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대학교수가 되어 학교에 와있다. 계획에도 없었다. 교수라는 직함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었고, 남들처럼 대학원이나 유학도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보다 한 단계 진보한 학위가 있기 전까지는 대학에 갈 생각도, 갈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직 전업 연출가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며 이 나라 문화 예술을 격상시킨다는 포부! 보다, 연출가로서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한 투쟁적 삶만이 내 앞에 당분간, 적어도 몇 년은 더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 노력했다.
올해 초 어느 추운 날, 함께 여러 작업을 해오던 뮤지컬 헤븐의 M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난 그때 <웨딩 앤 캐쉬>라는 작품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고 꼭 하고 싶었던 <이문세 콘서트 투어>의 연출 확정을 기다리는, 갈등과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부재중 전화가 M팀장으로부터의 와 있기에 <웨딩> 회의가 끝나고 전화를 걸었다. M팀장은 나더러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뒤 P대표와 통화하게 될 것이니 잘 생각해서 얘기하면 좋겠다고 내게 기뻐하며 말했다. M팀장과는 <쓰릴미>의 2010년 버전을 만들며 친분을 쌓았고, 그 이 후· <노라’s choice>와 <청 이야기 콘서트>의 홍보를 애써주어 동료로서의 관계와 깊이가 가깝고 남과 달랐다.
대게 제작사에서 전화가 오면, 그것이 지금까지 함께 작업을 한 곳이건 아니건 간에 나와 같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아, 작품을 맡기려나 보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구체적인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두근대며 다음 전화를 기다리거나, 어떤 작품을 하게 될까? 혼자 막연한 상상을 펼친다. 그리고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이어리를 펴고는 어떻게든 일정을 만들어 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며 시간을 재배치한다. M팀장의 전화도 나는 으레 있는 그런 전화로 생각했고, 올 한해의 작업 계획들을 돌아보았다. 올해 만약 <웨딩 앤 캐쉬>를 맡게 된다면 2월 말부터 연습이 시작되어 3월 중순에 공연이 1차로 끝 날 예정이었고, 그 후 4월부터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연습이 시작되어 6월에 공연이 시작될 예정이었으며 만약 <이문세 콘서트 투어>를 하게 된다면 4월 서울공연, 5월~ 7월 사이 해외 출장이 있을 수도 있는 일정이었다. 또 7월 말에는 인천 시립 합창단과 오라토리오 <모세>를 연습하기 시작하여 10월 초에 공연이 끝나는 일정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 1년에 서너 작품을 연출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도 들 테지만, 나와 같은 직업 연출가들에게는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바로 잇는 작업 행보가 없으면 그것은 수입이 끊기는 것을 의미한다. 연습과 공연이 없는 시기들은 거의 초주검에 가깝다. 한 작품 할 때 받는 연출료가 스타급 배우들, 또는 조역들에 비해 상당히 적다. 배우들은 회차 계약이지만, 우리는 작품 단위 계약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한달 한달의 생활비를 계산하면 최소한 4개의 작품을 1년에 소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잔고 제로의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올 한해, 지금까지 계획되있던 작품을 돌아볼 때, 나의 경제적 생활은 대단히 무리수가 있었고, <이문세 콘서트>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불안은 더욱 심화되고 있었다.
작품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생활로서의 버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자로서의 삶 자체에도 깊은 영향을 준다. 내 경우, 연습과 공연이 없는 시간은 솔직히 재충전의 시간이라기보다 방황하고 갈등하는 시간일 때가 많다. 올 상반기 작품들은 작품 편수에 비해 연출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10월 이후의 작품 계획이 아직 없어서, 하반기를 어찌 보내면 좋을까 하고 염려하고 있었다. 작품을 만들고 싶은 열정 보다, 가장으로서 하반기 집안 살림을 꾸릴 수 있도록 뭔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때 M팀장의 전화가 걸려와 좋은 소식이 있다는 것이다. 가슴이 팡팡 뛰었다. ‘다행이다… 올해가 잘 마무리되겠구나….’ 이건 실력과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자로서 생존의 문제였다. 늘 그랬다.
