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일기 44
2010년 가을의 기록, 서경대학교 3
이상적 학교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마음을 맞춘 5명의 선생님과 몇 번을 거쳐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커리큘럼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교란, 학사 일정이 조금은 빡빡하고 학생과 교수의 개인 시간을 아주 많이 포기하더라도 학교에 많은 것을 책임지고 가르치는 것. 학생들을 혼자 두지 않고, 교수들이 학생들과 함께 뒹구는 것. 현장과 똑같은 시스템을 도입해서 시답지 않은 이론을 가르치기보다 정신과 방식, 그리고 겸손하고 철저히 배우로서 준비하는 것, 그래서 졸업하면 곧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배우들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의 특기대로 과목을 맡지만, 프로덕션을 중심으로 개별강의가 연계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았다. 예를 들면, 프로덕션 수업은 상업 프로덕션 시스템으로 진행하되 개별강의인 발레, 합창, 보이스 랩, 연기, 대본 읽기에서는 프로덕션에서 진행 중인 작품과 배역, 노래, 대본을 연계하여 프로덕션에서 해결되지 못했던 부분들을 수업을 통해 발전, 심화시키자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졸업할 때까지 학기별로 한 작품씩 총 8개의 프로덕션을 학생들이 경험하고, 프로덕션 속에서 연기 이외 스태프의 역할도 매 작품별로 돌아가며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에 우린 합의했다. 단, 1학년 때는 곧바로 작품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호흡하기, 걷기, 생각하고 표현하기, 글쓰기, 책 읽기, 시간 지키기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프로덕션 수업에서는 작품이 아닌 몇 개의 장면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중지를 모아 우선 2개년의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계획은 우리가 각자 학교에 다니며 수업 때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들과 좋았던 것들, 그리고 현장에서 오디션을 치르며 배우들에게 필요한 소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바탕을 뒀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졸업 후 현장 진출 시 학교와 현장 시스템의 차이가 적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3월이 되고, 여전히 추운 어느 월요일 아침, 학생들을 처음 만났다. 얼마나 전달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이런 과정과 계획들을 학생들에게 충실히 설명하고 서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인사들을 나눴다. 새로 생긴 학과, 그것도 음악학부 안에 별종 같은 전공이기에 학생들은 자신들이 1기라는 것에, 자신들이 선택하여 시험치고 입학한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커리큘럼에 대해 어떤 부담과 염려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숨길 수 있겠어, 여기가 중앙대도, 동국대도, 단국대도 아닌데. 선배가 없는 아이들, 전통이 없는 학과이기에 우리 5명의 선생은 아이들에게 선배이자 선생이 되기로, 예술학교로서의 새로운 전통을 세울 것을 마음먹었다.
앞으로 이 학교가 어떻게 성장해 갈 것인지를, 연출가로서의 나는 또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지를 아무도, 아무것도 모른다. 나를 비롯한 우리 선생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뒹굴지, 서로의 삶 속에서 무엇을 향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또한 지금은 모른다. 모든 것을 떠나서 개인으로서의 내가 갈등과 고민을 접고 선택한 지금을 얼마나 담대히 유지할 수 있을지 나조차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가 뭐라 하던, 내가 스스로에게 뭐라고 하던, 난 지금, 여기에 있다. 나 잘하고 싶어, 이기적이지만 우선 나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갈등을 주는 선생이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