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26

위기

by Pia Jong Seok Lee

공발위에서 문제가 생겼다. 공발위는 공연발전 위원회의 준말로 예술단의 공연에 사용할 예산, 초빙할 외부 인사, 그리고 작품의 레퍼토리 등을 논의하는 단내 위원회다. 공발위에서는 내가 대극장 뮤지컬 경험이 없고 아직 실력을 검증하기에는 작품 편수가 적다는 이유로 연출로 선임하기 어렵다고 입장을 전했다. 최초에 나를 섭외한 것은 공발위의 합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추천을 통한 Pw예술감독의 결정이었다. 공발위 입장에서는, 세금 10억 가까운 예산을 사용하고 국립 중앙극장 해오름에서 공연을 계획하는 <심청>을 나와 같이 대극장 경험이 전무한 무명의 젊은 연출가에 맡기는 것은 모험이었다. 공발위에서 예술감독은 내가 제안한 연출안을 1부터 3까지 공발위 위원들과 함께 열람했다. 공발위는 단원들과의 워크샵을 통해 나에대한 실제적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고, 예술감독은 동의하여 그 사실을 알렸다. 워크샵을 통해 실력이 검증이 안 되면, 나도 문제지만 이제 갓 부임해서 본격적으로 예술단을 운영하려는 예술감독에게도 흠이 생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예술감독은 담담했고, 젊은 나를 격려했다.


본격적인 연습에 앞서 연출안으로 공연 양식과 동작의 반복을 통해 인물의 상태를 나타내는 테마 동작을 실험해 봐야 했었다. 생각과 개념만 있었지 아직 그 실체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막상 연습이 시작되고 양식과 동작을 실험하기에는 동시에 진행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연습 전에 이 부분들에 대한 실험과 점검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본 연습 기간에 이 부분을 실험하느라 장면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더디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워크샵은 오히려 검증의 시간이 아닌 양식과 동작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테마 동작을 맡기로 한 안무가 Pj를(무용원 1년 후배. 학교 다닐 때 얼마나 서로 학업에만 열중했는지(?) 단 한번의 일면식이 없다. 그녀는 졸업 후 프랑스의 낭뜨 국립 현대 무용단의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돌아온 재원이었다. Pj 안무는 이 후 지금까지 거의 모든 작품을 나와 함께하고 있다. 그 사이 결혼을 했고, 마찬가지로 현대 무용가인 남편 S도 함께 함께 작업하고 있다.) 급히 찾았다. 상황을 설명하고, 연습에 들어가기 전 우리 안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고 설명했다. 조연출 John, 안무가 Kh(한국 무용가, 안무가, 제주도립 무용단 예술감독. 군무를 통해 무대를 역동적으로 만드는데 탁월하다. 이 작업 하나만 함께 해서 아쉽다.) Pj와 함께 워크샵 계획을 만들었다. 우선은 3차 연출안을 통해 우리가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 차분히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각 인물들의 내적 상태를 나타내는 양식적 표현 만들기, 각 집단의 사회적 제스처 만들기, 사물을 동작으로 시각화하기, 상황에 따른 내적 충동을 말없이 동작으로 표현하기 등의 주제를 정했다.

각각의 주제들은 우리 작품의 장면과 노래를 통해 실험하고 안무의 영역과 연출의 영역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했다. 워크샵의 말미에는 주제에 따른 그룹별 테마 동작 경연대회를 열어 예술감독과 기획팀장이 시상을 하고, 전 단원이 함께하는 뒤풀이로 연결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면 연출가 및 안무가와 예술단원들 상호 간에 딱딱한 워크샵이 아닌, 일종의 실험과 놀이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워크샵 계획표를 들고 예술감독을 찾아가 2주간의 워크샵을 진행해 보겠다고 제안했다. 예술감독은 2주일은 긴 시간이니 그 기간 안에 배역 오디션을 포함해보라고 했다. 예술단 입장에서는 연출가를 검증하는 시간이 아니냐고 묻자, 이미 많은 것들이 연출을 통해 이루어졌으니 기죽지 말고 당차게 진행하라고 했다. 오디션 전에 공발위를 열어 부족한 면이 보이면 다른 사람을 붙여서라도 지원하겠다고. 그렇게 해서 8월 10일부터 두 주간 사전 워크샵이 진행됐다.


배역 오디션이 있기 전날, 예술 감독이 호출해 공발위의 결과를 전했다. ‘함께 가자.’ 나중에 알고 보니 예술단 출신이었고 나를 추천했던 음악감독 Js와 노조위원 Sj의 노력이 컸다. 워크샵 기간 동안 선봉에서 팀을 이끌었던 지도위원들의 호의도 우리를 돕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됐다. 이심전심 여러 마음들이 말없이 도와 젊은 연출가가 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 이제야 공식적인 <청 이야기>의 연출이 된 것이다. 그때 용기 있게 필자를 연출로 품었던 예술 감독 Pw와 단원들에게 감사한다. 절실하게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만들고 싶었고, 마음껏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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