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43
2010년 가을의 기록 / 서경대학교 2
정죄
P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처음 뽑아 아직 학과 전통이 없는 학교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프로덕션 수업을 잘 갖추어 진행하면, 앞으로 전문가로서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내 꿈 중의 하나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한국의 지방이던 필리핀, 태국, 미얀마와 같은 제 3 세계의 어느 곳이든 예술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과 뒹굴고, 그들의 공연을 통해 지역사회가 변화하고, 꿈을 갖지 못하고 사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이 새로운 꿈을 꾸고, 그들의 부모와 마을이 아이들과 학교의 공연을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넓히고 경험하는 것, 그런 꿈을 나는 꾸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연출가로서, 얼마만큼의 작업들을 충실히 이루고 난 뒤의 일로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지 못한 순간에 그와 성격은 너무나 다르지만, 비슷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할까 말까의 고민이 있었다. 왜냐면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기보다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었고, 작품 자체에 매진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그것도 대학에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삶보다는 예술 교육가로서의 삶이 더 요구되는 것인데, 난 아직은 예술가로서의 삶에 충실하고 싶었다. 아직 내가 누군가를 인격적으로, 전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소양이나 경험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에 고민은 깊었다. 두 가지 일을 모두 다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일에 온 맘을 집중하면 다른 한 가지는 당연히 온 맘일 수 없다. 나에게 철칙은 연습을 빠지지 않는 것이고, 안무 시간이나 노래 시간이나 그 어떤 시간에도 난 지금까지 연습을 빠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학교에 가게 되면, 난 부득이 수업을 위해 연습을 빠질 수 있고, 또 어떨 때는 아이들의 연습 시간에 극장 일정을 따르느라 아이들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싫었다. 대학 시절, 나의 선생님들을 보며 저분들은 예술가일까 예술 교육가일까를 스스로 질문하며 나는 저렇게 말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며 살아야지 했는데, 내가 그들을 정죄했던 일들이 이제 내 앞에서 시작될 수 있는, 내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상황으로 선택이라는 단추가 놓인 된 것이다.
과욕일 수 있지만, 두 가지 일 모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진 깨끗한 상태의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 제비 새끼들처럼 입 벌리고 날 향할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가르쳐서, 그 입에 최고의 양식을 넣어주고 싶은 것 하나. 또 연출가로서 어떤 작품이든, 맡은 작품과 동료들에게 최선을 다해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 하나. 이 두 가지의 욕심. 어렸을 때의 선생님들을 보며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예술가로서의 삶과 예술 교육가로서의 삶의 병행 앞에 내가 지금, 막 서게 됐다. 그리고 과욕임을 알면서도 나는, 결국 선택했다. “함께 해 보겠습니다.” 이 모든 갈등과 선택의 시간은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전화 세 통으로 난 눈앞의 삶을 결정했고, 그 결정에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내 선택의 단추를 눌렀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선택은,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멋있는 척 지켜왔던 어떤 신념의 일부를 꺾는 것이다. 내 선생님들께 학창 시절 가졌던 불만을 내가 가르칠 누군가에게 고스란히 대물림하는 것이고, 그때의 다짐을 내가 깨버리는 것이다. 그때의 청년 선생님들이 하셨던 나와 비슷한 고민을 깊이 느끼고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조금은 더 이해하며, 이젠 환갑이 넘으신 내 선생님들을 보다 더 사랑하게 됐지만, 나와 비슷한 시기에 갈등했을 그때의 청년 선생님들을 원망하고 숙덕거렸던, 지금보다 더 젊었던 나에게, 그리고 앞으로 나를 통해 그런 갈등을 대물림 당할 얼굴 모르는 미래의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그렇다고 뭐 내가 전임 교수라던가 뭐 이런 것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런 주제에 무슨 그런 고민을 하고 갈등을 하는지 남들이 보면 우습겠지만, 멋 부리려고,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나 예술가로서 투철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려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온전히 성공하지 못한 길, 갈 길이 구만리이고 매일의 삶이 늘 불안한 나와 비슷한 동료들에게 이러한 선택은 대단히 중요한 갈등, 작업자로서의 어떤 전환점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길고 장황하게 변명을 늘어놓는다. 어떤 제작사든 가장 믿음직스러워하고, 자신들의 새 작품에 연출로서 가장 첫 번째 이름을 올려놓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작품의 완성도는 어떻든 확실하게 티켓을 팔아치울 그런 배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건 그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현장 작업자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살아가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다. 난 내 인생에서 지금, 하나 졌다, 나에게.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그런 선택을 한 것 자체에 대한 스스로의 정죄이고 돌아봄이다. 이제 해야 할 것은 그 갈등에서 벗어나 또다시 나를 인정하고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것. 또 직업 연출가로서의 작업에도 그 비워야 할 연습실의 공백을 더욱 철저히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