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25

연습준비

by Pia Jong Seok Lee

배우들을 만날 날이 가까워 지고 있었다. 앞서‘ 가오’에 대해서 말했듯이 예술단이라는 단체에 젊은 연출이 초빙되어 갈 때, 가능하면 흠 잡힐 일이 없는 것이 내겐 중요했다. 그들은 이미 내 선생님들을 비롯하여 당대의 걸출한 거의 모든 연출들과 작업을 한 경험이 있고 또 직업 예술단체의 속한 예술가이기 때문에 작업은 곧 일상이었다. 나처럼 경험 적고 나이 어린, 아직 걸출함을 증명하지 못한 연출가가 작품을 맡아 그들과 함께 하면, 내 모든 것은 대번에 다른 연출 선생님들과 비교되기 십상이다. 난 예술단과 작업한 최연소 연출이었다. 배우와 연출간의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간의 신뢰라고 생각한다. 그 신뢰는 명성이든, 이전 작품에 대한 결과이든, 아니면 지금 이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의 강력히 쌓인 무엇이든 상호간 가득하지 않으면 작업은 대단히 어렵고 괴로운 시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난 단체를 상대하기 어렸고, 경험도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50점은 깍이고 시작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한 가지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건 바로 철저한 준비였다.


배우들과 만나기 전에, 난 작품의 모든 방향과 동선을 끝내 놓고 싶었다. 그래서 첫 연습부터 연출로서의 모든 생각과 방향을 제안하고 내가 준비되어 있음을, 그러니 아무염려 말고 신나게 작업하자고 무언의 대화를 시도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손발이 맞을 조연출이 필요했고, 내가 생각하고 계획하는 모든 것을 시각화 시킬 능력 또한 필요했다. 대게 조연출의 섭외란 출신학교 후배들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직전 작품에 만났던 여러 인맥을 통해 소개 받는 것인데, 내 경우는 졸업한지도 한 참되었고, 직전 작품에서의 동료들은 이미 다른 작품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을 만나야만 했다. 누가 좋을까 한참을 찾다가 교회 성가대에서 함께 노래하는 John이떠올랐다. John은 서울예대에서 연출을 전공하고 졸업했는데, 우리 교회에서 유일하게 딴따라가 나와 그 뿐이어서 친분은 약해도 어떤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에서의 John의 모습과 서울예대를 다녔던 후배들의 평판이 좋아 함께 일 할 것을 제안했고, John은 흔쾌히 내 손을 잡았다.(이 작업을 시작으로 John이 유학가기 직전까지 약 7년을 함께 했다.) 그는 내가 계획하는 모든 것들을 페이퍼화 시켰고, 특별히 시각화 자료를 만드는데 탁월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동선을 그림과 설명으로 페이퍼화 시켰고 첫 연습 전에 구체적인 동선과 흐름이 담긴 장면 계획표를 만들어 예술단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가오’가 살았다.

나는 양식적인 면에서 테마동작(theme movement)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뮤지컬 음악에서 테마 멜로디(leitmotif)가 반복되어 인물의 상황과 정서를 대화 없이 관객들에게 전달하듯, 동작도 멜로디처럼 같은 정서와 감정을 반복하여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발레의 대화 표현과 비슷할 수 있는데, 이러한 동작의 반복은 브레히트가 말하는 게스투스(Gestus)처럼, 인물의 상태나 상황을 특정 동작의 증폭된 표현을 통해 말없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고, 그것의 반복을 통해 인물의 상태, 내적 감정 또는 내적 대화들(sub text)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술단에 이러한 연출 의도를 밝혔더니 예술단 무용감독 은 2명의 안무가와 함께 일하도록 배려했다. 한국 무용을 전공한 안무가 Kh를 통해서는 무대 전체의 구성과 배치를 돕게 했고, 프랑스에서 현대 무용을 전공한 안무가 Pj에게는 개별 테마 동작을 만들어 도울 수 있게 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성향을 가진 두 안무가는 내 생각과 연출 의도를 이해하고, Kh는 전체 군무의 개념을, Pj는 인물 개별의 테마와 상황에 따른 변화를 만들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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