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욱 찾기>토요일 낮 공연을 올리도록 준비해 놓고, 그 위층 카페 지베르니에 앉아있다.
푸시킨이 걸었던 거리, 체홉이 계란 후란이를 먹었던 카페의 자리, 스타니 슬라브스키가 고민하며 담배피던 그곳. 지난달, 연극하는 선생님들과 배우들을 만났다가 들었던 소리들이다. 올여름에 러시아에 다시 갈 것이라고. 그래서 위에서 말했던 그들이 걸었던, 앉았던 길을 그들도 성지 순례하듯 걷고 앉으며 그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선배 예술가들의 흔적을 경험할 것이라고. 그래. 그 마음 이해가 된다.
공연계가 심히 이분되어있다. 예전에는 장르의 다양성이 있었고,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공연계 사람들은 그 장르가 어떻든 서로 잘 뭉쳤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며 동지의식을 품고 살았다.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만 해도, 학교와 현장의 골은 크지 않았고, 현장에 나가 있는, 동문 출신 선배들이 아니어도 무대 예술가들에게는 조건 없는 존경이 있었다. 그때는 모두가 꿈이 있었고, 모두의 꿈이 큰만큼 가난했고, 그 가난과 꿈이 삶에 지독하게 그늘을 주었어도 모두 당당했고, 서로 구분 짓지 않았다.
상업 뮤지컬이 우리나라에서 틀을 잡아간 것은 이제 10년 갓 넘었다. 아직 뮤지컬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학전과 신시 같은 극단 성격의 뮤지컬 단체들이 라이선스 피를 지불하며 작품을 공연했고, 배우와 스태프에게 작품 참여 계약서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그 도전을 바탕으로 에이콤과 서울 뮤지컬 컴파니가 <명성황후>와 <사랑은 비를 타고>를 통해 한국 뮤지컬 대중화에 초석을 놓았고, 그 이후 감옥도 불사하는 그들의 헌신적이고 투쟁적인 노력 끝에 나 같은 뮤지컬 열망생들이 전공자들 사이에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설 앤 컴파니가 <팬텀 오브디 오페라>를 대규모로 투자하고 고급 브랜드화시켜 뮤지컬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그 덕에 아주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일반 회사원 봉급만큼의 주급, 월급을 받게 되었고, 실력에 따라 그보다 뛰어난 페이먼트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다. 그것은 공연 전반에 걸쳐 대단히 획기적인 발전이었고, 또 개인적으로 나 같은 사람이 그 이전 세대에 비해 젊은 나이에도 직업 연출가로서 살아가며 차도 사고 집도 살 수 있는(물론 대출과 할부이지만)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공연계는 이분화되었다.
배우들이 갈리기 시작했다. 노래를 할 줄 아는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 할 줄 아는 배우는 최소한 상업 뮤지컬에 앙상블로라도 배우로서의 그 삶과 생을 이어갈 수 있게 됐지만, 연기의 능력을 떠나 노래를 할 줄 모르는 배우는, 배우로서의 설 자리가 더없이 작아지기만 했다. 그렇게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예술가로서의 롤 모델들이었던 걸출한 연출가들도 상업 자본과 만나지 못할 때 그들의 입지와 예술 세계가, 그들의 집단이 얼마나 제한되는지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며 가깝게 목격할 수 있었다. 거기다 엔터테이너들의 공연장 입성은 더더욱 배우들과 예술가들의 설 자리를 좁게 만들었다. 공연이 흥해도 정작 예술가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못하는 악순환이 점차 크고 깊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 서는, 또는 무대를 만드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예술가들이 속한 장르에 따라 그들의 사회적 지위와 미래 가치는 아주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언론도 그 속성에 발맞추어 보도의 일방성을 가지고 예술가들을 구분해대니 이제 음악과 친숙하지 못한 예술가들은, 그 직업이 배우든 스태프든, 이 일을 통해 직업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가기가 대단히 어려워졌고, 방송과 영화가 아니면 정말 돌파구가 생기지 않게 됐다.