그날 저녁, 헤븐의 Y기획 실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의 순서는 늘 그런 식이었다. 제작사의 누군가로부터 내 일정을 묻는 전화가 오고 작품에 대해 얼핏 정보를 던지면 곧이어 그보다는 실권을 가진 사람이 전화하여 구체적인 이야기와 미팅 일정을 잡는다. 미팅에 가면 작품과 일상적인 여러 대화를 통해 내 인품이나 작품에 대한 소견을 파악하고, 때로는 그 자리에서 혹은 며칠 후 일을 함께하자는 전화가 오거나 아니면 아무 연락이 없다. 그런 순서로 일이 진행될 때가 많다. 이번 경우는 이미 여러 편을 함께 작업한 제작사이기에 내 인품이나 작품에 대한 소견을 묻기보다는 내 일정과 작품의 성격상 내가 할 수 있는가 없는가만 확인하면 되는 경우였다. Y실장과 나는, M팀장과의 관계만큼이나 서로의 생각과 일에 많은 신뢰를 가지고 협업하고 있었기에 사실 별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그녀와의 통화하며 앞서 말한 여러 고민들을 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는데 Y실장은 대뜸 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대표님이 이번에 서경대학교 뮤지컬과 주임교수가 되셨어요. 함께 강의할 선생님들을 모시는데, 저는 연출님이 가장 적격이라 생각해서 추천했는데, 어떠세요, 괜찮으시겠어요?” 뜬금없었다. 학교 강의라면 난 이미 계원 예고에서 그동안 충분히 해왔고, 작년에는 한 과목만 하다가 올해부터는 그것마저도 이제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대학 선배들이 유학을 다녀와 슬슬 학교들에 자리 잡으며 워크샵들을 부탁해 올 때도 난 거절했다. 우선 학교들이 거리상 현장과 너무 멀고,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정말 잘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투자돼야 하는데, 현장 작업을 하며 그럴 시간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학교보다 현장에서 더 목을 걸고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뜬금없는 Y실장의 질문에 아침부터 해오던 여러 고민이 뒤죽박죽되었다. 올 초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오디션을 치르며 대학 1학년, 2학년 전공생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원자들의 준비가 부족해서인지, 하나같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가르치길래 다들 저러나.’ 오디션 끝에 P대표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우리가 가르칠 일이 있으면, 정말 잘 가르칩시다.” 현장과 유리된 학교 교육을 오디션 기간 내내 깊이 느꼈다. ‘그때 나눴던 생각을 해 보자는 것인가?’ 마음에 생각이 일었다. “신생학과라 처음부터 다 만들어 가야 해요. 목표를 바로 가지면 좋은 배우들을 키워낼 수 있을 거예요.”라는 그녀의 덧붙임에 난 욕심이 났다. “정릉 옆이라 대학로와 15분 거리 밖에 안 돼요. 강의료는 얼마 되지 않지만, 연출님만 괜찮으시다면 함께하시면 참 좋겠어요.” Y실장은 작년 <쓰릴 미>를 만들 때 연기의 편차가 서로 큰 다섯팀의 배우들을 내게 던진 이력이 있다. 물론 그것이 어디 그녀만의 의도겠는가, P 뭐시기 대표의 의중이 컸겠지. 다섯팀을 맡아 밤낮없이 연습하는 나를 보며 격려하고 응원하고, 진심으로 배우들의 성장에 감사해했던 사람도 그녀다. 다시 말해 그녀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다. 내가 어떻게 작업을 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잘 안다. Y실장에게 말했다. “학교 말고 작품을 주세요.”
할까 말까.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 일면 영광이지만 일면 대단한 노가다 이다. 만약 내가 학교에 간다면 여러 동료와 선생님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즉 문제가 있는 수다. 그동안 이론적으로 체계화시켰던 연기 방법, 프로덕션 시스템, 그리고 젊은 작업자로서의 태도들을 온전히 가르치고 시도할 수 있는, 스스로 실험과 검증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은 분명하다. 반면 시간의 자유를 빼앗기고, 작업의 집중도 뺏기며, 어떨 때는 작품도 포기해야 하는, 아주 여러 가지로, 불편한, 어떤 책임이 뒤따르는 대단히 불안한 일이었다. 학교도, 학원도, 레슨도 다 끊고, 작업에만 몰입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바로 엊그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