게 방향이 잡혔다. 음악도 거의 끝났다. 배우들과 그 모든 것들을 하나로 뭉쳐, 믿음직한 얘기로 전달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나만 잘 하면, 된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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