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무 나라에서 창작 뮤지컬을 하면 언제나 그렇듯이 셋업 기간도 짧았고, 리허설도 짧았고, 뭐든 짧았지만, 그 짧음에 애당초 적응되어 있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누구하나 모나지 않게 시간을 맞췄고, 제 몫을 다 했다. 공연 첫 날 아내가 왔다. 아내를 만난 연기감독 Ps는 “남편을 뺏어가서 미안합니다.”라고 인사했다. 배우들과 연주자들 전체에게 시작 전 장미 꽃 한 송이씩을 돌렸다. 부족하지만 잘 해나갈 수 있도록 믿어주고, 함께 해 주어 고맙다고 했다. 공연이 시작됐고, 가장 걱정했던 1막 마지막 두 대의 시소와 플라잉, 그리고 인당수가 준비한 그대로 펼쳐졌다. 인터미션때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두 눈에 눈물이 가득한채 나를 꼭 안았다. 공연은 무탈히 2막도 진행됐다. 처음으로 내 이름이 적힌 분장실을 받았다. 그곳에서 떨었고 그곳에서 추스렸다. 그렇게 2주가 지나가 버렸다.
작품을 준비하며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돌아보면 함께한 예술단 단원들과 참 마음깊이 사랑을 나눈 시간들이었다. 2대의 커다란 시소를 움직인다는 것은 무대 위에서 대단히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그 위에 서서 균형을 잡고 노래하는 무당이나 청이도, 그리고 거대한 시소를 움직여야했던 배우들도, 모두 물리적 두려움과 고됨 속에서 참을인자 몇 개씩을 마음에 품고 그 무대에 섰다. 작업기간 동안 단원들과 충돌없이 서로를 아껴주며, 행복하게 작업했다. 작업이 끝나면 배우들과 사적관계를 잘 만들지 않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못했다. 작품을 만들어가는 시간들도, 작품이 끝나고도 한동안 나는 그들을 정기적으로 만나며 마음을 나눴다. 공연은 끝났다. 그리고 청이는 제작 환경이라는 인당수, 깊은 저 밑에서 아직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난 이 작품을 살리고 싶다. 어떻게든 이 작품을 살려내고 다시 최귀섭, 최명섭, 강보람, Js, Pj, John, Kh 그리고 예술단 단원들과 뒹굴고 싶다. 스타 캐스팅이 없어도 오직 작품이 가진 힘만으로 삶과 그 삶이 가진 뜨거움을 나누고 싶다. 또 자체로 정당하게 평가받고 싶다.
난 이작품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뮤지컬의 모든 것을 해보려 애썼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완성을 솔직히 다 이루지 못했지만, 그 완성도에 대한 가능성을 봤고 이루어 낼 확신도 얻었다. 연출가로 살아가며 하나의 작품이 이렇게 삶에 긴 영향을 미친 것은 처음이었고, 그 첫 경험은 괴롭게도 충격과 욕망으로 내게 남아있다. 청이는, 어떤 식으로든, 내 손으로 다시 물 속에서 꺼내 올릴 것이다. 누군가 물 속 깊이 있는 나와 청이의 손을 희원이처럼 굳게 붙들고 함께 물 밖으로 올라갈 수 있다면,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난 이 작품을 다시 물위로 끄집어 올려 낼 것이다. 내 손으로, 나의 힘으로 청이를 살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