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30

연속되는 한판

by Pia Jong Seok Lee

그러면 될 줄 알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작품을 하고, 배우들이나 동료 선후배 연출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어느 단체나 제작사랑 일한다고 말하면, 그러면 다 되는 줄 알았다. 늘 관객으로 앉았던, 그래서 갈 때마다 이 극장에서 꼭 한번 연출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던 그런 극장들에서 내가 연출한 공연이 올려지면, 그러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쓰릴 미>를 하는 동안 행복했고, <청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대견할 수 없었다. 작품 자체도 행복했지만, 그런 곳에서 그런 사람들과 그런 작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꿈을 이룬 줄 알았다.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2년 2개월의 군 생활 동안 나는 늘 학교가 그리웠고, 매일 입버릇처럼 학교 가고 싶다를 되뇌였다. 정말, 진정으로 학교에 돌아가고 싶었고, 학교에 돌아가면 대단히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얼었던 시간처럼 견고했던 2년의 시간을 통과해서 다시 원래의 자리, 학교로 돌아갔을 때, 난 절망했다. 내 몸이 분명 학교에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학교에 가고 싶었다.


안그런척 사람들 앞에 나서지만, 실은 두렵고 조급하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들이 바르고 옳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매일 마음을 다잡지만, 내일은 무엇일지 모르기에, 몇 해 지나면 또 어떨지 모르기에 점점 조급하고 점점 불안해진다. 어른이 되면서 삶의 고정 지출이라는 것이 생기자 마음은 더 편치 않다. 연출가로서 예술적 완성도와 작품 자체에 몰입하고 싶다. 한편 한편 만들 때 마다 오직 그 작품 하나에만 오롯한 내 모든 숨을 불어넣고 싶다. 멍청하게 내일이나 염려하고 미련하게 어디론가 떠나려하지 말고 모든 염려와 걱정들 다 버리고 오직 그 일에만 나를 주고 싶다. 그렇게만 하고도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꾸미듯 말한다. 배고픈 아이들을 돕고 싶다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그것이 내 꿈이라고 스스로와 때로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말했다. 그런데 실은, 내 꿈은, 다른 선배들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작품을 하고 싶다. 밥걱정 않으며 계속해서, 그리고 혼을 팔지 않으며 연출가로서의 내 일을 계속하고 싶다.

아직도 학교에 가고 싶어 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내게 있어 학교에 가고 싶은 욕망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아니 아주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채울 수 없는 무언가에 떠밀려 있고, 감당해야 할 어떤 책임들 속에서 내 학교 가고 싶은 마음은 커지면 더 커졌지 예전보다 작아지지 않았다. 이 싸움, 그리고 내일은 무엇일지,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막연함과의 싸움을 이제 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밥걱정 안하고 혼을 팔지 않으며 연출가로서의 이 일을 계속해 나가려면, 이 싸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앞에 숨지 않으며, 또 창피해 할 필요 없이 묵묵히 한 판 한 판 붙어가야 할 것이다. 아주 솔직하게. 잘난 척 말고. 아는 만큼, 모르는 것은 더 배우고 깨달아 가며 그렇게.

그러면 될 것이다. 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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