검찰과 기자의 공통점은 독점성이다. 우리와 일본에만 있는 검찰의 기소독점권은 검찰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될 수 있고, 누군가 단 한 집단만이 평범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거나 그렇게 하지 않을 권리가 사법시험과 연수라는 제도를 통해 갖게 되니 그 폐해가 사실 크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SNS가 발달하고 인터넷망이 발달해 이제는 누구나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절대적 영향력과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은 주요 매체에 글과 생각을 독점적으로 올릴 수 있는 기자들과 언론사, 포털의 카르텔이다. 기자들의 생각과 관심만으로도 누군가를 스타로 만들 수 있고, 그 스타를 오래 유지시킬 수 있으며, 그 스타를 죽일 수도 있다. 그만큼 폐해가 큰 것이 특정 공연 장르에만 흐르는 자본의 집중이다. 누군가의 선택으로 자본이 집중될 때, 인접한 장르로 그 자본이 흐르지 않는다면, 흐르지 않는 자본 아래 놓인 무언가는 고사한다.
공연계의 파이가 커졌지만, 그 파이는 검찰의 기소독점과 언론의 기사 독점처럼 어느 한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 바르지도 옳지도 못하다. 그렇다면 다른 부분은 국가가 나서서 육성, 보호, 진흥시켜야 하는데, 국가의 예술정책은 10년도 내다보지 못하고, 전문가 없이 공무원들이 계속 순환 보직한다. 정책이랍시고 예술마저도 최소비용 투자를 통한 최대가치 창출의 잣대로 국공립 예술단체를 박살내고 있다. 고작 한다는 것이 예술가들의 연수나 지원하고 그 나물의 그 밥들더러 신진 예술가들의 새로움을 심사하라고 배치하며 푼돈을 던진다. 우리가 그지 새끼들인가. 100년을 좀 보자고, 앞으로 100년을.
푸시킨이 걸었던 거리와 체홉이 계란 후라이를 먹었던 자리, 스타니 슬라브스키가 고민하며 담배를 피던 카페를 유적 답사하듯 연극 예술가들이 자비를 들여 가는 것은, 아마도 이 땅에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자괴가 부른 어떤 몸부림일 것이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라도 예술가로서 살아가려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이 아름답지만, 얼마나 서러운가. 그렇게 성지 순례하고 돌아온들 그들의 작품을, 누가 지켜볼 것인가. 그 선생님들과 그 동료 예술가들의 투쟁하듯 살아가는 그 귀한 삶의 무대를, 그 위에 스타와 자본이 없다면 그리고 그 공연 기간이 길지 않다면 그들의 푸시킨과 체홉의 계란 후라이는, 그들의 스타니 슬라브스키와 담배는 과연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난 연출가로서 살아간다. 난 무대 위의 삶을 만들며 내 세끼 밥과 은행 이자와 아이 양육비를 번다. 직업 연출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의 노력(예술 노동)에 대한 페이먼트를 지불하는 단체, 회사, 학교들과 일 하고 있다. 하지만 페이먼트는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는 다른 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고, 정당치 않을 때가 많다. 나는 나에게 합리적이고 정당한 페이먼트를 해야 할 곳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장르건 그 장르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그 말에 책임을 지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세대와 다음 세대의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장르건 나는 택하고, 그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에는 당연히 노동에 대한 대가가 정당히 따라야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 말하듯, 너희는 너희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웃기지 마. 좋아하는 일이 나만 좋자고 한다면, 방에서 하지.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을 통해 적든 크든 자본이 움직이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와 우리의 예술 노동에 대한 정당한 페이먼트를 지불할 수 있을 때, 노래를 잘하지 못해도 누군가 무대를 만들고 그 무대에 서서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이상을 교류하고자 할 때, 상업과 비상업을 떠나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 세대의 문화를 역사로 인정할 때, 공연계의 이분화는 사라질 것이고, 누군가 그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자비로 푸시킨과 체홉, 스타니 슬라브스키의 발자취를 순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바라건대 나는 그러한 시기가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생계형 연출가라는 소리를 누군가로부터 듣지 않기를. 내가 만드는 모든 작품들이 정당한 가치와 평가를 받을 수 있기를. 예술로 생계를 못하면, 그게 직업인가?