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31

내가 바라는 세상

by Pia Jong Seok Lee

내 오랜 못된 습관 하나를 얘기하자면, 아침의 분주함이다. 근 삼십년 동안 내 의지로 어딘가를 향해 출발할 때, 거의 단 한번도 단정한 아침으로 출발한 적이 없다. 내 아침에는 매일 몇가지 프로세스가 존재한다. 일어나서 우선 물을 마시고, 잠자리를 정리하고, 스트레칭을 하고나서 화장실에 들어간다. 물론 일어난 시간의 양에 따라 스트레칭은 종종 생략되기도 하지만, 어딘가를 갈 때 비교적 일찍 일어나 준비하기 때문에 놓치는 경우는 적다. 여기까지는 아주 여유있는 아침이다. 출발을 예상한 시간도 대게 이때 까지는 한 40여분 남기 때문에 조바심을 낼 필요가 전혀없다. 난 생각보다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하기에 정말 아침에 일이 있다면 비교적 일찍 일어나 정말 일찍 준비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스트레칭 이 후의 프로세스 중 가장 큰 걸림돌이자 가장 해결해야만 하는 필수 프로세스의 시작. 바로 화장실. 난 먹고 자는 것은 어디서건 가능하다. 먹는 것도 사실 냄새에 조금 민감 하지만, 그런대로 어디서건, 어떤 음식이건 잘 먹고 잘 참는다. 잠자리는 정말 어디서건, 맨 바닥에 스티로폼 깔고도 머리만 대면 아무 불평없이 잘 잔다. 하지만 화장실은, 삶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누가 내게 살면서 가장 마음이 놓일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외출시 비데가 있는 화장실을 만날 때라고 말한다. 정말 깨끗한 화장실은 내게 너무나 중요하고 너무나 긴장된 순간들이며 스트레스다. 내 아침 일과 중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와야 하는 이유는, 혹시라도 외출 중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봐, 하루를 살 만큼의 위와 장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어쩌면 살이 잘 찌지 않는 것도 이 화장실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화장실에 들어가면, 아직 출발까지 남은 최대 40분의 시간을 투쟁하듯 변기와 싸운다.


시작은 여유롭다. 내 독서의 상당량이 이 공간이기에 우리집 화장실에는 내가 읽고 있는 현재의 책들이 늘 준비되어 있다. 신호가 바로 오면 참 고마운 일인데, 대게는 그렇지 않다. 책장을 넘기다가 불안한 마음이 시작되고, 다시 책장을 넘기다가 더 불안해 시계를 보면 한 20분정도가 남아있다. 씻기도 해야 하는데, 옷도 챙겨 입어야 하는데… 불안을 안고, 앉은채 칫솔을 문다. 한 손은 배를 문지른다. 다시 시계를 본다. 5분 지났다. 입을 헹구고 이제 두 손을 이용한다. 앉은 채 배를 박박 문지르고 압박한다. 땀이 다 난다. 이제 십분 남았다. 미치겠다.(이 단계를 거치면 대게 70%의 성공률을 확보하는데, 때때로 30%에 해당하는 날이면 그렇게 짜증이 날 수 없다. 맛사지를 해 놓았기 때문에 십중팔구 외출하는 그 내내 장 운동이 지속되고 도착지에 도착할 때 즈음이면 신호가 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성공하든 그렇지 못하든 이젠 다음 단계로 무조건 넘어가야 한다. 빠르게 샤워하고, 옷을 입고, 가방을 매고, 신발을 신고 문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온몸에서 짜증과 노기가 뿜어 나오고 무엇이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예를 들면 셔츠를 입는다거나, 바지를 입는다거나, 자켓을 입는다거나, 양말을 신는다거나 뭐 이런 단계 중 어느 하나가 제 자리에 없으면, 어느 하나가 생각과 달리 다림질이 되어있지 않다던가 세탁이 되어있지 않는다던가, 짝이 맞지 않으면 분노가 폭발한다. 가족과 함께 출발할 때면 분노를 뿜어 봐야 감당해야할 아내의 질타가 더 크기에 그 질타와 눈빛이 무서워 얼굴 빨게도 혼자 삭혀야 하지만, 혼자 준비할 때는 노기가 폭발하여 물건들이 넘어지고 계절에 관계 없이 몸에 땀이 젖는다. 신발을 신으면 꼭 이런날 가스 밸브와 보일러, 전등 스위치들이 다시 마음을 괴롭혀 문을 닫았다가도 다시 열고 들어가 확인을 한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면, 문을 닫자마자 달린다. 미친 듯이 달린다. 이런 미친놈 널 뛰는 아침이 또 있을까… 매일, 매일의 아침이 거의 같다.


아침에 루민이를 등원 시켜야 하기에 내 한 몸도 어려운 처지에 아이까지 챙기느라 나의 날뜀은 더 심하다. 아이 앞에서라 최대한 자제하고 최대한 노력하지만, 내가, 내 안에서 폭발할 때는 아이의 양말을 신겨줄 때이다. 이 녀석이 꼭 발가락을 오므리기 때문에 한 번에 안 들어가면 그렇게 짜증이 날 수 가 없다. 또 제발 내가 고른 옷을 아무소리 없이 입어주면 좋은데, 취향이 분명한 이 멋진 아이는 때때로 내 스타일을 거부하고 자기 스타일을 고집한다. 아… 이 아침.. 이럴 때는 정말 눈이 안보일 정도로 나 정신없다. 이제 출발하여 버스를 타건, 지하철을 타건, 혹은 내 차를 타건 난 나의 아침을 돌아본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날걸. 아니 화장실에서 조금 더 쉽게 포기할 걸. 옷을 미리 정해둘 걸. 화를 조금 더 다스릴 걸… 혹시 루민이가 눈치 챘을까… 아.. 짜증나!

아내는 나와 어디를 아침에 출발하는 것을 참 싫어한다. 나의 이런 스트레스를 통해 그녀도 같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런 것들을 고치려 무척 애써보지만, 내가 가는 그 어디든 비데가 설치되어 있지 않는 한 나의 이런 미친놈 널뛰는 아침은 계속될 것이다. 제발 모든 연습실에, 모든 극장에, 모든 학교 화장실에 비데가 있다면, 그곳에 햇빛은 들어오지 않더라도 조금만 더 넓고, 조금 더 물기 없고, 조금만 더 물비린 냄새가 안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나의 이 화장실 문제는 아주 오래전 부터의 일이다. 아마 화장실 후 샤워하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 일거고, 깨끗한 속옷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군대에서도 처음엔 거의 삼주 가까이 화장실을 못갔다. 훈련소 화장실이 얼마나 (*)같은지 가본사람만 안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수많은 젊은 남자애들이 화장실 터지도록 그들의 삶을 쏟아 내는 통에 난 정말 근처에도 가기 싫었다. 하지만 살아남아야 했기에 삼주 뒤부터는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 환경의 적응이 군 생활 2년 2개월을 버티게 했다. 그 때도 열심히 참긴했지. 훈련 나가면… 그런데 복학하고 나니 마치 한이 맺힌듯 이제 정말 깨끗한 화장실만을 더욱 갈망하기 시작했고 그 집착이 오늘의 이 지경에 이르게됐다. 이 문제, 아마 평생을 함께 갈 것이라 생각한다. 고치려 애를 써야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떻게든 편안하고 시원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필요하다. 난 고통 받고있다. 이 아침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전국 모든 화장실에 비데가 설치되기를… 아니 최소한 극장과 연습실에 만이라도, 학교들 만이라도 비데가 설치되기를… 그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면 난 얼마나 신이날까… 그러면 얼마나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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